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노력의 실패에 내 의견은 필요 없었다

그 실패에는 내가 감당할 몫이 없으니까

by 시은

얼마 전 20대 중반의 지인이 이런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저보다 나이 많은 언니들한테 예쁨 받고 싶어요. 그런데 언니들은 어린 여자애들보다 어린 남자애들을 더 우쭈쭈 해주는 것 같아요. 걔네들, 진짜 아무 노력도 안 했는데. 심지어 걔네들은 그런 걸 고마워하지도 않아. 괘씸해요. 어떻게 하면 제가 더 언니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요?


30대 중반의 나는, 내가 뭐 얼마나 어른이라고 어리석고 성급하게도 이렇게 말해버렸다.

-원래 좀 그런 거야.


그녀가 말했다.

-글쎄요, 원래부터 그런 거, 라는 충고만큼은 듣고 싶지 않아요.




8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그 당시의 20대 후반이었던 나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도저히 접어지지 않았다. 원래 한 번 접었었는데 그게 어쩌다가 다시 펼쳐졌고, 그 이후로는 안 접어졌다. 결국 만나던 30대 초반인 남자 친구에게 서울에 가서 좀 더 도전해보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어차피 안 될 거야. 그냥 내 옆에 있다가 조용히 결혼하면 안 될까?


그는 조목조목 내가 잘 안 될 수밖에 없는 이유와 불가능성에 대해 잘 설명해주었다. 맞는 말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는 남자와 굳이 만날 이유는 없었으므로 헤어졌다. 그는 우리의 시간이, 자신의 사랑이 너한테는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거냐고 나한테 따졌지만, 딩동댕. 나는 사랑 없이는 살아도 나 없이는 못 사는 인간이었다.


나라는 인간의 가능성이 그 인간이 판단한 그 정도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팩트라고 해도 그의 논리가 내 노력을 막을 이유는 되지 못한다. 내 실패에 대한 몫은 내가 책임질 거니까.




어쩌면 내가 지인에게 했던 충고가, 그가 나에게 했던 것과 같은 맥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하고자 하는 노력 - 언니들에게 예쁨 받고 싶다- 이 결실을 맺을지 안 맺을지 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그녀가 하고자 하는 노력과 결과에, 감히 결론을 내릴 자격은 없었다. 그녀의 노력에 대한 몫은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녀가 감당할 텐데 내가 감히 뭐라고 그런 말을 했을까. 그녀에게 내가 그토록 쉽게 말한 것에 대한 사과를 했다. 그녀도 내가 어떤 맥락에서 그렇게 말한 건지 안다며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내가 안 괜찮다. 사과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게 더욱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괜찮은 인간이 되는 길은, 나이를 먹어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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