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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ex Sangwoo Kim Oct 15. 2015

(6) 절망에 끝에서 사랑을 만나다.

파란만장 뉴욕 이민 이야기(6)

대학교에 진학을 했다. 전공은 Electrical  engineering을 했다. 어차피 영어가 안되니 기술을 배워야 할 것 같았다. 어떻게든 살아남는데 익숙했던 나는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하겠다는 꿈은 사치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것 따위는 다 무시하고 졸업 후 취업이 보장되는 가장 안전한 학과를 택했다.


 문제는 입학 후였다. 꼴통 고등학교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교수님들의 말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물리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화학도 해본 적 없었다. 꼴통 고등학교에서는 그런 거 안 해도 졸업을 시켜 주었다. 그냥 사고만 안치면 졸업이었는데 다른 학생들과의 차이는 이미 걷잡을 수가 없었다. 노력을 안 해보지는 않았다. 죽기 살기로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노력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2년을 다녔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늦었었다. 내가 너무 무력해 보였다. 나는 그냥 이것밖에 안되는 사람이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그냥 돈을 벌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돌아가신 엄마를 볼 면목이 없었다. 한국에 있는 이모, 외삼촌, 사촌들 볼 면목이 없었다. 현실의 가난과 고단함은 견딜만 했는데 미래에대한 불안함은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절망적 이엇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담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전공을 포기하기도 싫었다. 그래서 학교를 자퇴하고 Suny  Farmingdale이라는 주립학교에 다시 입학을 했다. 이전에 공부한 2년을 그냥 포기해야 했지만 방법은 그것밖에 없어 보였다. 다시 시작하면 잘할수 있을것 같았다. 새로운 학교에 와서는 열심히 했다. 더 이상 도망갈 곳도 없었다. 이전 학교에서 느꼈던 절망을 다시 느끼고 싶지는 않았다. 다행히 2년 동안의 내공도 있었고 한번 배운 적이 있는 과목이어서 따라가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공부와 알바를 같이하는 게 힘들기는 했지만 더 이상 내 인생을 낭비할 수 없었다. 그렇게 대학교를 졸업하는데 6년이 걸렸다.


학교를 다니면서 난 한 번도 일을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형편이 좋을 때는 주말 알바만 뛰었고 그렇지 못할 때는 주중 알바도 같이 했다. 정말 안 해본 것 없이 했다. 젊어 고생은 사서 한다는데 지금 다시 하라면 절대 못할 것 같다. 아빠에게 손 벌리는 건 죽는 것보다 싫었다. 차라리 학비를 못 내면 자퇴할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꾸역 꾸역 학업을 끝냈다. 졸업이 가까워 오자 한 가지 아쉬움이 생겼다. 대학교 다니면서 한 번도 방학 때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었다. 여행을 가본 적은 더더욱 없었다. 하루하루가 치열했고 전쟁이었다. 졸업 전에 나를 위해서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다. 악착같이 일을한 덕에 수중에 돈은 좀 가지고 있었다. 한 학기 정도는 알바를 안 하고 버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과감하게 모든 알바를 그만두고 학교 후배와 함께 일주일 파리 여행을 계획했다. 가장 싼 숙소를 잡고 가장 싼 비행기 표를 샀다. 처음으로 가는 유럽여행이었다.


 일찍 예약한 덕에 비행기표도 호텔도 싸게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후배 누나와 누나의 친구들이 함께 가고 싶어 한다고 했다. 남자 둘이 가는 게 좀 그렇던 차에 싫다고 할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이미 예약을 끝낸 상태였기 때문에 호텔만 같은 곳으로 잡고 우리 다음 비행기로 파리에 도착을 하는 일정이었다. 드디어 기대하던 파리에 도착했다.  


파리 드골 공항에서 처음 그녀를 만났다. 뉴욕에 사는 사람을 파리에서 만나  첫인사를 하니 기분이 참 묘했다. 파리는 정말로 아름다운 도시였다. 처음 유럽에 가서일수도 있지만 내가 기억하는 파리는 건물 하나하나가 너무 아름다웠다. 모든 게 예술작품 같았다. 정말 아무나 만나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도시였다. 향기가 달랐다. 차가운 뉴욕과는 다른 무언가 따듯한 느낌.. 우중충하고 음산한 날씨도 너무 좋았다. 그냥 걸었다. 걸어도 걸어도 너무 좋았다. 나에게 처음으로 주는 상이었는데 근사했다. 잘했다 싶었다. 근데 그녀에게서는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는 못했다. 후배의 누나여서 거리를 두기도 했고 남자친구가 있다고 들었기도 했다. 난이미 파리에 꽂혀서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일주일간에 꿈같은 여행이 끝났다. 정말로 집에 돌아오고 싶지 않았지만 돌아와야 했다. 다시 치열한 일상으로.. 차가운 뉴욕으로 돌아가야 했다. 집에 돌아와서 서로가 찍은 사진을 교환하려 그때 많이 쓰던 MSN 메신저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메신저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만나서 밥도 먹고 그렇게 천천히 후배 누나에서 여자로 다가왔다. 사람들이 흔이 첫 만남에 전기나 후광 같은 건 없었지만 천천히.. 참 좋은 사람이란 걸 느끼며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렇게 마음속에는 사랑이 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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