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이야기
한국 TV에서 누군가를 소개할 때 가끔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온 재원이라는 소개를 듣는다. 어떻게 미국에서 공부한 사실만으로 '재원'이라는 타이틀을 붙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한국에서 유학, 특히 '미국 유학'에 관한 허상들에 대해서 말해보려고 한다.
허상 하나 - 어학연수 다녀오면 최소한 영어는 잘한다.
아마도 가장 큰 오해 중에 하나일 것 같다. 유학을 하면 분명 한국보다는 영어를 접할 기회는 많아진다. 그러나 한국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항상 미국인과 대화하며 영어를 24시간 쓰고 살아가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한국 유학 agent를 통해 1년간 어학연수를 다녀온다고 치자. 미국에 도착해서 어학연수 학원 또는 학교라는 곳에 가보면 반 이상이 한국인일 확률이 높다. 전부라고는 할 수 없지만 많은 학생들이 수업시간 이외에는 한국 학생들끼리 어울려서 하루를 보낸다. 한국 학생들끼리 집을 빌려 생활하고 저녁에는 인터넷으로 한국 드라마를 본다. 그들이 영어를 쓰는 시간은 수업시간뿐이다. 정말 운이 좋아서 한국인이 전혀 없는 (존재할지는 모르겠지만) 어학연수 학원에 들어갔다고 치자.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은 다들 외국인 들이다. 영어로 서로 이야기를 하겠지만 손짓 발짓을 이용한 언어소통일 뿐 정확한 영어를 배우기는 힘들다. 결론 적으로 자신의 노력이 없다면 절대로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는 말이 된다. 일부러 한국어를 쓰는 환경을 피하고 현지인 친구를 만들고 문법을 공부하는 노력을 해도 1년 어학연수는 턱없이 짧은 시간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1년 어학연수는 정말 짧다. 이곳에서 영어를 시작해서 어느 정도 레벨까지 올라가기는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한국에 있을 때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 다들 회화를 중요시 하지만 기본은 문법과 단어다. 최대한 많은 단어를 알고 문법을 확실히 하고 연수를 오면 확실히 받아들이는 속도가 빨라진다. 어학연수 일 년 동안에는 영어 울렁증 극복과 현지에서 실제로 쓰는 영어와 교과서 영어의 차이점들을 비교하고 수정하는데 써야 한다.
만약 어학연수의 목표가 그저 이력서에 한 줄을 추가하는 거라면 차라리 확실하게 1년 동안 가보고 싶은 곳, 하고 싶었던 것, 먹고 싶었던 것 먹으며 미국 문화를 제대로 즐겨보는걸 추천한다. 평생 1년 동안 외국에 살아볼 기회가 얼마나 되겠는가? 이도 저도 아니고 한국 친구들끼리 모여 한인타운에 있는 술집이나 전전하면서 다니기에는 시간과 젊음이 너무 아깝다. (뉴욕에 엄청 많다 이런애들..)
허상 둘 - 조기유학으로 아이들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으면 기러기 아빠가 되어도 좋다.
내가 예전에 나쁘지 않은 오퍼를 받고 한국에 있는 회사를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한번 있었는데 결국엔 포기했던 가장 큰 이유가 아이들의 교육이었다. 미국의 교육이 특별히 좋다는 게 아니고 난 그저 아이들을 좀 여유롭게 키우고 싶었고 한국에서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한국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해보지는 않았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경쟁에 경쟁을 거듭해야 하는 시스템을 피해 선진 교육을 시켜주고 아이에게 더 큰 세상을 보여준다는 것.. 부모가 해줄 수 있는 큰 선물일 것이다. 아이가 어릴때 외국어를 접하면 정말 놀라운 속도로 배워나간다. 나도 좀 더 일찍 미국으로 왔다면 대학교 공부나 직장생활이 좀 수월 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든다. 영어를 제대로 하려면 중학교 이전에 유학을 와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조기유학은 확실히 언어습득에는 최고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기러기 아빠' 다. 기러기 아빠던 독수리 아빠던 나는 가족이 분리되어오는 유학은 반대다. 부모가 바라는 데로 아이가 초등학교 때 유학을 와서 미국에서 대학까지 졸업을 했다고 가정해보자. 아이는 미국 대학 졸업장을 얻는 데신 아버지와의 유년시절 추억을 잃었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취직을 한다고 하면 앞으로도 아버지를 만날 일은 거의 없을 것이며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아버지와의 유대감이 없기 때문에 거리감이 있을 것이다. 심지어 언어자체가 달라서 부자간에 말도 안통하는 집도 많이 있다. 많은 기러기 가정들이 겪는 어려움이다. 가족의 끈끈한 연결고리를 도대체 무엇과 바꿀 수 있을까?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아버지의 부재로 겪은 어려움이 상처가 될 것이며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자신의 희생을 알아주지 않는 아이들이 서운할 것이다. 극히 일부가 일으킨 사건이긴 하지만 아이와 같이 미국으로 온 어머님들과 골프 티칭 프로와의 분륜 으로 교포사회가 시끄러웠던 적도 있다. 인생에서 가장 큰 의미는 영어도 미국 대학 졸업장도 아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가족은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 청소년기에 미국으로 오게되면 정체성에도 혼란이 오고 극심한 스트레스에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아이들이 많이 있다. 이때 울타리를 치고 잡아주어야할 부모가 없다면 문제가 더욱 커지기도 한다. 엄마 혼자의 힘으로는 힘겨울 때가 많이 있다.
허상 셋 - 유학 없이는 영어를 잘할 수 없다.
대학교 때 한국에 있는 대학교와 자매결연 같은 것을 맺어서 교환학생이 왔었는데 그 여학생은 한 번도 외국에 나가서 공부를 해본 적이 없는 학생이었다. 두 학기 동안 올 A를 받고 돌아갔다. 영어를 빨리는 못하지만 정확하게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어설프게 미국에서 산 나보다 reading이나 writing 이 훨씬 더 좋았다. 준비를 많이 하고 미국으로 온 유학생들을 보면 확실히 유학 없이도 영어를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낀다. 물론 유학이 도움은 되겠지만 필수는 아니다.
목표 없는 유학은 시간낭비이다.
뚜렷한 목표의식 없이 그저 외국에 나가면 무언가 되겠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온 사람들은 분명 돈 낭비 시간낭비를 한다. 자신이 이루고 자하는 목표를 뚜렷하게 가지고 매달려야만 무언가 얻어서 갈 수 있을 것이다. 어학연수를 온 지인들을 보면 될 수 있으면 2년 제라도 정식 학교를 다니라는 말을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미국 대학은 졸업이 입학보다 훨씬 어렵기 때문에 들어가기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그리고 졸업이라는 목표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영어가 늘어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미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취업 선택의 폭도 넓어진다.
유학보다 준비단계가 중요하다는 사실도 꼭 기억하자. 많은 돈을 들이고 미국까지 와서 문법을 공부하는데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한국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해놓고 와야 미국에서의 시간을 진짜 값지게 쓸 수 있다.
도전은 아름답다. 그러나 유학이라는 것은 쉽게 할 수도, 많은 사람에게 기회가 주워지는 것도 아니다. 만약 유학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면 최대한 준비해서 기회를 내 것으로 만들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