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한 것을 바라보는 시각의 온도
예전에 <조커>의 영화모임에 간 적이 있었다.
영화의 인기와 논란이 뜨거웠던 만큼 2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내 경험상 보통 영화모임이든 독서모임이든 4-5명이 모이고, 많아야 10명 안팎인데 이 정도면 진짜 엄청 많이 모인 셈이다. 그것도 금요일 저녁에 말이다.
안 모이는 것보단 당연히 많이 모이는 게 좋지만 나름 단점도 있다. 너무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이야기를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임을 주관한 여자분이 제안을 했다. 1시간 동안 1차로 전체적인 얘기를 하고 남은 1시간 동안은 4-5명씩 조를 나눠서 각자 한 조씩 가장 인상적인 씬을 골라서 발표하자고.
전체적인 이야기 후에 조를 나눠서 얘기하던 도중, 조커 탄생의 시작인 지하철 총격씬 이야기가 나오자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자분이 이런 말을 했다.
-살인의 시작이 지하철 치한 세 명이잖아요. 저는 그 살인이 이해가 안 됐던 게, 그 사람들이 물론 잘못을 하기는 했지만, 이게 뭐 꼭 죽을 죄까지는 아니지 않나요? 뭔가 좀 더 ‘조커 나름’의 정의 실현이 이해될 만한 살인이 아니라 생전 처음 보는 치한 3명인 게 좀 너무 어이없었달까? 저는 그랬어요. 차라리 자기 일자리를 잃게 만든, 처음에 자기 괴롭힌 놈들을 어떻게든 찾아서 죽인다거나, 총 준 친구를 죽이면 이해를 했을 것 같아요. 그 살인들은 개인적 원한이고 분노할 만한 이유나 뿌리 깊은 원한이 있으니까. 그런데 지하철 저 3명은 꼭 죽이기까지 해야 할 일인가? 싶더라구요.
영화 <조커> 지하철 씬_ 화면 오른쪽, 가장 작지만 또렷하게 잠시 후 피해를 당할 여성이 앵글에 잡혀 있다.
나는 모임에서 누가 ㅇㅇ씨는 왜 별로 말씀이 없으세요,라고 말을 시키기 전까진 되도록 말을 하지 않으려 한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한번 말을 하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말을 너무 많이 쏟아내서 다른 사람의 말할 시간을 뺏는 게 될까 봐서이다.
요새는 어떤 모임이든 누가 말을 너무 안 하면 모임이 끝나가기 전에 꼭 한 마디씩 시키는데 나도 그때 얘기를 했던 것 같다. 앞서 남자분이 무심히 말한 ‘죽을 죄’에 대한 내 생각을 역시나 내 예상보다 길게 말하고 말았다.
-아까 조커 탄생 이야기할 때, 그 정도 추행 범죄가 꼭 죽을 죄까지는 아니라고 하셨잖아요. 물론 그 세 사람의 행동이 죽을 죄까진 아니지만 사실 좀 죽어도 사회적으로 나쁠 건 없는 사람들 아닌가요?
저 세 사람이 ‘재수없게 저 날 하루 생전 처음으로 여자한테 추근덕거린 날’ 인데 하필 아서를 마주치는 바람에 재수 없게 죽은 걸까요? 아마 아닐 거예요. 30대 정도의 남자가 술 마시면 하는 행동은 그 남자가 20대 때도 술 마시면 똑같이 했다고 보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우선 보면 ‘한번 해보자’ 하는 서로 상의하거나 머뭇거리는 게 없잖아요. 그건 과거에도 그러고 살았다는 거예요. 과거에도 처벌이 없었으니 현재도 거리낌 없이 그러는 걸 거구요. 그러고는 아무 생각 없이 집에 개처럼 기어들어가서 잠들었다가 아무 일 없이 그다음 날 출근해서 ‘평범하고 성실한 회사원’으로 쭉 살아갈 걸로 예상되거든요. 회사에선 또 젠틀한 직장 상사, 직장 동료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1주일에 1번만 술을 마신다 쳐도 1년에 50번은 저런 행동을 할 확률이 생기죠. 3명이 흩어져서 다른 친구들과 각자 술을 마시고 저런다면 확률은 3 배수가 되고요. 친구는 끼리끼리라서, 희한하게 혼자서는 안 하지만 모이면 똑같은 행동 할 거예요. 심리학 용어로도 개인으로는 안 할 범죄행동을, 집단이 되면 할 수 있는 심리적 원인과 그런 범죄에 대한 명칭이랑 이유도 있던데 기억이 안 나네요.
매번 같은 시간, 같은 지하철을 탄다고 해도 매번 똑같은 여성을 마주쳐서 괴롭히게 될 확률은 없으니까 매번 새로운 여자를 괴롭히게 되겠네요. 저 3명이 흩어져서 다른 친구들과 1주일에 한 번씩 저 짓을 한다고 치면 150번의 동일 상황이 벌어지는 건데 어쩌다 그냥 조용히 들어가는 날도 있다 쳐서 2/3라고 쳐도 1년에 100번이에요. 그 각각의 100명의 피해는 어디 호소할 데도 마땅치 않죠.
