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이야기
미국에 오랫동안 살다 보면 겁쟁이가 된다. 미국에 처음 와서 많이 느낀 것 중 하나가 '오버들 한다'였다.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라고 생각될 만큼 안전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데 미국에서 20년간 살아보니 나도 모르게 미쿡 스타일이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지난여름 가족들과 한국에 한 달간 다녀왔는데 나 나름대로는 문화 충격이라고 느낄만한 일들이 많이 있었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간 여행이라서 좀 더 민감하게 굴었을 수도 있지만 이것저것 신경 쓰는 나와 아내를 보고 아내의 이모님 께서 '오버들 한다'며 일침을 놓으셨다. (정확하게는 좀 더 터프한 표현이었지만 품위 유지를 위해 '오버들 한다'로..) 물론 인정한다. 오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점점 한국도 '안전'에 대해 민감해지고 있는 시기에 약간의 다른 시각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
아이들이 혼자 돌아다닌다.
처음에 한국에 아파트 단지에서 혼자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고는 찔끔 놀랐다. 생각해 보면 나도 국민학교 1학년 때부터 버스를 타고 혼자 통학했던 게 기억이 난다. 맨날 아침에 나가서 저녁때 들어오고는 했다. 그런데 오래간만에 보니 적응이 안된다. 미국에서는 절대로 아이가 혼자 돌아다니지 않는다. 아마 초등학교 4학년쯤 되야지 혼자서 등하교를 할 수가 있을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찻길만 건너면 바로 학교인데도 (심지어 우리 집 창문에서 학교 정문이 보인다) 부모가 인계하러 오지 않으면 절대로 아이를 내보내지 않는다. 혹시 모르는 사람이 와서 아이를 인계해 가려고 하면 부모와 연락한 후에 신분증 확인을 거쳐서 아이를 내보낸다. 아이가 아무리 인계하러 온 사람을 잘 알아도 확인 절차가 없으면 내보내지 않는다. 한국에서 아이들이 잠깐 미술학원에 다닌 적이 있었는데 아내에게 버스시간을 잘못 알려주는 바람에 아이를 데리러 나가지 못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미술학원 버스기사는 6살 4살 두 아이를 놀이터에 떨궈주고는 그냥 가버렸다. 30분 후 아내가 놀이터에서 둘이 덩그러니 기다리고 있는 아이를 보고 너무나 놀랐다고 했다. 학원에 전화해서 항의를 했지만 그렇게 큰일처럼 받아들이는 것 같지 않았다고 했다. 미국에서 같은 일이 있었으면 아마 그 버스기사는 경찰서에 갔을 것이다. 문화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다.
이건 사실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미국처럼 넓은 평지에 지어진 도시가 아니라 산도 많고 길도 좁기 때문에 인도를 만들기가 불가능해 보이는 부분이 있다. 근데 문제는 골목길에서도 차가 너무 쌩쌩 달린다는 것이다. 주차된 차 사이로 아이들도 뛰어다니고 사람들도 튀어나오는데 차들은 너무나 태연하게 쌩쌩 달린다. 그리고 약간 알아서 피해야 되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 미국에서는 보행자 위주다. 보행자가 길을 건너면 당연히 차는 서 있어야 하고 건널목을 다 건널 때 까지는 움직이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보행자가 길을 건너는 중에 차가 지나갈 공간만 생기면 뒤로 쌩~ 하고 지나간다. 사람이 적응의 동물인지라 금세 적응이 되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꽤나 위협적이었다.
카시트는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다.
