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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은 Sep 17. 2020

언젠가 늘어날 체중을 걱정하며

우리는 ‘그들보다’ 못생길 자유가 훨씬 적다.

20살 때 키가 딱 고정되고 나서, 내가 가장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몸무게는 60-61kg이었다. 지금은 다이어트를 해서 56kg 이 되긴 했지만, 언제든 60kg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심지어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예를 들면 아파서 침대에만 오랜 기간 있어야 한다거나 하는 이유로, 얼마든지 70kg, 80kg가 돼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도 가끔 한다. 그런 날을 안 오길 바라지만 그렇게 되더라도 ‘사람들이 어떤 시선으로 보든’ 나만큼은 나를 너무 싫어하지 말자고 미리 다짐한다.


나는 원래 뚱뚱한 체형이 아니고, ‘뚱뚱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살이 쪄본 적도 없다. 날씬하지 않았을 때도 뚱뚱하다기보다 떡대가 좋은 느낌이었다. 이런 키 크고 살이 잘 안 찌는 체형의 특징은 살이 크게 잘 안 찌지만, 웬만큼 노력해도 죽어도 안 빠진다는 데 있다. 정말 60kg에서 59kg로 내려가는 게 제일 힘들었다.


키 168cm에 60kg은 뚱뚱하지 않다. 하지만 어떤 여자가 저 키에 저 몸무게라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그 사람을 딱히 날씬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키 178kg에 70kg도 뚱뚱하지 않다. 그리고 어떤 남자가 저 키에 저 몸무게라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그 사람을 보기 좋고 날씬한 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 번도 뚱뚱해본 적은 없지만 못생겼던 기간은 있긴 하다. 사실 내 눈에는 못생겼다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 그냥 ‘사회적 시선이 내린 정의’에 의하면 못생겼을지도 모를 상태였던 적이 있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어릴 적 사진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도 사진을 공개할 생각은 없다. 그냥 조세호를 아주 많이 닮은 감자 같은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어린아이였을 때이긴 하지만 피부톤도 살짝 조세호 느낌이다.


대놓고 못생겼다고 하는 사람이 있진 않았지만, 그런 말은 많이 들었다. 쌍꺼풀만 좀 있으면 예쁠 텐데, 코만 좀 높으면 예쁠 텐데, 피부만 좀 더 하얬으면 예쁠 텐데. 듣자 듣자 하니 내가 부족한 게 많은데?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을 정도로, 거의 매일, 엄마, 혹은 엄마 친구, 명절 때는 친척 어른들로부터 에두른 외모 얘기를 들었다.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아마도, 어느 명절 때 친척 어른들이 나누는 대화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 집이 큰 집이었고, 지금은 없앴지만 그때는 모두 모여 제사를 지냈다. 밥을 먹으면서도 어른들은 나를 보며 말했다. 쯧쯧, 대학 가면 좀 꾸며야 할 텐데. 지도 생각이

있으면 꾸미겠죠. 그런 말을 듣자니 밥 먹는 것조차 피곤해서 먼저 자겠다고 인사하고, 일찌감치 내 방에 들어갔는데 자다가 목이 말라 깼다.


거실에서 남동생의 외모를 칭찬하는 어른들의 얘기가 한참 이어지고 있었다. 동생은 그 당시, 누가 봐도 좀 훈훈하긴 했다. 방문 손잡이를 잡는데 내 이름이 언급되더니 한 친척 어른이 말했다. 그런데 쟤는 진짜 어떡해? 나는 왠지 부끄러워 도저히 물을 마시러 나갈 수 없었다. 자다 일어난 모습은 더 별로일 것 같아서. 그런 내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아무리 내가 외모에 관심이 없었던 성격이라고 해도 저런 일상이 반복되다 보니, 그리고 심지어 내가 눈 앞에 없는데도 내 외모를 지적하고 있었다는 것까지 알고 나니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못생길 자유가 없었다. 수많은 지적을 피할 수가 없었다. 이 정도면 외모가 괜찮아져야 하는 상황은, 우리가 선택하는 게 아니라 주입되는 것이다. 피부가 좀 하얘졌으면 좋겠어서 팩을 하고, 선크림을 죽어라 발랐다. 쌍꺼풀이 생기길 바라며, 쌍꺼풀 테이프를 매일 아침 붙이고, 틈나는 대로 코에 집게를 집었다. 성형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집에서 그걸 지원할 돈이 없었다.


세상 유언비어 중에 대학 가면 살 빠진다는 말이 있다. 확률로 보면 진짜 유언비어지만 나한테는 사실인 이야기였다. 고 3 때는 삼시 세끼 먹고 12시간씩 앉아 있다가 대학생 돼서 아침도 안 먹고 낮에는 강의실 여기저기 옮기며 수업 듣고 저녁엔 술 먹고, 이 루틴으로 지내자 거짓말처럼 살이 빠졌다. 그때 내 몸무게는 53kg이었다.


그 시기에 쌍꺼풀도 생겼다. 아침마다 만들지 않아도 될 정도로 또렷하게. 미인이 된 것은 아니고 수수해졌다. 하지만 (조세호의 외모였던) 나로서는 만족스러운 외모였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나는 수수해진 내 외모가 만족스러운데, 나를 보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던 말은, ‘조금만 꾸미면 참 예쁠 텐데.’였다. 못생김을 극복하고 수수해지고 나니, 이제 예뻐져야 하는 다음 퀘스트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화장품 값도 만만찮고, 나는 블링블링하게 살고 싶은 욕심도 없었다. 쌍꺼풀이 생긴 것, 살이 빠진 것으로 충분히 괜찮았다. 하지만 뭇사람들의 말은 쇠도 녹인다던가. 언제부턴가 블링블링한 것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아니, 가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수많은 뷰티 블로그들이 네이버 화면에 끊임없이 노출되고, 대한민국에서 네이버를 안 하고 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거기다 네이버 최대의 카페인 파우더룸에는 화장 before과 after에 대한 콘텐츠가 매일, 아니 매시간 업데이트되었다. 결국 나는 예뻐지려는 노력에도 발을 담글 수밖에 없었고 그 이후 지금까지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지 않는다. 도저히.


