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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ex Sangwoo Kim Oct 17. 2015

 (8)나와 결혼하면 넌 불행해져

파란만장 뉴욕 이민 이야기(8)

그녀가 떠나겠다고 했다.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바로 결혼하자는 것도 아니고 생각해보자는 거니까 그냥 그러겠다고 하고 넘겨도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한테는 소중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결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두려웠다. 보통 아들들은 아빠를 닮는다고 하지 않던가.. 나는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라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분명 실패할 것이다. 그러면 나와 그녀와 혹시 나올지도 모르는 나의 아이들이 모두 고통을 받게 된다. 바로 나 때문에. 누군가의 인생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비난받고 싶지도 않았다. 고통은 나로서 충분했다. 나는 결혼이란 것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마음속으로 결혼은  안 되겠다고 생각을 하고 헤어짐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다. 아무 조건 없이 나를 믿어준 사람. 내가  부끄러워하는 성장환경에 대한 부분들을 전혀 개의치 않았던 사람. 아니 되레 그건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말해준 사람.. 그런 사람 이었다. 어느샌가 내가 많이 의지하고 있었다. 헤어질 수 있을까? 자신 없었다. 처음 봤을 때 온몸에 전기가 흐르고 불타는 사랑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녀는 나에 일상이 되어 있었다. 내가 의지할 수 있고 나를 이해해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 혼자 있는 세상은 다시 상상하기 힘들었었다. 그냥 이기적이 되기로 했다. 나만 생각하기로 했다. 진지하게 결혼을 전제로 만나자고 했다. 어차피 내 인생은 결혼 한번 했다가 실패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녀에게 말했다. 아마도 불행할 거라고.. 그래도 괜찮겠냐고.. 난 자신 없다고 했다. 그녀는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를 믿는다고도 했다. 그 후로도 결혼에 대한 고민은 오랫동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난 아빠와 연락을 거의 하지 않았다. 아빠도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우리 집을 어떻게 알았는지 딱 한번 불쑥 찾아와서 집을 한번 쓱 돌아보고 간 게 전부였다. 그녀를 만나고 나서는 많이 달라졌다. 나와 아빠의 관계를 풀어주려고 항상 노력했다. 서로 만나면 쳐다보지도 않던 두 부자 사이에서 항상 윤활유 같은 역할을 했었다. 항상 나에게 아빠에게 잘하라고 잔소리를 했다. 천천히 아빠와의 관계도 나아지고 있었다. 늘 한결같이 고집불통이고 짜증 나는 아빠였지만 그녀와 함께 있으면 견딜 만했다. 참 고마웠다. 따듯한 마음이 참 좋았다. 어쩌면 괜찮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이랑 같이 한다면 해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 집에 놀러 가면 부모님이 항상 따듯하게 맞아 주셨다. 어머님 아버님 결혼하실 때 반대를 너무 심하게 격으셔서 본인 딸이 결혼할 때는 아무 간섭도 하지 않겠노라고 하셨다. 따듯한 가정환경이 참 좋았다. 가끔 질투가 날 정도였다. 가정이란 거.. 결혼이란 거.. 모두가 슬프고 나쁜 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와의 관계가 좀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좋지는 않았다. 결혼을 하려면 결혼 자금이 필요한데 죽어도 도움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에게 말했다. 결혼을 한다면 돈이 필요한데 난 집에서 한 푼도 도움을 받고 싶지 않으니 너도 집에서 한 푼도 돈을 받지 말라고 했다. 내 상황을 이해해 주고 선뜻 그러겠다고 대답해주는 그녀가 고마웠다.  그다음달부터 통장을 만들어서 둘이서 돈을 모았다. 혹시라도 헤어지면 반씩 나누자고 약속을 하고 일단 돈을 모았다. 그렇게 2년 가까이 열심히 돈을 모았다. 누군가와 같이 만들어가는 무언가가 있다는 게 참 뿌듯했다. 차곡차곡 결혼 비용이 모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결혼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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