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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은 Mar 19. 2020

재능, 그거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됩니다.

     

글 쓰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시간, 타인과 스스로에게 끈질기게 시달리는 질문은 ‘재능이 있을까’이다.     


글을 쓴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너에게 그런 재능이 있어?’라는 말을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묻는다.     


타인만 그러는 게 아니다.      


사실 글을 써야만 '살 것 같다'라고 느껴서 글을 쓰는 것인데도, 한동안 이런 질문이 계속 떠올랐다. ‘내가 정말 재능이 있을까?’ ‘이거 해서 내가 먹고살 수 있을까?’ ‘글로 성공할 수 있을까?’          


재능이 있는지에 대해 아주 쉽고 심플하게 대답해버릴 수도 있다.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성공하면, 반박의 여지없이 재능이 있는 거다. 그렇다면, 역으로 이른 나이에 성공하지 못하면, 재능이 없다고 말해버려도 되나, 하는 새로운 질문이 남는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른 나이에 성공하지 못하므로.      


가슴 아프게도, 그렇기 때문에 이른 나이의 성공이 가장 강력하고 확실한 재능의 증명일지도 모른다.           






대학교 때, 무조건 이 학생은 작가가 될 거라는 교수님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4년 내내 수석 장학금을 독차지한 친구가 있었다. 말이 동기라서 친구라는 거지, 친하지는 않았다.


나는 별의별 자기 합리화, 즉 날씨가 좋으면 좋아서, 날씨가 나쁘면 나빠서, 기분이 안 좋아서, 몸이 안 좋아서, 장래에 대한 고민의 시간이 필요해서, 라는 다양한 사유를 갖다 붙이며, 지각과 결석 및 휴학을 내가 필요한 만큼 해가며 학교생활을 했고, 그녀는 날씨의 좋고 나쁨이나 기분의 좋고 나쁨이 자신의 성실함을 가로막을 수 없다는 듯, 완벽하게 성실한 학교생활을 했던 친구였다.      


성적에 목숨 걸지 않았으며, 교수님 및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는 글을 쓰지는 않았던 만큼, 나는 학점도 잘 나오지 않았다. 가까이하지 않아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마 성적에도 목숨 걸었을 그녀는 성실했던 만큼 학점도 훌륭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매번 그녀의 학점이 높은가 싶어서 그녀의 글을 모두, 심지어 여러 번 읽었으나 사실 나에게 감동이나 울림을 주는 내용은 아니었다. 그녀의 글이 훌륭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글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교수님들이 좋아하지 않는 글이었더라도 내 취향이던 다른 친구의 글 중에 아직도 기억나는 것들이 있는데 그녀가 쓴 글은 내용이며 스타일,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내 취향이나 수준이 하찮아서, 그녀의 글에 있을 좋아할 만한 부분을 못 찾고 있는 것인가 싶어 여러 번 읽어 보아도 결국 내 취향에는 안 맞는 글이었다. 그래도 학과의 모든 교수님들이 그녀의 글을 높게 평가한 것을 보며, 아, 저런 내용, 저런 스타일로 써야 남들한테 칭찬받는 건데, 그리고 칭찬받을 만한 글을 써야 빨리 데뷔할 텐데 나는 빨리 데뷔하기는 글렀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런 생각도 했다. 많이 배운 교수님들이 좋아하는 성향의 글이라면, 심사위원들도 좋아하는 스타일일 확률이 높을 테니까 다른 동기들은 몰라도 이 친구만큼은 작가 데뷔하겠구나.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되지는 않더라도, 승승장구할지도 모르겠구나. 이른 나이에 성공할지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그녀는 23살에, 사고를 친 것도 아닌데, 결혼을 하고 남편을 따라 곧바로 이민을 갔다. 그녀와 친한 친구들 얘기로는 그녀는 글에 대해 크게 애착은 없었다고 한다. 작가가 될 생각이 어느 정도는 있었기 때문에 우리 학과를 들어왔지만, 막상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전업 작가의 길이 반드시 유망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항상 느꼈다며, 불안한 삶보다, 안정적인 게 행복할 것 같다고 사실 원래부터 현모양처가 꿈이었다고 했다고 했다.      


아. 현모양처.      






재능이란 게 이런 것이다. 굳이 당장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는 사람에게 과다하게 있기도 하는 것. 그녀를 특별히 아꼈던 교수님 중 한 명은 작가가 되기 위한 노력이나 취업에 대한 노력을 거의 하지 않고 일찍 결혼한 그녀를 두고 ‘여우 같은 기집애’라고 흠잡았다.


그녀는 성격도, 차림도, 태도도 수더분했다. 나는 등록금 다 내고 7년 반 만에 졸업한 학교를, 그녀는 매년 수석 장학금을 받으며 3년 반 만에 졸업했지만, 나는 그녀가 여우 같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남들 보기엔 너무 이른 나이에 전업주부로 살기로 선택한 것이 성급해 보일지 몰라도, 나는 그녀가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길을 선택한, 똑똑한 여자로 느껴진다.      


그리고 결혼을 안 하고 글만 쓴다고 훨씬 더 훌륭한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눈에 띄지 않고 들리는 소문이 없다고 해서 그녀가 꼭 전업주부로만 살 것 같지도 않다. 혼인 유무와 상관없이 재능이 있다면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플랫폼이 있는 세상이니, 어디에선가 글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내가 모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글을 쓰고 있고, 또 살아가고 있기도 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글 쓰며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던져진, ‘재능이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답을 해야겠다.





     

글을 쓰는 부분에 내가 재능이 있는가?      


이른 나이에 성공을 해야 하는 게 재능을 증명하는 것이라면, 나는 재능이 없는 사람이다. 내일 아침, 눈을 떴는데 성공을 한다 해도 빠른 나이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재능 있는 사람과, 재능 없는 사람,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누면, 나 스스로는 아슬아슬하게 재능이 있는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 봤자 그건 내 정신승리를 위한 불쌍한 고집일 뿐, 사회적, 경제적으로 나는 재능이 없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사는 부분에 대해서는 재능이 있는가?     


잘 사는 것의 기준을 심플하게 잡아서, 어느 지역이 됐건, 자기 소유의 아파트, 혹은 빌라, 어쨌든 자기 명의로 된 집이 있는 것을 잘 사는 거라고 치면, 나는 현재 여기에도 재능이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앞으로 한동안은, 어쩌면 평생 재능이 없을 예정이다.      


재능이 없어서 포기해야 하는 게 정답이라면, 전 세계의 대부분의 사람은 삶을 다 포기해야 하는데 정말, 재능이 없으면, 포기해야 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산다’의 범주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는 데에 별 소질이 없는 사람들이다. 어쨌든 이 세계는 이렇게 ‘사는 데 재능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의 삶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러니까 너무 재능, 재능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재능 없는 사람들이 다 죽으면, 재능 있는 사람들이 뭐 대단한 걸 만들어도 어디다 팔아먹지도 못한다. 어쨌든 많이 파는 게 중요한 세상인데, 사는 데 재능 없는 사람들이, 재능 없다고 인생을 포기해버리면, 재능 있는 인간들까지 다 같이 죽는 거다. 세상 다 망하는 거다.       


... 그렇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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