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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ex Sangwoo Kim Nov 07. 2015

(13) 아버지.. 덧난 상처같이 쓰라린 이름..

파란만장 뉴욕 이민 이야기 (13)

아버지라는 이름은 나에게 보통 사람들과는 늘 다른 의미로 다가 왔다. 나를 버리고 간 사람... 배신자... 엄마를 아프게 만든 사람...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할 수 없이 아버지에게로 와서 함께 살면서도 아버지에게 언쳐살아야 하는 내 나이가, 내 처지가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에 유년시절 그리고 20대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미움으로 가득했다. 


그런 내가 30대가 되었다. 나를 버리고 떠난 그 시절의 아버지와 비슷한 또는 그보다 많은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자식이라는 이름의 인연이 생겼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아니면 내가 부모가 되어서 그런지 그 시절의 아버지와 나 자신이 자꾸 겹 처지는 느낌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그때의 아버지를 아버지라는 이름이 아닌 20대 후반의 그냥 평범한 남자로서 다시 바라보고 있었다. 20대 후반의 아버지는 무슨 심정으로 가족을 놔두고 미국으로 떠났을까? 왜 나를 버린 건가? 그리고 가장 궁금했던 것.. 그는 미국으로 떠나서 나 없이 행복하게 살은 건가? 그의 인생은 행복했는가.. 


아버지에게 들은 아버지의 삶을 이러했다. 하는 일이 다 잘 안됬던 아버지는 돈을 벌기 위해서 미국행을 결심한다. 그때 늘 다 그랬듯이 얼마 없는 돈을 이민 브로커에게 주고 미국으로 불법 입국해서 (지금 한국의 불법 노동자들이 그러하듯) 평생을 불법 노동자로 살아 왔다. 미국에 처음 떨어졌을 때 영어 한마디 못하는 아버지의 수중에 돈은 한 푼도 없었고 당장 잠을 잘 잠자리 마저 없었다. 무작정 길을 걷다가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운영하는 가게에 들어가서 일을 시켜달라고 매달리고 잠자리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때 처음 들어갔던 가게가  꽃가게였고 아버지는 평생 꽃에 관련된 일을 하셨다. 아버지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때 세탁소로 들어갔으면 아마 지금쯤 세탁소를 하고 있을셨을 것이라고 했다. 그만큼 아버지는 아무런 도움도, 정보도 없이 막막하게 혈혈단신 미국으로 넘어온 것이었으리라. 왜? 가족에게서 도망가기 위해서? 나를 버리고 행복하고 싶어서? 아마도 그만큼 절실했을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아마 처음에는 그렇게 떠나셨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리디 어린 20대 청년이 아무도 모르는 심지어 자기 몸 하나 뉘 일 곳 없는 미지에 땅에 처음 떨어졌을 때 어떤 마음이 들었을지.. 내가 처음 미국에 떨어졌을 때의 그 막막함과는 아마 비교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고단한 이민생활을 하면서 아버지는 버는 돈을 모두 한국으로 보냈고 열심히 살았다고 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엄마와의 사이가 나빠지게 되었고 결국 이혼을 했다고 했다. 그 후에도 나를 위해 계속 생활비를 보냈다고 했다. 아버지는 늘 나를  그리워했다고도 했다.


엄마의 이야기는 달랐다. 아버지는 미국으로 가서 어떤 여자를 만나서 우리에게는 돈을 한 푼도 주지 않고 외면했다고 했다. 엄마가 일을 안 하고도 이렇게 살수 있는 이유는 엄마의 당시 남자친구가 우리에게 돈을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전적으로 엄마를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내가 믿고 있는 것이 다 진실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물어볼 엄마는 이미 하늘에 가있고 진실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아니 사실 알고 싶지 않다고 해야 맞는 것 같다. 누구 말이 사실 이건.. 아니면 두 사람의 말 모두 거짓이건.. 나에게 남는 건  상처뿐이기 때문이다. 아픈 상처를 굳이 들어내서 다시 파내고 싶지는 않다. 


