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추억 이야기
17살 고등학생이던 나는 같은 교회에 다니는 여자아이를 좋아했다. 하얀 얼굴에 긴 생머리, 몸이 약해 가녀린 그 아이는 딱 말 그대로 순정만화에서 튀어나온 주인공 이었다. (적어도 그때 내 눈에 보인 그 아이는 그랬다.)
난 원래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불교를 믿던 영향이었는지.. 아니면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무신론자가 된 탓이었는지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는 무관심 또는 거부감 정도의 느낌이었다.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건 한 전도사님 때문이었는데 휠체어를 타신 장애인 이셨다. 고등학교 때 미국의 Korean Power라는 갱단에 가입하셔서 활동하시다 등에 총을 맞고 평생을 휠체어에 앉아 계셨다. 학교에 문제아들을 교회로 데리고 오는 사역을 하시고 계셨는데 그분의 눈에 띄어서 교회에 처음 다니기 시작을 했다. 교회에 가면 밥도 주고 예배가 끝나면 그 전도사님과 당구장도 가고 노래방도 가고 하는 재미로 꽤 열심히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 처음 그 아이를 보았다. 학교에서 한주먹 하던 거친 형들만 가득했던 그 교회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그 아이는 독실하신 어머님을 따라 그 교회를 다니고 있었다. 참 다른 느낌 이었다. 그냥 처음 보자마자 반해버렸다. 열심히 예배를 보고 있는 그 아이를 뒤에서 쳐다보고 있으면 한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그 아이를 의식해서 (그리고 같이 교회 다니던 그 아이의 부모님을 의식해서) 노랗게 염색했던 머리도 까맣게 바꾸고 엉덩이에 걸치고 길거리를 쓸고 다니던 징코 바지도 버렸다. 예배 끝나고 형들이랑 교회 뒤에서 피던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최대한 교회스럽게 교인 답게 교회 오빠 코스프레를 하려고 무던하게 노력했었다. 아빠랑 죽도록 싸우고도 지켜냈던 턱까지 내려오던 목숨 같은 앞머리도 그 아이를 위해서라면 두 번 고민하지 않고 잘라버렸다.
정작 그 아이는 나에게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그냥 같은 건물 안에서 바라만 봐도 좋은.. 참 지금 생각하면 뭐가 좋았을까 싶을 정도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좋았던 것 같다. 어리바리했던 나는 고백이란 것도 제대로 못하고 그냥 마음속으로만 짝사랑을 한참 했었다. 가끔 교회 끝나고 몇 블록 떨어진 슈퍼에 둘이 같이 가서 핫초코를 마시러 가는 날이면 다음 주까지 세상이 너무 아름다웠었다. 그 아이의 행동하나 가 일주일의 컨디션을 좌우했었다. 그러기를 몇 달.. 정말 몇 날 며칠을 고민 고민하다가 그 아이에게 좋아한다고 고백을 하고 도망치듯 교회를 빠져나왔다. 차마 얼굴을 볼 용기가 없었다. 그리고서는 그 아이에게서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한 며칠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며칠이었던 것 같다. 괞한짓을 했구나라고 매일 이불 킥을 하며 고민하길 며칠.. 그녀가 내 삐삐에 문자를 남겼다.
1 177155 400 (I MISS YOU)
학교가 끝나고 맨하탄에서 메신저 알바를 하던 중이었는데 문자를 받자마자 너무나 좋아서 미친놈처럼 길거리를 뛰어다녔다.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땀에 흠뻑 젓도록 뛰어도 힘들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는 나의 여자친구가 되었다.
집도 멀었고 차도 없던 고등학생이어서 우리는 일주일에 딱 한번 교회에서만 만날 수 있었다. 그때마다 그녀는 나에게 일주일의 이야기를 적은 손편지를 건네주었고 난 그게 참 좋았었다. 그렇게 몇 달을 만나다가 우리는 서로 다른 대학교에 가게 되었다. 대학교에서는 기숙사 생활을 했었는데 그 아이를 만나기 위해 주말마다 3시간씩 기차를 타고 집으로 와서 교회에 갔다. 기껏 몇 시간 만나는 게 전부였지만 그거면 충분했었다. 제대로 된 데이트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첫 학기가 끝나고 방학을 맞이해서 그녀가 한국에 놀러 갔다. 그 아이는 소위 말하는 기러기 가정이었는데 아버지가 전라도 어딘가에 고위 공무원이라고 했다. 집도 대대로 잘 살았고 아버지도 높은 자리에 계신 분이라 집이 굉장히 엄하다는 소리를 들었었다. 그래서 그 아이는 항상 방학 때 아버지를 만나러 갔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였는데 아버지가 그 아이의 다이어리를 보았던 것 같다. 내 사진을 본 아버지 때문에 온 집안이 난리가 났다고 했다. 며칠 후 한국에서 그 아이가 전화를 했다. 아마도 뒤에 아버지가 계신듯한 느낌이었는데 그 아이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더 이상 만나지 말자는 이야기를 했다. 부모님이 반대하신다고 했다.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처음부터 나랑은 다른 세상의 사람이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그냥 그 아이의 입에서 헤어지자는 말이 나온 것만으로도 나의 세상은 이미 어둠으로 변해 버렸다. '그래 알았어' 이 두 마디를 하고 나서 잠깐의 (하지만 몇 년 같았던) 침묵이 흐른 후 전화를 끊었다. 그게 마지막 이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렇게 풋풋한 그 아이와의 추억은 끝이 났다.
그때는 정말 세상이 다 끝난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는 그랬다.
그립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리운 건 그 아이가 아니다. (그 아이는 아마 다시 보면 실망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운 건 그때의 나 자신이다. 지금 생각하면 애들 장난 같았던 일들이 그때는 인생의 전부였고 너무나도 큰일이었다. 누군가의 전화 한통에 일주일이 행복하고 작은 일에 일주일이 힘들었던 지금보다는 좀 더 여렸던 지난날의 내가 그립다.
며칠 간을 아무것도 못하고 어떻게 고백을 할지 안절부절못하며 고민했던 그 설렘, 처음 문자를 받고 혼자서 기뻐서 미친 듯이 길바닥을 뛰어다니던 그 순간, 이별통보를 받을 때 몇 년 같았던 그 잠깐의 침묵.., 괴로워하는 나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위로해준 내 친구.. 미친 듯이 술을 먹고 길바닥에 누워서 흘렸던 뜨거운 눈물.. 그때 들이마셨던 차가운 밤공기.. 그때의 감정들이 그립다.
아무것도 생각 안 하고 오로지 나 자신의 감정에 집중했던 때가 언제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제는 '나'라는 감정에만 집중하기에는 생각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이 있다. 나로 살기보다 누군가의 남편과 아빠로 살기로 결정했으니까 후회를 하는 건 아니다. 사실 너무나 행복하다. 그저 가끔 문득 오롯이 '나' 였던 순수했던 그리고 열정적이었던 푸르렀던 그 시간을 추억하면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진다. 그리고 그 추억들은 문득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고독을 희석시켜 내 인생의 한 부분으로 만들어준다.
지나간 것은 지나 간대로.. 분명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지고 내 인생을 채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