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괜찮아서 사이코가 된다
어떻게 이 기억이 잊힐 수 있나 싶은, 그런 기억이 떠올랐다. 잊힐 종류의 기억이 아닌데 정말 오랫동안 운 좋게 잊고 있었다.
요즘은 모두 없어졌지만 내가 초등학생 6학년 때까지 책상은 붙어있는 2인용 책상이었고, 그걸 2명이 같이 사용했다. 가운데에 ‘38선’이라고 이름을 붙인 선을 긋고 서로 튀어나오지 말라고 하면서 말이다.
선을 그어놨어도, 미술 활동을 하거나 자신도 모르게 그 선에 팔꿈치가 넘어가 있거나 손이 넘어가 있는 일이 생겼다. 그게 내 짝인 그 아이든, 나든 말이다.
나는 선을 튀어나갔다가 팔꿈치나 팔을 몇 대 맞았다. 반대로 나는 그 아이 몸을 때리지 않았다. 착해서가 아니라 남자와의 아주 작은 스킨십조차 ‘닿는 것’이 싫고 불쾌해서 때릴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나도 모르게 그 선을 넘어갔는데 다른 걸 하고 있다가 팔이 따끔해서 보니, 그 아이가 연필 깎는 칼로 내 팔을 살짝 그은 것을 보았다. 그 아이는 칼을 들고 있었고 이걸 피가 난다고 하기는 그렇지만 팔을 미세하게 긁은 것이 보였다. 빨간 선 자국이 보일 정도로는 긁었다.
나는 무섭고 놀라 비명 소리를 지르면서 벌떡 일어났나, 걔를 밀쳤나, 울면서 때렸나 그랬던 것 같다. 수업 중이던 담임 선생님이 우리가 함께 무슨 장난을 친 줄 알고 둘 다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나는 그 짧은 거리를 나가는 사이 눈물을 펑펑 흘렸다. 교탁 앞에 도착하자 우느라 말도 제대로 하기 힘들었지만 겨우겨우 목소리를 쥐어짜서 상황을 설명했다. 얘가 내 팔을 칼로 긁었다고.
담임 선생님은 젊은 여자 선생님이었는데 미인이셨지만 거의 잘 웃지 않는 분이셨고 다정하고 따뜻한 성격이 아니어서 그분을 어려워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여자라고 해서 무조건 다정하고 따뜻한 성격은 아닌 것이 당연한데, 나는 그때까지 특히나 젊은 여자는 다 다정하고 따뜻한 성격일 거라고 생각해서 그 여자 선생님을 여자답지 않게 차갑고 냉정한 선생님이라고만 생각했다. 지금은 그게 내 고정관념이었다는 걸 알았지만 그때는 젊은 여자인데 다정하지 않은 그 선생님이 몹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차갑고 냉정했지만 좋은 선생님이었는데.
선생님은 내 말을 듣자마자, 그 이상은 묻지 않고 출석부로 그 아이의 머리를 내려쳤다. 모든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너무 순식간이라 나도 놀랐지만 아이들도 놀라서 교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 아이는 어땠는지 궁금해하지 말자. 가해자한테는 그래야 한다. 그러고 나서, 선생님이 그 아이에게 물었다.
-왜 그랬어, 짝꿍한테.
그 아이가 얼이 빠져있다가 대답했다. 그냥, 장난으로요...
선생님이 다시 한번 출석부로 그 아이의 머리를 내려쳤다. 그게 이유냐고. 그리고 말씀하셨다.
-사과해.
그 아이가 사과했다. 선생님이 덧붙였다.
-한 번만 더 이런 일 생기면 부모님 부르라고 한다. 들어가.
나의 놀람과 억울함이 끝났느냐 하면, 아니었다. 선생님의
말 때문이었는지 원래 내 마음에도 있던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아이 부모님도 와서 나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몸에 아무리 작다고 해도 칼을 댔다.
나는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한테 갔다. 그 아이 부모님 불러달라고, 저는 그 아이 부모님한테도 사과를 받아야겠다고.
선생님은 내 부탁을 거절하셨다. 이미 많은 친구들 앞에서 크게 혼을 냈고 그 친구도 반성하고 ‘그런 짓을 이제 안 할 노력을 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그리고, 진짜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생기면 안 되겠지만, 생기면 진짜 그 아이 부모님을 부르겠다고 말하셨다. 선생님이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말씀하셨지만 난 지금 바로 사과를 받아야겠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 날 집에 가자마자 엄마에게 말했다. 반에 짝꿍으로 있는 남자아이가 내 팔을 칼로 그었다고, 선생님이 혼을 냈지만 엄마가 그 아이 부모님한테 사과하러 오라고 말하러 학교에 오라고. 나는 그날 엄마의 말과 그 무표정을 잊지 못할 것이다.
