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냥 말할걸

그냥 좀 쉬었습니다.

by 시은


글을 쓰다가 돈이 떨어지면 다시 취업 혹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글을 쓴다.


일을 하면서 글을 쓰지만, 몇 개월 글 쓰며 버틸 생활비가 모였다 싶게 일을 했으면 시나리오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회사를 그만둔다. 그만두었으나 결국 아무 성과를 얻지 못하면, 즉 글로 밥벌이가 안 되면 다시 일을 하기 위해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보러 다닌다.


그 동안의 생활 패턴이었다. 당연히 항상 곤궁했지만 불행하진 않았는데 가끔씩 울컥 할 때가 있었다.


글을 진짜 아예 집중해서 쓸 때는, 주로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나 했지, 이력이라고 쓸 정도의 경력은 없었다.


이력서상 이력에는 그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2-3개월 공백이지만 2년 가까이 경력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던 기간도 있었다. 그땐 그냥 어찌어찌 빚으로 연명했던 시간이었다.


면접을 보러 가면 그 기간에 대해 물어보는 회사들이 몇몇 있었다.


그런데 이 기간 동안에는 뭐 하셨어요?


처음에는 정말 그 기간이 궁금해서 물어본 거라는 생각, 혹은 내가 몸이 약해서 일을 오래 쉬어서 빨리 그만둘까 봐 걱정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면접을 보러 다니며 깨달은 그 면접 담당자들의 질문의 뜻이 사실은, 그 동안 돈도 안 벌고, 회사에 들어가기 위한 능력을 쌓는 노력을 한 것도 아니고, 도대체 뭐 한 겁니까, 라는 걸 알았다.


그걸 깨닫자, 이유를 아주 정확히 설명하긴 힘든데, 화가 났다.


내가 이력서 넣은 곳은 칼퇴근인 사무직, 혹은 콜센터로 월급이 높은 곳이 하나도 없었다.


그야말로 매해 고양이 눈물보다는 많이 올라주는 최저시급 적용된 월급에서 인센티브 좀 있는 정도의 사무직, 혹은 고객센터에 주로 면접을 보러 갔고 근무했다. 고객센터는 인센티브도 거의 시험과 실적평가라서 내가 그 인센티브를 받은 적도 별로 없다. 내가 엄청난 업무스킬을 발휘할 정도로 해당 분야에 뛰어나지는 않았다.


내가 학교에서 배운 거라고 이야기를 제대로, 재미있게 쓰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학교를 다니는 동안, 그리고 졸업하고도, 배운 것보다 더 생생하게, 심장을 움켜쥐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싶었고, 그러느라 회사를 다닐 경우를 고려해 거기에 필요한 업무기술을 아주 능수능란할 정도로 습득하지는 않았고, 그냥 남들 하는 만큼의 컴퓨터, PPT, 엑셀 능력 정도만 익혔다.


그 기간 동안 뭐했냐는 질문은 마치, 인생의 시간을 모두, 회사 들어가기 위한 스펙의 시간과 근무한 시간으로만 채워야만 그 사람이 그럴 듯하게 살았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썼던 수많은 시간이 내가 하고자 했던 일에 대한 노력은 틀림없지만, 이력서에 증명하기는 힘든 시간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면접 볼 때 그 질문한 회사들, 그냥 어느 대학 어느 학과를 나오더라도 1-2달 업무 습득만 집중해서 하면 학교, 학과, 경력 상관없이 할 수 있는 정도 일이었다.


물론 해보면 생각보다 어려운 부분이 나올 수도 있고, 내가 그 일에 뒤쳐질 수도 있고, 그 일에 대한 업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정도로 어려웠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특별한 기술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정도 일은 아니었다.


그러니 최저시급 적용한 월급 주는 일자리였을 거고.


그 월급 주면서 그때 쉰 게 왜 궁금한 건지, 그게 그렇게 진짜 중요한 건지 모르겠다.


내가 그냥 쉰 기간이 있으면, 입사도 하지 않은 그 회사에 누가 되는 건가?


이렇게 말 할 걸 그랬다.


-사실 제가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라 돈 몇 푼 벌고 글 좀 쓰느라 쉬었습니다. 그런데 재주도 부족하고 운도 안 따라줘서 그런지 성과가 없어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돈 벌러 기어 나왔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마음이 시키는 것보다는 머리가 시키는 대로 말했다.


-여러 분야의 책도 읽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이것저것 배우기도 하고 사업하는 친구 일 좀 거들어 주면서 저한테 어떤 일이 맞을지 생각도 좀 하고 그랬습니다.


그냥 좀 쉬고 싶어서, 쉬었다고 말할 걸 그랬다.


결국 그런 질문은 안 한 회사에 들어갔으니까.


그냥 그때 말할 걸.


그냥 좀 쉬었습니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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