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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태솔로가 부럽다.

by 이주낙

18살 때, 나는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고3누나를 따라다녔다. 늦은 새벽,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퇴근 시간에 맞춰 필살기 풀 세트로 옷을 빼입고, 맥도날드 앞에서 1시간정도 기다렸다. 그런데 마감을 끝낸 그녀가, 담배를 피우는 2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형과 다정하게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을 본 순간, 그 형은 너무 간지가 났고, 내 자신은 너무 찌질해보였다. 먼발치에서 말도 걸지 못한 채, 나는 그 자리를 도망쳐 버렸다.

그리고 그 누나한테 문자가 왔다.

왜 그냥 갔어...


이불을 찬 횟수는 셀 수 없었다. 창피하고, 후회되고, 자괴감에 돌아버릴 지경이였다. 그때 느낀 건 누군가를 좋아하는 설렘만이 아니었다. 다가서지 못하는 두려움, '썸'이라는 낯선 세계에 대한 어정쩡한 거리감, 그리고 내가 너무도 찐따 같다는 자괴감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넷플릭스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의 재윤 역시 비슷한 감정을 겪는다. 고백을 했다가 취소하고, 마음과는 다른 말을 내뱉는다. 그가 말한 근거 없는 수치심 때문에 모든 순간이 자신 없다. 하지만 그의 손끝 하나 내밀지 못하는 망설임과 서투름, 이유없는 수치심까지도 경험으로 어느 정도는 극복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때는 모른다.


사랑에 대한 불안은 종종 경험 부족에서 나온다. 아직 겪어보지 않은 감정이기에, 그 감정이 어디로 향할지 알수 없고, 상대의 감정은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워진다. 이런 모르는 상태는 사람을 주춤하게도 하지만, 그만큼 가능성의 여지를 남겨두기도 한다. 확신이나 고정된 무언가로 채운 것 보다 모름의 여백 속에 머무르는 것이 더 빛이 날 때가 있다. 무언가를 잘 모르고 서툴다는 것은, 미성숙이 아니라 살아 있는 증거이다. 서툰 표현과 망설이는 마음은 그저 시간이 필요한 상태일 뿐이다. 그것이 처음이기에 어색하고, 그래서 더 진심일 수도 있다. 그래서 멀리서 보면 그 처음의 하얀 여백은 반짝거릴수 밖에 없다.


나 역시 그날, 맥도날드 앞에서 그 찐따같던 순간마저도 내게는 소중했다는 것을 이제와서 느낀다.

뻔한 말이지만, 처음은 언제나 그렇게 소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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