결과적으로, 그리고 다행히 세상이 나에게 요구한 ‘외모 퀘스트’들이 그렇게까지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고, 내가 노력하면 노력의 대가가 어느 정도는 주어지는 분야였던 것 같다. 공부 퀘스트, 직업 퀘스트들과는 다르게.


이제는 어릴 때 감자 같았고, 조세호 같았던 지난날의 외모를 벗어났다. 그렇다고 우와, 이럴 정도의 미인이라는 것은 아니고.




예전 남자 친구 중에 외모가 마음에 안 들어서 진짜 사귀기 싫었던 친구가 있었다. 몇 번 만나보니 생각보다 잘 맞는 부분들도 꽤 있어서 오래 만났는데 한 번은 신사역 근처 맛집에 간 적이 있었다.


밥을 먹고 카페에 갔는데 거짓말이 아니라 그곳에 있던 여자들의 80% 이상이 연예인급으로 마르고, 예뻤다. 티 나지 않게 두리번거리며(그런데 티 났을 것 같다) 예쁜 여자들을 한참 보고 있다 보니 그녀들에 비하면 내가 들인 노력이나 돈은 참 보잘것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내가 휴대폰 한 번 안 쳐다 보고, 말도 없이 지나다니는 예쁜 여자들을 눈으로 좇고 있으니 남자 친구가 물었다. 뭘 그렇게 봐? 나는 대답했다. 예쁜 여자들이 많은 건 알고 있었는데 여긴 특히 많은 것 같아. 그가 피식 웃었다. 너도 예뻐. 내가 대답했다. 객관적으로, 저 사람들만큼은 아니잖아. 아주 오랫동안 노력한 게 겨우 이 정도고.


말하다 보니 그는 어릴 때 어땠을지 궁금했다. 좋아하니까 크게 상관없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외모가 괜찮지 않은 게 역변의 일인지, 어릴 때부터 원래 그랬는지 궁금했다.


-너는 어릴 때 사람들이 이것만 좀 괜찮아지면 좋겠다, 하는 말 못 들어봤어? 살을 빼면 괜찮겠다거나, 쌍꺼풀이 있으면 좋겠다거나, 그런 말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어?

-응. 그런데 너도 들어본 적 없지 않아?

-아니. 난 거의 매일 들은 거 같은데.


그가 물었다. 사람들이 그런 말을 매일 한다고?

나도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낮에도, 밤에도 항상. 내가 잘 때도 하던 걸.


시간이 흘러 그와 잘 맞지 않는 부분들도 꽤 많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이 다가왔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그 이유들 중에는 그가 자신의 외모를 불만족스러워하지 않는다는 이유도 있었다. 자신의 외모에 관심이 없는 것도.


처음 만날 당시에도 그는 살이 많이 찐 편에 속했는데 점점 더 살이 찌는 것을 방치하는 게 싫었다. 다이어트라는 게, 하다가 실패할 수도 있는 일인데 그는 실패할 일이 없었다. 그는 다이어트를 하려고 한 적조차 없으니까.


나는 어려서부터 하던 노력을, 지금도 하고 있고, 체력이 되는 한 계속할 텐데 이 친구는 어릴 때도 하지 않았고, 지금도 하지 않으니 추후에도 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또 타인의 외모에 대해 뭐라 말하기는 싫었다. 칭찬이든, 지적이든 외모 품평질은 좋은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듣기도 싫고 남한테 하기도 싫다. 내가 그의 여자 친구라고 해서 그에게 살을 빼라거나 피부관리를 하라고 말을 할 수 없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던가, 받아들이지 않던가의 선택지만 있다고 생각한다.


그에 대한 애정이 식었던 걸 수도 있다. 사이가 괜찮을 때는 그가 살이 찐 게 그렇게까지 싫지는 않았는데, 어느 순간 ‘싫다’는 느낌이 크게 다가왔다. 그와 좋았던 시간들도 분명 있었는데 다시 예전 같은 애정이 타오르게 노력하기 싫었다. 그가 자기 자신에게 노력하지 않는 만큼, 나도 그에게 노력하기가 싫었다. 그렇게 그에 대한 내 애정이 점점 식게 내버려 두고 말았고, 우리의 좋은 시절은 다 갔고, 그래서 헤어졌다.




여자들은, 살면서 ‘못생길 자유’가 별로 없다. 내가 그랬다. 아무리 무시하려고 해도 계속해서 주변의 공격이 이어진다. 그래서 내 못생김, 부족한 부분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공격받지 않기 위해 달아나는 것이다. 스트레스는 많이 받지만 결과적으로 이성을 만나기에 유리해지기는 한 것 같다.


그에 비하면 남자들은 ‘못생길 자유’가 여자들보다 많다. 주변에서 아무도 그들의 외모를 지적하지 않는다. 내가 헤어진 그 친구처럼. 못생김으로부터 도망갈 이유가 없다. 불편하지 않으니까, 아무도 공격하지 않으니까. 그런 상태로 성인이 되었을 것이다. 스트레스는 거의 없지만 그게 결과적으로 이성을 만나기에 불리해지는 것이긴 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왜 이렇게 같은 듯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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