아버지의 말이 사실 이건 사실이 아니건 아버지도 미국으로 와서 쉽지 않은 인생을 산건 분명해 보였다. 영어 못한다고 무시당하고, 이민자라고 무시당하고, 가난하다고 무시당하고.. 그렇게 평생을 험한 일을 하시며 힘들게 사셨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런 삶을 견딜 수 있었을까? 아버지는 정말 나를 버린 걸까? 정말 엄마 말대로 아버지가 능력이 없어서 미국에서 한 번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고 해도 내가 그걸 원망할 수 있을까? 난 아버지에게 희생을 강요할만한 자격이 있는가..? 아버지도 그냥 보통 사람이 뿐인데.. 아버지의 무거운 어깨가.. 굵어지는 주름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에게 쓰라리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이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아버지는 벤츠를 구입했다. 우리 집은 더 이상 가난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벤츠를 살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난 아버지가 이해가 갔다. 평생 자가용 한번 없었던 아버지.. 항상 꽃배달 트럭을 몰고 다니던 아버지였다. 평생 처음으로 사는 아버지의 자가용 이었다. 한 번쯤 타 보고 싶으셨을 것이다. 평생 힘든 일 만한 자기에게 주는 선물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는 처음으로 자가용을 구입했다. 그러고 한 달 정도 지났을까.. 아버지는 벤츠를 몰고 우리 집으로 오셨다. 그리고 나에게 아버지는 이제 충분히 타 봐서 더 이상 미련이 없다며 나에게 차를 가지라고 하셨다. 아이가 생겼으니 손녀에게 가장 안전한 차를 태워주고 싶으시다고 했다. 아마 처음부터 이러시려고 원하시던 세단이 아닌  SUV를 사신 것 같았다. 난 아버지의 도움을 병적으로 싫어했다. 엄마가 그렇게 미워했던 아버지의 도움을 받는다는 게 왠지 엄마에 대한 배신 같기도 하고 아버지를 그렇게 원망하면서 도움은 받는다는 게  이중인격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버지 도움이라면 질색을 하던 아들이 서운하셨던 것일까.. 이제 더 이상 아버지 도움이 필요 없는 아들 대신 손녀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으셨던 것일까..  그동안 아들과 부모의 정을 나누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 소중한 손녀에게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자리를 확인하고 싶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해줄 수 있었던 최고의 선물은 아마 그의 상식에서는 세상에서 제일 비싼 벤츠였었나 보다. 난 받을수 없었다. 아빠가 트럭을 몰고다니시면서 고생 고생 어렵게 모은 돈으로 산 자신에게준 첫 선물이 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너에게 주는 게 아니라며 내 손녀에게 주는 선물이니 너는 간섭하지 말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그렇게 아버지의 생에 처음 승용차를.. 꽃배달 하면서 한두 푼씩 모아서 어렵게 산 그 차를 우리 집에 던져 두고 가셨다. 그리고 다시 평생 타시던 꽃배달 트럭을 타고 다니셨다.


아버지의 얼굴에는 이미 짙은 주름이 자리 잡아있다.  아직까지 트럭을 몰고 다시시면서 일을 하시는 아버지가 늙었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어느 날 문득 자세히 살펴본 아버지의 머리는 백발이 되었고 환갑을 훌쩍 넘은 누가 봐도 할아버지가 되어가고 있다. 굵은 주름이 세월을 말해주고 있다. 아버지가 어떻게 살았건 나의 아버지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아버지의 인생을 평가할 수도 원망할 수도 없다. 그런 권리는 나에게 처음부터 없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인생을 살았고 그것으로서 존중받아야 했다. 아버지에게 못 되게 한 지난날이 후회가 되었다. 왜 진작 아버지에게 마을을 열지 못하였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계속 내 마음이 풀리기를 묵묵히 기다리셨을지도 모른다. 


가끔 아버지가 버릇처럼 '네가 크는걸 보지 못한 게 내 인생의 가장 큰  한이다'라고 말하실 때면 마음이 아프다. 손주들 앞에서 한없이 행복한 웃음을 지으시는 아버지.. 이제 아버지와의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동안 아버지의 마음속에 있는 상처가 다 아물 수 있을지.. 그게 가능하기는 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한 건 아버지의 가슴에 그 상처를 낸 것도 나고 그 상처를 보둠어 줄 수 있는 사람도  나라는 사실이다.


더 많이 사랑할 것이다. 더 많이 표현할 것이다. 이 세상에 아버지와 아들로 태어나 남들과는 약간 다른 그런 힘든 세월을 보냈지만 이제는 더 이상 후회가 될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라는 이름이 더 이상 나에게 아프게 다가오지 않을 날이 올 거라고 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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