이게 신고도 잘 안 하게 되거니와 범죄로 분류된 것도 얼마 안 되는 범죄라서 형량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아직 없다 보니 처벌해도 솜방망이 처벌 수준인데 그래 봤자 걸리면 초범이라고 ‘깊이’ 반성한다고 하면 또 처벌 안 받을 거고. 그래서 저런 행동이 범죄 이력으로 남을 확률도 없지만 신고될 확률도 사실 거의 제로일 확률이 높죠. 왜냐면, 방어력이 낮고 소심해 보이는 사람들을 골라 타겟팅하고 괴롭히는 거니까. 제시, 치타, 아니면 장미란 선수 같이 성격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세 보이는 여자를 괴롭힐 확률이 얼마나 있겠어요.
그런데 세상에 저런 사람들이 세네 명 정도밖에 없는 게 아니에요. 저런 범죄는 신고율이 아주 낮은 범죄인데도 그 와중에 신고가 계속해서 되고, 그래서 최근에 겨우 이 행동이 범죄의 카테고리에 들어가기는 했어요. ‘이제 겨우’ 범죄 카테고리에 들어갔어요. 이전에는 카테고리 밖에 있었던 행동이었고. 그래도 범죄로 기록될 확률보다 기록 안 될 확률이 높겠죠.
왜냐하면 여자들 대부분이 ‘나한테 걸리기만 해 봐라, 내일 출근 못 하는 일이 있더라도, 아니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심지어 배우자나 부모님께서 도중에 그만 하라고 해도 타협 안 하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경찰에 끌고 가서 조서 다 쓰고 cctv 확인시키고, 실제 피해를 겪지도 않은 성추행범 회사 쪽 동료들이나 그의 부모님이 성실한 이 사람이 그럴 리가 없다, 순하디 순한 내 아들이 그럴 리가 없다, 오해일 거다, 아니면 실수일 거다 라며 가해자를 옹호하는 가스 라이팅 및 2차 가해를 겪고 그들의 청원, 애원까지 다 무시하고, 내가 겪어야 할 모든 번거롭고 지루한 절차를 싹 다 밟고 심리적 고통을 겪더라도 콩밥을 먹이겠다’ 이러면서 용기 있게 신고하기보다는 ‘저런 일이 나한테 안 일어났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더 크니까 비슷한 일을 겪어도 그냥 그 자리를 어서 벗어나기만 바라고 벗어난 이후에 신고까지 안 하거든요.
그러니 늦은 시간에 지하철을 이용하면 술 마시고 큰소리를 내면서 뭐라도 되는 냥 구는 남자들을 보면 여자들은 내가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데 그에 따른 처벌은 할 수 없는 일이니까 두려움과 긴장을 느낄 수밖에 없죠. 여자들에게도 쓰레기지만 사회적으로도 쓰레기인 세 사람이 죽는 거니까 사회적으로도 손실이 아니거든요. 그리고 저 세 사람이 죽어서 회사에서는 새로 채용을 할 테니까 그동안 일할 능력은 있지만 자리가 없어서 직업이 없던 사람은 일자리도 생기고. 다다익선 아닌가? 물론 새로 직업을 얻게 된 그 사람이 꼭 좋은 인간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건 또 별개의 문제고.
저는 그 장면 전혀 불편하지 않았고 통쾌하던데요. 사실 감독도 그러라고 첫 살인을 ‘저런 인간들 죽이는 걸’로 잡지 않았을까요? 시나리오 수십 번 고쳤다는데 아주 크고 대단한 특별한 범죄가 아니라, 아주 일상적이고 흔한데 범죄로 잘 분류는 안 되지만 공기처럼 도처에 깔려 있는 범죄, 겪은 사람은 모두 사회적 쓰레기로 느낄 만한 사람, 합법적으로 처리하자면 법으로 인계되는 과정도 까다로운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그러고는 처벌도 별로 없는 범죄를 조커가 본보기로 저렇게 처리해주면, 어떻게 보면 고마울 살인이거든요. 분명히 있는 범죄고 관련 법조항도 있지만 처벌은 없는 그런 범죄, 그런데 또 자주 일어날 수 있는 범죄인데 아서가 본보기로 죽여주니까 전 좀 좋던데요. 뒤로 갈수록 악당화되어가지만, 첫 시작은 나름 영웅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던데.
쓰고 보니 내가 말 되게 길게 했구나 싶다. 처음에 말했던 남자분이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그렇게 저 일이 일상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을 못 했어요... 정말 여자분들에게도 진짜 어쩌다 일어나는 일일 거라고 생각해서... 저는 솔직히 이 얘기하면 다 같이 토드 필립스 감독 이해 못하겠다고, 다들 죽을 죄까지는 아닐 거라고 공감해주실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네요. 이런 반응 나올 줄 몰랐어요.
전혀. 전혀 아니다. 우리가 사는 일상의 온도가 달라서 동일한 것을 바라보는 시각의 온도도 같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