-니가 뭘 잘못했겠지.
뒷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 같다는 느낌은, 저런 말을 들을 때일 것이다. 나는 순간 어버버 하다가, 다시 정신줄을 잡고 말했다.
엄마, 걔가 내 몸을 칼로 그었다니까? 사람 몸에 칼을 댔다고.
계속해서 내 상처를 보라고 말했지만 시선도 안 주던 엄마가 귀찮다는 듯 힐끗 보더니 말했다.
-얼마 긁히지도 않았네. 그런 걸로 안 죽어.
내가 계속 사과를 받기 위해 학교에 말해달라고 하자, 이번엔 걔가 쓴 칼이 어떤 거였냐고 물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연필 깎을 때 쓰는, 껌 크기의 까만 접이식 칼.
내 말을 듣더니 엄마는 또 말했다.
-그런 칼로는 찔러도 안 죽어.
그럼 왜 물어보신 건데요. 가해자에게 사과도 안 받아주고 조사도 제대로 안 해줄 거면서 피해 입은 증거부터 내놓으라고 하는 경찰처럼.
내가 입은 그 상처가 죽을 상처는 아니었다. 그 상처가 죽을 상처가 아니라는 건 나도 안다. 그런데 진짜 피를 철철 흘리며 죽을 상처를 입고 와야만 그때 ‘고통스러움을 말할 자격요건’이 생기는 걸까. 엄마, 그랬다간 오는 길에 진짜 죽을 것 같은데요.
우리 사회의 제도는 예방은 해주면 안 된다고 미세하게 정해진 것 같다. 피해자 버릇 나빠질까 봐 그러는 걸까. 피해자 버릇은 나빠질 수가 없다. 보호받고 응원받아야 자리를 잡는 것이 버릇이고 습관이라서.
엄마가 나를 양육하는 동안, 내가 고통스러운 순간에, 엄마에게 고통을 호소하면 엄마가 가장 먼저 했던 말은 ‘니가 뭘 잘못했겠지.’였다. 단 한 번도 아프냐고 묻거나 놀랐냐고 묻거나 어쩌다 그런 일이 생긴 거냐, 누가 그랬느냐를 물어보신 적이 없다. 항상 앞뒤 맥락을 설명해드리고 싶었지만 자세히 얘기할 수가 없었다. 언제나 엄마는 내 말을 끊고 같은 질문을 했다.
-잘 생각해봐, 진짜 네 잘못은 하나도 없어? 진짜 하나도? 털끝만큼도?
자-알 생각하면 저기 저 상황에 내 잘못도 있긴 있다. 책상 위 38선으로 팔이 튀어나간 것. 하지만 이게 ‘사람의 몸에
칼을 그어도 문제제기를 하거나 억울해하면 안 될 정도로 큰 잘못인가?’를 아무리 생각해도 저게 칼을 대도 괜찮을 일일 수는 없었다. 어떤 문제라도, 사람 몸에 칼을 대도 괜찮은 정도의 일은 없다.
엄마에게 내가 잘못한 부분-책상 위 38선을 튀어나간 것-을 말하고 그게 아무리 잘못이어도 칼로 그어도 될 일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지만 돌아온 엄마의 말은 나를 좌절하게 했다.
-거 봐. 너도 잘못한 게 있네. 걔가 아무 이유 없이 괜히 그런 게 아니네.
저 말은 아주 오랫동안 나를 옭아맸다. 안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심지어 정말로 나와 아무 상관없는 일이 있어도 무슨 일만 생기면 나쁜 일 앞에서 내가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엄마의 저 말이었다. 자동반사적으로.
‘진짜 내 잘못은 없나? 진짜 하나도? 걔가 그럴 만한 이유에 내 잘못은 ‘정말’ 털끝만큼도 없나?’
지금은 내 잘못이 아닌 일은, 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모를 어떤 디테일 구석에라도 내 잘못이 있지는 않을까 끝없이 의심하는 짓을 이제는 하지 않는다. 이렇게 당연한 걸 제대로 생각할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는지 엄마는 알까. 그게 엄마 때문이라는 것도.
그래서 지금 당신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도.
이 이야기에 후일담이 없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있다.