요즘에는 많이 바뀐 것 같다. 하지만 완전하게 정착하지는 않은 것 같다. 미국에서는 어린아이가 카시트에 타지 않으면 티켓을 받는다. (한국은 기준이 어떤지 잘 모르겠다) 안전 기준을 통과한 카시트만이 판매가 되고 있고 나이와 몸무게에 따라 카시트의 종류도 여러 가지가 있다. 우리 아이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국에서 카시트 없이 차를 타 보았다. 사실 편하긴 엄청 편했다. 아이들도 좋아하고 어른도 편했다. 하지만 어떤 편리함도 아이의 안전과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경찰을 무시한다
미국에서는 운전을 하다 속도위반으로 경찰에게 잡히면 두 손이 모두 보이게 핸들 위에 올려놓고 얌전하게 기다려야 한다. 급하게 움직인다거나 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총기가 자유화인 미국은 누구나 총으로 무장을 할 수가 있기 때문에 경찰들이 항상 긴장을 한다. 만약에 반항을 하거나, 도망을 간다거나 경찰을 공격한다면 언제든지 경찰의 총에 맞아 하늘나라 여행을 할 수가 있다. 한국의 경찰은 훨씬 더 친근하다. 술 먹고 경찰서에서 난동을 부려도 '이러시면 안돼요' 그러면서 착하게 말려준다. 경찰의 지시를 안 듣고 도망도 가고 경찰에게 욕도 한다. 심지어 경찰을 공격하기도 한다. 혹시 미국에 온다면 절대 그런 일은 추천하고 싶지 않다. 객사의 확률이 심하게 올라갈 것이다. 미국 경찰의 행동이 부정적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미국 경찰은 너무 고압적인 자세를 취해 시민의 권리가 침해되는 일이 많이 있다. 무장하지 않은 경범죄자를 총으로 사살해서 많은 문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과 미국의 딱 중간쯤이 좋을 것 같긴 한데.. 문화와 처한 상황이 다르니 비교하는 게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경찰을 존중하고 그들의 지시는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게 답이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안전까지도 위협할 수 있다.
오버의 중요성
불편하다. 오버들을 너무해서 불편하긴 엄청 불편하다. 아이가 낮잠 자는 시간에 잠깐 집 앞 슈퍼를 간다고 해서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겠는가? 하지만 미국에선 범죄자 취급당한다. 미국에서 크루즈 여행을 가면 들어가자마자 안전교육을 한답시고 전 승객 들을 한 시간씩 세워놓는다. 그 어마어마한 배가 사고 날일도 없을뿐더러 사고 난 다고 해도 그게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하지만 꾸역꾸역 안전교육을 한다. 나도 1학년 때무터 버스 타고 혼자 통학하고 집에서 항상 혼자 밥 차려 먹고 컸다. 친구들이랑 하루 종일 밖에 나가서 놀기도 했고 오락실도 맨날 다녔는데도 아무 일도 없이 잘 컸다. 골목을 그렇게 뛰어다녔는데도 사고 한번 난적 없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도 있었고 나영이 사건도 있었다. 그 확률이 0.001 %라고 하더라도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수십억 분의 1인 로또의 확률도 기대하면서 그보다 훨씬 높은 사고의 확률에는 무심하다. 조금만 오버하였으면 살릴 수 있었던 생명들, 조금만 오버하였으면 일어나지 않았어도 될 안타까운 일들이 주위에 너무 많다. 대통령과 몇몇 정치인들이 제도를 바꿔서 될 일이 아니다. 그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힘이 있어서 내 안전을 지켜준단 말인가? 그런 능력도, 힘도, 의지도 없는 것 같다. 근본적으로 자기 자신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제2의 세월호와 제2의 나영이가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골목길에서 속도를 줄이고, 어린아이는 늘 성인의 보호 아래 있도록 하는 등 그런 작은 오버들이 모이면 좀 더 안전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 글의 주제와는 살짝 맞지 않지만 또 하나 생각난 것 -
북한을 무시한다
한국은 미군이 파견을 기피하는 국가 중에 하나이다. 분쟁 중인 국가로 분류가 되어서 한국으로 파견을 가면 위험수당 같은 수당이 다른 나라보다 높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북한이 핵폭탄 실험을 하거나 도발을 하면 전쟁이 날것처럼 엄청 호들갑을 떤다. 그러나 정작 한국에 있는 친구나 친지들에게 연락을 하면 뭐 그런 것 가지고 호들갑을 떠냐고 한다. 아마 이런 일이 너무 자주 있어서 내성이 생긴 것 같다. 북한은 한국사람들의 담력을 키워주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것 같다. 바로 옆 나라에서 포탄을 쏴대고 핵실험을 하는데 별 감흥 없는 민족은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