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순한 양아치
-너는 청순하게 생겼는데 뭔가 양아치 같아.
대학교 1학년 때 술자리에서 자리를 옮겨 앉은 동기가 나에게 말했다.
화장을 자주 안 하고 다니고, 염색하지 않은 긴 생머리, 파스텔톤 셔츠에 주로 면바지나 청바지를 입고 다녀서 그렇게 본 것 같다.
그건 그렇다 치고, 양아치 같다는 말을 들어본 건 처음이어서 좀 충격이었다.
나보고 양아치 같다니. 내가 양아치 같아 보인다니 믿을 수 없었다.
청순하게 생겼다는 말은 못 들어본 건 아니었다. 대학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중고등학교 때 나는 눈에 잘 띄지 않는 분위기일 뿐 아니라 비폭력적으로긴 해도 삥을 뜯기는 아이였지, 삥을 뜯는 아이도 아니었다.
-그 말… 혹시 예쁘다는 뜻인가?
-아니, 그건 아니고.
사람은 옷차림뿐만 아니라, 대화하는 말 속에 그 인간이 어떤 사고방식을 가진 인간인지 드러낸다.
아마 수업시간에, 혹은 수업 끝나고 나와서 친구들끼리 하는 대화중에 내 어떤 부분을 본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그 친구가 느낀 것보다 훨씬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고 요즘 들어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대학교 때 내 모습 중에 가장 기억나는 것은, 나는 쉬자는 말을 잘 하는 학생이었다는 것이다.
어떤 교수님이 수요일 9시에 시작하는 3시간짜리 수업을 2시간 30분 정도 끊지 않고 계속 하는 것을 좋아하셨다. 수업이름이 '영화의 역사'였나 그랬다. 물론 30분 일찍 끝내주시긴 했지만 우리 모두는 그 방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인간의 집중력은 그 정도로 길지 않고, 남들보다 좀 더 짧은 나는 아주 미쳐버릴 것 같았다.
수업을 반 정도 진행하신 교수님이 묻는다.
-질문있는 사람?
다들 알겠지만 우리나라 학생들은 질문을 잘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아주 좀이 쑤셔 미쳐버릴 지경이었지만 차분히 손을 들었다.
-그래, 뭐지?
-쉬었다 하시면 안 되나요?
수업에 관련된 질문이 아니라 이런 질문을 들을 줄 몰랐던 교수님은 당황해 모두에게 묻는다.
-쉬고 싶니?
그제야 다들, 네, 라는 대답을 한다.
그런데 이미 교수님이 첫 수업날, 말씀하시긴 했다. 자신은 수업을 끊지 않고 쭉 하는 걸 좋아하는데 졸리거나 그러면, 화장실 갈 사람은 갔다 오고, 담배 피고 올 사람은 담배 피우고 오라고. 그게 학점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거라고 말이다.
기억은 안 나지만, 첫날도 힘들었을 테지만 첫 수업부터 쉬자고 그러지는 못했다.
하지만 두 번째 수업에는 그래야겠다 싶었다.
사실 쉬자고 한 이유 중에 가장 큰 부분은 같은 등록금 내고 다른 사람들이 내가 못 들은 무언가를 더 알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고, 다들 강의실에 있는데 혼자 잔디밭에 나가 쉬고 들어오면 뭔가 양아치 같아서 쉬자고 말한 건데, 다들 힘들지만 ,그래도 수업에 집중하려고 하고 있는데 쉬자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 게 오히려 양아치 같았을까 싶다.
어떤 날은 교수님이 질문이 있냐고 묻지 않으시고 계속 진행하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은 그냥 손을 들고 잠깐 쉬었다 하시면 안 되나요? 라고 물었다. 거의 매주.
나는 그 쉬는 시간동안 라면도 먹고 오고, 실론티도 뽑아서 들어갔다. 되도록 교수님이 말한 쉬는 시간을 지키려고 했지만 수업이 살짝 시작했을 때도 있었다.
1-2분 놓치는 거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1-2분 놓치는 것쯤 맥락으로 알아들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었다.
물론 그 짧은 사이에도 황금 같은 가르침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 지식은 나와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해버렸다. 우리가 배운 걸 다 유용하게 쓴다는 보장은 없으니 배운 거라도 아주 유용하게 쓰자, 이런 마인드로.
양아치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쉬자고 해줘서 살았다고 고맙다고 인사하는 선배들도 있었다.
작가는 학점으로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성적에 연연하는 학생이 아니었다. 다들 연연해하는 걸 연연해하지 않아서 양아치 같았으려나.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을 때 어쩌면, 나한테 청순한데 양아치 같다고 한 그 친구가 나한테 관심 받고 싶어서 저런 말을 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긴 했지만 예쁘다는 느낌에는 선을 그어서, 뭔가 돌려 까는 느낌도 있고, 설마 이게 좋아한다는 표현일까 싶어서 무슨 의도로 받아들여야 하나, 머리가 복잡해져서, 복잡한 걸 싫어하는 나는 결국 그 친구와 나는 친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흘렀을 때 그 친구의 표현은 어쩌면 매우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한테 피해를 주는 것만 아니라면 내 안에 일부 양아치 같은 모습은 자랑스러운 부분은 아니지만 딱히 부끄러울 것도 없다는 게 지금 내 생각이다. 누군가를 개의치 않아 보이는 행동들이 양아치 같다는 표현으로 정의될 수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 시절 저 정도 행동이 양아치 같을 게 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