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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 Oct 03. 2021

걷던 사람, 좀머 씨

『좀머 씨 이야기』(파트리크 쥐스킨트, 열린책들)

  일상에서의 ‘걷기’라는 것은 말 그대로 일상성만을 가지고 있어 산책과 운동, 필요한 것을 사러 잠깐 바깥으로 나갔다 오는 정도의 기능으로 그 의미가 한정된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의미를 확장해보면 개인과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 또한 그 ‘걷기’로 결정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걷는 행위는 치유와 저항의 힘을 내포한다. 2007년 제주 올레길부터 시작해 지역 곳곳의 둘레길과 걷기 프로그램이 활성화되면서 어딜 가든 걷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 올레길 또한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올레나 순례길 관련한 수많은 서적을 통해서도 걷기에 대한 식지 않는 열망들은 확인된다. 힘든 고비를 넘길 때, 생의 한 단계를 뒤로하고 다른 길을 모색하고 싶을 때, 헝클어진 마음을 정리하고 싶을 때,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을 때, 여러 사정과 이유로 사람들은 걷기에 나선다. 심지어는 아무 생각 없이 길 위에 섰다가 자신의 여러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한때 대학 사회에 유행했던 국토종단 또한 우리 땅을 끝에서 끝까지 자기 걸음으로 걸어내려던 일종의 도전 의식 같은 것이기도 했다.  

   

  걷는 행위는 정직하다. 일단 길 위에 서면 돌아가거나 계속 나아가거나 할 수밖에 없다. 속도와 경쟁에 떠밀려 지쳐가는 동안 돌아보지 못했던 ‘나’와 ‘세계’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 길을 따라온다. 한 걸음 한 걸음 자기 걸음으로 정직하게 꿰어온 길은 치유인 동시에 느린 것, 뒤처지는 것을 포용하지 않던 매몰찬 사회에 대한 저항의 증거다. 이러한 태도가 소극적 저항 행위라면 강력한 저항의 행위에도 걷기는 중요하다. 

     

  시위 현장에서 집단이 함께 행진하는 것은 그 자체로 압력이자 하나의 상징이 된다. 우리 사회의 소수자와 노동자들이 삼보일배로 투쟁하고 있는 현장을 볼 때면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 착잡함이 마음자리를 맴돈다. 진실 규명을 촉구하며 여러 사고의 유가족들이 삼보일배로 나아갈 때는 또 어떠한가. 알려져 있다시피 삼보일배는 종교적 수행의 한 방식이다. 세 걸음 걸어 한 번 절하고 세 걸음 걸어 한 번 절하는 방식의 걸음. 세상에서 가장 느린 그 걸음은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걸음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좀머 씨’에게 걷기는 무엇이었을까?  

         

  여기, 걷는 사람 좀머 씨가 있다.   

   

  좀머 씨는 걷는다. 좀머 씨는 심하게 걷는다. 좀머 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필사적으로 걷는다. 당연히도 좀머 씨의 걷기는 소요逍遙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좀머 씨 이야기』를 펼치기 전 표지 그림을 보면 성큼 걸음을 옮기고 있는 좀머 씨의 행색이 포착되어 있다. 어딘가로 바삐 가는 좀머 씨. 그러나 그에겐 목적지가 없다. 딱히 볼 일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장식적 기능이라고는 없는 단벌옷에 모자를 눌러 쓰고 긴 지팡이 하나 들고 매일 같이 길 위에 선다. 그가 메고 있는 배낭엔 빵 하나와 우비밖엔 없다. 

      

  ‘나’는 나무 위에 올라가는 걸 좋아하는 아이다. 엄마의 잔소리가 싫고 형들의 심부름이 귀찮아 아무도 없이 탁 트인 시야로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할 수 있는 나무 위가 편하다. 소설은 이 아이의 시선으로 좀머 씨를 그려낸다. 좀머 씨는 어느 날 배낭 하나를 메고 이 마을로 흘러들어왔으나 그가 뭘 하는 사람인지는커녕 이름조차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어 그냥 ‘좀머 씨’라고 불린다. 그리고 소설 끝까지 독자는 이 좀머 씨에 대해 제대로 알 수가 없다. 좀머 씨는 마을 사람 누구와도 제대로 대화하지 않는다. 사람들과의 친분을 쌓는 데도 관심이 없다. 누군가 물어봐도 웅얼거리거나 회피하기 일쑤다. 처음엔 호기심을 가지던 사람들도 그를 점점 관심 밖으로 둔다. 좀머 씨에 대해 어떤 것도 잘 알지 못하지만 온 마을 사람이 다 아는 건 그가 종일 걷는다는 사실 뿐이다.     


  ‘나’와 아버지는 어느 일요일 경마장을 다녀오는 길에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비를 만난다. 화창했던 날씨가 급변하여 자동차 와이퍼가 소용없을 정도로 우박과 섞인 비가 내려 물속을 나아가는 것처럼 힘들게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어느새 비가 가늘어서 이슬비가 되었고 그들의 시야에 좀머 씨가 잡힌다. ‘나’의 아버지는 이런 비를 맞고도 걷는 사람이 있다는 게 놀라웠고 곧장 그를 태워주기 위해 가까이 간다. 태워주겠다는 권유에 반응하지 않고 계속 못 들은 척 걷고 있던 좀머 씨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어서 타시라니까요, 글쎄! 몸이 흠뻑 젖으셨잖아요! 그러다가 죽겠어요!”

  그 말에 좀머 씨는 걸음을 멈추고 우뚝 서서 태워주겠다고 친절을 베푸는 이들을 똑바로 쳐다본다. 늘 웅얼거리고 회피하던 좀머 씨는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다시 없는 또렷하고 분명한 어조로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앞서 좀머 씨에 대해 알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없다고 했지만 그의 행적을 유추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짧은 단서는 있다. ‘좀머 씨가 우리 마을로 이사 와서 정착했던 전쟁 직후’라는 문장. 그가 이 마을로 들어오던 시기엔 모두가 배낭을 메고 다녀서 그의 행색이 특별한 게 아니었다는 것. 

  좀머 씨는 전쟁 직후에 이 마을에 왔는데 그는 왜 하필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이 마을로 왔을까? 좀머 씨는 전쟁 때 어디 있었을까? 뭘 했을까? 대체 어떤 일을 겪은 걸까? 왜 마을에 와서 사람들과 친분을 맺지 않을까? 왜 종일 걷기만 할까? 물음표 물음표 물음표… 계속 솟아나는 질문들, 알 것 같지만 결코 가늠할 수 없는 고통의 무게, 그런 것.  

   

  얇지만 결코 얇지 않은 책,  『좀머 씨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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