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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ex Sangwoo Kim Nov 12. 2015

(14) 나는 그렇게 지금 어른이 되어 여기 서있다.

파란만장 뉴욕 이민 이야기 (마무리)

미국으로 이민 온지 20년이 다 되어 간다. 이제는 한국에서 산 시간보다 미국에서 산 시간이 길어졌다. 낯설었던 뉴욕이라는 도시는 나에게는 곳곳에 내 삶과 추억이 깃들어 있는 고향 같은 곳이 되어버렸다. 어찌 보면 지지리 복도 없어서 어릴 때부터 타지에서 그 고생을 하며 살았나 싶다가도 어찌 보면 한국에서의 삶은 더 힘들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지금 생각하면 아프고 쓰라렸던 기억들도 모두 아물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고 행복했던 기억들과 함께 나의 인생에 일부분이 되어있다. 사람의 본능인지 아니면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아프고 힘든 추억도 지나고 나면 아름답게 포장이 된다. 심지어  그리워하기까지 한다. 그렇게 나는 여태까지 나쁘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나 자신을 위로하며 앞으로의 삶을 그려본다.  


이제 나는 6살 4살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있다. 저녁에 분명히 자기 침대에서 재워놓은 막내는 아침에 눈을 떠보면 언제 왔는지 내 다리 밑에 꼭 붙어서 쌔근쌔근 잠을 자고 있고 든든한 첫째 딸은 얼마 전 엄마에게 카톡 하는 법을 배워서 시도 때도 없이 카톡으로 하트를 날린다. 퇴근시간이 가까워 오면 두 꼬맹이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회사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달려가면 아빠 차 소리를 귀신같이 알고 맨발로 뛰어나오는 녀석들을 보면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는 말이 이해가 간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사람들에게 정을 잘 주지 않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 녀석들에게는 완전 항복이다. 


멈춰 있던 내 맘을 밉게도 고장 난 내 가슴을 너의 환한 미소가 쉽게도 연거야 - Nothing better 중


아빠로서의 삶은 여태까지 내가 살아온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내 인생의 중심은 더 이상 내가 아닌 나와 그녀.. 우리의 아이들에 맞추어져 있다. 옛날에 먹을게 없어서 나무뿌리 벗겨먹던 시절도 아닌데 왠지 우리 첫째가 좋아하는 홍시에는 손이 가지 않는다. (나는 원래 홍시 귀신이다) 하나라도 저 조그만 입속에 넣어주고 싶은걸 보면 어릴 적 외가에 놀러 가면 하루 종일 뭔가 해 먹이시던 할머니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버릇 나빠질까 짐짓 엄한 척을 해봐도 녀석들의 눈을 보고 있으면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등에 땀이 난다. 


아빠가 돼보니 내 부모님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게 되었다. 부모라는 엄청난 타이틀을 얻고 나니 그 안에 나는 아직도 그저 한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 우리 부모님도 그랬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나니 어느 순간 '부모' 가 되어 있었겠지.. 그저 연악한 두 청춘이었을 우리 부모님에게 나는 당연히 받아야 할 빛이 있는 사람처럼 그들에게 내 행복을 요구하고 그것을 지켜주지 못한 그들을 원망하고 미워했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은 그게 당연한 듯 죄인처럼 나에게 늘  미안해하셨다. 그게 부모인가 보다. 아이가 뛰어가다 혼자 넘어져도 잡아주지 못해서 미안한 게.. 다 내 탓인 것 같은 게..  그게 부모인가 보다.  


미안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이가 먹을수록.. 수없이 던졌던 날카로운 원망들이, 주름이 가득한 아빠의 얼굴이 나에게 후회가 되어 다가온다. 부모가 되어 봐야 알 수 있다더니.. 

아빠.. 정말 미안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지난 여름 처음으로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한국에 가서 엄마를 뿌린 산에 올라갔다.  내비게이션 없이는 맨날 가는 식당도 못 찾아가는 나지만 희한하게 다 기억이 난다. 또렷하게..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엄마와 함께 살아온 날보다 엄마 없이 살아온 날이 더 많지만 한여름 마룻바닥에 팔베개를 하고 같이 누워서 느꼈던 엄마.. 돌아가시기 얼마 전 병원 침대에 같이 누워서 울며 맡았던 엄마 냄새..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아이를 낳고 키워보니 내가 죽는 거 보다 아이들 걱정이 먼저 되는 부모 마음이 느껴진다. 죽음을 준비하며 아들을 보살피지 못하고 오래전 이혼해서 먼 타국에 살고 있는 남편에게 보낼 준비를 하던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저며 온다. 


엄마를 뿌린 그 자리에 오자마자 참을 수 없는 눈물이 흐른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이 자리에 다시 서니 감회가 새로웠다. 지나간 시간들이 빠르게 머릿속을 지나간다. 엄마가 보셨으면 눈에 넣어도 안 아프셨을 손주들은 아빠가 왜 우는지도 모르고 깔깔되며 뛰어다녔다. 그리움, 고마움, 미안함, 안타까움 같은 감정들이 뒤섞여서 흘러내려 왔다. 이제는 딱쟁이가 되어 아프지 않은 상처지만 가슴 한편이  먹먹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보다.

엄마.. 난 잘 살고 있어.. 걱정 마시고 편안하게 지내요. 그립고.. 미안하고.. 고마워.. 사랑해.


나는 항상 엄마가 하늘에서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아마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느끼는 기분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기쁜 일이 있을 때나 슬픈 일이 있을 때 나도 모르게 의지하게 되는 그런 존재.  이제  '엄마'라고 누구를 부르기가 민망한 나이가 되어있지만 그렇게 엄마는 다른 사람들과는 약간 다른 방식으로 내 인생을 함께했다. 


이제  서른다섯.. 한 가정의 가장, 두 아이의 아빠, 한 여자의 남편, 아빠의 아들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난 인생을 살아간다. 어쩔 때는 힘에 부치기도 하지만 소중한 사람들이 날 다시 일으켜 준다. 나는 더 이상 약하지도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는다. 내 소중한 가족들이 있는한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지금 어른이 되어 여기 서있다.  


(파란만장 뉴욕 이민 이야기 마침)

                                                   



처음에는 가볍게 뉴욕 사는 이야기를 하려고 브런치를 시작했었고 첫 시작으로 이민 온 첫 이야기를 두 편 정도 쓰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제가 잊고 있던 많은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정말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아내에게도 제 살아온 이야기를 이렇게 자세하게 이야기해본 적이 없는데 글로 쓰니까 술자리에서 하는 주정처럼 아무 생각 없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써버린 것 같네요. 쓰다보니 2편이 14 편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제는 그냥 타지에 살면서 느끼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할까 합니다. 답글로 응원해주신 분들께 정말 감사드려요.  처음 써보는 글이고 한국에서의 배움이 짧아 맞춤법도 잘 몰라 많이 모자란 글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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