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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ex Sangwoo Kim Oct 22. 2015

 (9)결혼.. 하늘에 계신 엄마에게 허락 받다.

파란만장 뉴욕이민 이야기(9)

결혼 이야기가 나오고 또 몇 년이 흘렀다. 그렇게 한참을 만나고 나서야 결혼이란 것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이 사람이라면 할 수 있었다. 나도 보통 가정을 꾸리고 살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문제라면 바꿀 것이다. 나를 분명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말했다. 둘이 열심히 돈을 모아서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결혼할 준비가 되면 결혼을 하자고.. 참 멋도 없게 프러포즈를 했다.


2년을 꼬박 결혼비용을 모았다. 돈도 돈이었지만 결혼을 결심하기까지의 시간이기도 했다. 혼수도 패물도 안 하기로 했다. 신혼집은 그녀가 처녀시철 친구와 같이 살던 아파트에 그대로 살기로 했다. 웨딩드레스를 빌리러 가서는 그중에서 가장 단순하고 가격이 저렴한 드레스를 골랐다. 자기는 눈이 싸구려 같다면서 그 드레스가 제일 예쁘다고 말하는 그녀가 참 예뻤다.


예쁜 결혼식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가격이 많이 나가는 것들은 모두 발품을 팔아 장만했다. 청첩장을 인쇄하는 비용이 너무 비싸서 가게에서 종이를 사고 하나하나 프린트하고 오려서 직접 만들었다. 결혼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수십 군데 발품을 팔아서 다 다녀보면서 하나하나 따져 보고 결정했다. 준비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조금씩 우리 힘으로 해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성당을 다니던 그녀는 결혼의 조건으로 성당에서 하는 결혼식을 원했고 성당에서 혼배성사라 는 것을 하기 위해서 난 세례를 받아야 했다. 난 반년 간 알아들을 수 없는 신부님의 강의를 들어가면서 세례공부를 해야 했다. 내가 평생 나 말고 누군가를 위해 투자한 가장 많은 시간인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결혼식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데 결혼식을 위해서 하나하나 같이 준비했던 시간들이 많이 기억에 남는다.


결혼.. 드디어 내가 결혼을 했다. 가정이라는 것 자체를 싫어했던 내가 아주 작게나마 가족을 이루어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신혼여행은 한국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미국에 간 꼬맹이가 이렇게 잘 커서 결혼을 했다고 날 알던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한국에서 그리운 얼굴들을 만났다. 가장 보고 싶었던 사람은 큰 이모였다. 엄마가 가장 많이 의지했던 언니였다. 엄마와도 많이 닮으셨다. 고등학교 때 나쁜 길로 빠질 유혹이 있었을 때 나중에 큰 이모에게 부끄러운 사람이 되면 엄마가 하늘에서 얼마나  창피해하실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오래간만에 보는 이모는 나이가 많이 들어 있으셨다. 하긴.. 세월이 얼만데.. 이모는 너무나 반갑게 맞아 주셨다. 나 뿐만 아니라 나와 같이 간 내 아내도 며느리 보듯이 예뻐해 주셨다. 난 왠지 엄마에게 결혼 승낙을 받은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국에 간 큰 이유 중 하나는 엄마를 만나는 것이었다. 하나뿐인 자식은 너무 어리고 또 머나먼 타국으로 떠나야 했기 때문에 엄마는 화장을 했다. 할머니가 살아계셨기 때문에 묘를 쓸 수가 없다고 했다. 관리할 사람도 없었다. 화장터에서 정말 한줌  재가되어서 나오는 엄마의 모습이 아직 기억이 난다. 뼈를 곱게 갈아주시는 분에게 뒷돈을 주며 잘 부탁한다고 하던 삼촌의 모습, 작은 항아리에 담겨나오던 모습들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엄마는 삼막사라는 절 건너편에 뿌렸다. 순식간에 항아리는 비었고 엄마는 사라졌다. 그러고 십여 년이 흐르고 나는 평생을 약속한 그녀와 함께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참 아름다운 곳이었다. 앞이 훤하게 트여서 멀리까지 내려다 보였다. '엄마.. 꼬맹이 상우가 커서 결혼을 합니다. 축복해 주세요. 잘 살게요.. 지켜봐 주세요.. ' 마음속으로 기도를 하고 산을 천천히 내려왔다. 구불구불한 산을 걸어내려 오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다. 삐뚤어지기 만한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약속하고 또 돌아가신 우리 엄마에게 인사를 드리고 산길을 내려오고 있는 그녀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할까.. 참 인연이라는 게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진짜 결혼을 한 거구나..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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