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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ex Sangwoo Kim Oct 28. 2015

(11)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

파란만장  뉴욕이민 이야기 (11)

사실 실감이 안 났다. 그녀의 배는 점점 불러오고 배속에 아이가 있다고 한다. 그애가 내 아이라고 한다. 내가 아빠가 된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자격은 있나?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을까? 그럴 능력은 되나? 겁이 났다. 뱃속에 아이가 커가면서 생각은 점점 많아지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나의 아빠 같은 아빠는 되지 말자라는 생각을 했다. 아이와 같이 있어주지 못하는 아빠는 아빠가 아니다. 나를 두고 일찍 떠나버린 엄마 같은 부모는 되지 말자.. 아이가 클 때까지 건강하게 있어주자. 내 몸은 더 이상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이제는 내가 아니라 아빠다. 내가 평생을 미워하던.. 나의 아빠 같은 아빠는 되지 말자.. 매일같이 다짐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아이에 대한 사랑보다는 사명감에 가까운 마음이 들었다. 좋은 아빠가 되겠다는 사명감.. 어쩌면 나 자신에게 난 아빠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을 수도 있다. 어느 날 와이프가 병원에 가서 정기 진단을 받았는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는데 와이프에게 특별한 유전자가 있어서 만약에 나도 와이프와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면 아이가 척추장애로 태어날 확률이 50% 가 넘는다고 했다. 흔하지는 않지만 혹시 모르니 나도 가서 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만약에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사실 자신 없었다. 멀쩡한 아이도 키울 자신이 없는데 장애아라니.. 만약에 혹시라도 내가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면 50% 의 확률을 감수하고 아이를 낳아야 하나? 낳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유산을 시키나? 아이를 죽인다고? 그게 사람이 할 짓인가? 정말 검사를 기다리는 며칠 동안 별별 생각을 다 했다.


검사를 하기 전날 와이프와 이야기를 했다. 혹시라도 내가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장애가 있다고 해도 우리 아이가 덜  소중해지는 건 아니다. 검사 결과와  상관없이 무조건 낳는 거다. 꼭 검사를 하기 전에 결론을 내고 싶었다. 검사 결과가 나오면 내 마음이 어떻게 바뀔지 몰라서 미리 못을 박아 놓을 필요가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때 처음으로 내가 사명감이 아니라 아이를 정말로 사랑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확률이 그렇게 높은 것도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며칠을 지옥 같은 상상을 하면서 지냈는지 나도 잘 이해가 안 가지만 그때는 아이에 관한 아주 작은 일들도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처럼 나에게 다가 왔다. 이후로 와이프가 임신 당뇨에 걸리는 등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아이는 잘 커주었다. 


여자아이란다. 내가 예쁜 공주님의 아빠가 된다고 했다. 처음부터 딸을 갖고 싶었다. 이상하게도 이후부터는 분홍색이 좋아지는 신기한 현상을 격기도 했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열심히 아이를 맞이하기 위햇 준비했다. 그녀는 직접 이불과 배냇저고리를 만들어 주겠다고 열심히 바느질을 했고 나는 아이의 방을 열심히 꾸몄다. 육아서적을 읽고 매일 저녁 그동안 방송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봤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어떻게 가르처야 하나 나 혼자 매일 고민하는 행복한 뻘짓을 했다.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양수가 터졌다고 했다. 전화를  내려놓자마자 집으로 날아 갔다. 집이 그렇게 멀지 않은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것 같은지.. 집에 도착해서 그녀를 태우고 병원으로 향했다. 엄마의 오랜 투병생활 때문에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병원인데 그날은 달랐다. 즐거웠다.

내 아이가.. 우리에게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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