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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 Oct 18. 2021

갇힌 자와 가둔 자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알렉산드르 솔제니친, 민음사)

  지금은 정치인보다 저작(著作)과 강연, 방송인으로 더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자칭 ‘지식 소매상’ 유시민 작가는 1985년 스물여섯 살 당시 구치소 독방에 갇혀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읽게 된다. 현재 시중에서 구해 읽을 수 있는 판본에는 없지만 당시 번역본 서문에는 러시아 시인 니콜라이 네크라소프의 시 한 구절이 인용되어 있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구절. 유시민은 1심 유죄 선고에 맞서 제출한 ‘항소이유서’의 마지막 단락에 이 문장을 인용하였고 짧지 않은 분량의 이 항소이유서는 손에 손을 타고 널리 읽히고 퍼졌으며 지금까지도 명문으로 회자되고 있다.     


  ‘수용소 문학’으로 대표되는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자신의 수용소 수감 경험(1945~1953, 8년간)을 바탕으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1962)를 발표했고 1970년 노벨 문학상의 수상 영광까지 안게 된다. 당시 소비에트 연방의 요주의 인물이었던 작가에게 세계적인 상이 돌아감으로써 이 유명 작가는 함부로 할 수 없는 인사가 되어버렸고 『수용소 군도』(1974) 출판 이후 솔제니친은 미국으로 강제 추방되어 망명 생활을 하다 1994년 복권되어 러시아로 돌아오게 된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수용소의 하루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수용소라는 특수한 공간의 한정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인물 하나하나가 인간 군상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수용소의 하루인 동시에 어쩌면 인간 일반의 하루이기도 하여 끝내 인간은 무엇인가, 왜 사는가에 대한 질문에까지 이르게 하는 이야기.

     

  슈호프의 공식 죄명은 반역죄다. 전쟁에 참전한 러시아 병사였는데 독일군 포로로 잡혀갔다가 살아 돌아왔을 땐 생존 병사로서 환영받은 게 아니라 되려 스파이 누명으로 구속되는 지경이 이르고 만다. 이성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광기의 사유들이 죄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둔갑시킨 역사는 세계 어느 곳에서든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우리의 역사라고 이와 다를까. 그렇게 억울한 사유로 수용소에 들어왔지만 슈호프 같은 사람이 어디 한 둘이겠나. 저항하거나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어봤자 절망만 깊어질 것임을 체득한 슈호프는 어느새 그 생활에 몸을 맞추어 살고 있다. 생각하기를 그만 두고 질문과 회의를 멈춘 채 오늘 하루 주어진 만큼 열심히 노동하고 튀는 행동 하지 않고 열악한 환경에서나마 주어진 음식 최대한 열심히 먹고 잘 자는 것. 그것이 전부다. 수용소에서의 식사라는 것은 그저 희멀건 국물에 건더기 몇 개 둥둥 떠 있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나마도 건더기가 좀 더 많이 들어간 그릇을 내가 차지하기 위해 주의 깊게 지켜보고 마침내 따뜻한 국물 한 모금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면 그제야 오늘 하루 이걸 위해 살아왔구나 생각하며 작은 행복감마저 느끼게 된다. 오늘 점심은 귀리 죽이 나와 평소보다 든든한 식사도 했고 동료로부터 양보받은 몫도 있었을뿐더러 빵도 더 얻게 되어 자신은 이 하루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책에 묘사된 ‘수용소의 하루’라는 것은 형편이 그나마 좀 괜찮았던 하루였다는 말이다.

      

  이 작품에서 그렇게나 형편없는 식사라도 한 스푼 한 스푼 기도하듯 먹는 모습을 보면 자못 경건한 마음마저 드는데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저녁 식사 시간 우연히 슈호프 앞자리에 앉게 된 다른 반 수감인의 식사 장면이었다. 얼마나 수감 되어 있었는지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오래 수용소에 있던 그 노인은 모두가 그릇에 머리를 박다시피하며 허겁지겁 식사할 때 마치 혼자 정찬을 즐기고 있는 듯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건더기도 없는 국물을 단정하게 먹는다. 그릇으로 머리를 숙이기보다 수저를 높이 드는 방식으로 천천히 그렇게. 종잇장 씹는 것 같은 빵 하나도 식탁 위에 아무렇게나 두고 먹는 게 아니라 미리 준비해두고 있던 깨끗한 천을 깔고 그 위에 놓는다. 이 장면, 이 노인의 모습이 나는 참으로 장엄하게 느껴졌는데 자연스레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1919~1987)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프리모 레비는 『이것이 인간인가』(2007, 돌베개)에서 우리가 프로이센의 규율에 따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짓을 똑똑히 목격하고 증언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선 얼굴을 씻고 몸을 똑바로 세우고 걷고 자신을 존중해야 한다 말한다.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며 식사를 하고 빵 한 조각도 식탁 위에 그냥 올려두지 않았던 노인의 태도가 프리모 레비의 저 글 안에 있다. 어떠한 순간에도 끝까지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으려는 사람은 갇혀 있되 갇혀 있지 않다. 누구도 그런 사람의 높은 성정까지 가둘 수가 없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원제는 ‘수용소의’라는 공간적 한계를 두지 않은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다. 그리고 이렇게 해볼 수도 있겠지. ‘이반 데니소비치’ 대신 다른 이름, 가령 내 이름을 대입해보는 것. 삶의 어떤 조건에서라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지 않는 한, 우리는 자유롭다. 가두려는 자는 갇힌다. 그런 인간의 표상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유시민 작가 관련 내용은 『청춘의 독서』(유시민, 웅진지식하우스)에서 해당 부분을 참고함.



2021.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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