내가 볼 땐, 내 팔을 긁었던 그 아이가 나를 좋아했고, 좋아해서 괴롭힌 것 같다. 무려 23년 전 일이고 그 당시에는 널리 통용되는 생각이었다.
‘좋아서 괴롭힌다’는 말.
그 말은 내가 성장하던 어린 시절을 포함해 아주아주 오랫동안 어른들이 남자아이들의 못된, 그리고 잘못되기까지 한 행동을 포장해주는 말이었다. 남자아이가 뭐라고, 남자아이들은 잘못된 행동까지 포장받으며 성장하는 걸까. 지금은 아니겠지만 최소한 내 동년배 남자아이들 중 잘못된 행동을 한 아이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어른들에게 지적받거나 혼나는 것이 아니라 포장받으며 성장했다. 그리고 심리학에 따르면 어린 시절에 성인의 지지를 받은 행동은, 그 사람에게 옳은 행동이라고 자리 잡으며 그 생각을 바꾸기는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하다고 한다. 성인이 된 이후 누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다행히 나를 괴롭힌 아이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혼이 났지만, 불행하게도 내가 원하는 만큼 혼나지는 않았다. 그리고 내가 봤을 때 그 아이는 덜 혼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바로 부모님 불러서 그 앞에서 더블 체크로 혼나야 했다. 선생님한테 한번, 부모님한테 한번.
우리는 6학년이었기 때문에 얼마 후 6학년 전체가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다. 기념품 가게에서 내 팔을 칼로 그은 아이가 어떤 물건을 샀다. 그리고 그날 저녁인가 다음날 나에게 와서는 사고 보니, 자신에게는 필요 없다며 나보고 가지라는 식으로 주려고 했다. 필요 없으면 사지를 말던가. 기념품 가게에서 그 아이가 그걸 고르는 걸 볼 때부터 불쾌했던 물건이었는데 그걸 나에게 주려고 했다.
그 아이가 주는 것이라 받기 싫은 것도 있겠지만 그 아이가 산 ‘물건 자체’도 싫었다. 그 물건은 꽤 화려한 장식이 있는 은장도였다. 요즘도 그런 걸 파는지 모르겠지만 순결을 잃으면 자결하라는 의미가 담긴 물건을 누가 선물이라고 생각하겠는가. 장식이 화려하건 말건.
사람들 생각에, 누군가를 괴롭히는 태도는 당연히 강압적이거나 폭력적일 거라는 오해를 많이 하는데, 사실 수줍어하면서도 괴롭힐 수 있다. 그 친구는 활달한 성격이 아니어서 수줍음이 많았고, 자신의 성격 그대로 수줍어하면서 괴롭혔다.
반대로 나처럼 공격성이 좋은 사람도 괴롭힘을 당할 수 있다. 심지어 나는 순발력도 좋아서 공격해야 할 타이밍에 정확히 공격할 줄 알고, 누군가로부터 내 자신을 방어하는 데 뛰어난데도 괴롭힘을 당했고, 괴롭힘의 빈도는 이런 나조차도 상당히 잦았다.
그 아이가 계속 수줍어하는 태도로, 나에게 ‘예뻐서 샀는데 자신에게는 필요 없다.’며 은장도를 주려고 했다. 나도 필요 없으니 (그리고 니가 주는 거라서 싫어) 다른 사람 주라고 했지만(사실 버렸으면 좋겠어) 그 아이는 그걸 계속 나에게 주려고 했다. 받을 때까지 물러서지 않고 줄 기세였다. 수줍어하면서도 다정하고 친근하게 주는 것도 아니었다. 필요 없는데 그렇다고 ‘새 물건을 버리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말하면서 주려고 했다(버렸으면 좋겠는데).
그 아이 생각으로는, 그 행동이 다른 친구들이 보기에 나를 좋아하는 것처럼 안 보일 자연스러운 방식이라 생각했나 보다. 받아라, 받기 싫다, 정말 한 10분 가까이 실랑이를 하는데 근처에서 아이들이 노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장난을 치고 도망갔는지, ‘잡히면 죽는다?’하는 말이 들렸고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 아이들은 놀면서 상징적으로 한 말이지만 그 말을 있는 그대로, 원래의 의미로 사용하기로 했다.
그때까지 썩은 표정으로 있던 나는 일부러 차갑게 웃는 표정까지 지으며,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아마 사이코 같았을 것이다. 고문영 같지는 않았겠지만.
이미지 출처-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
-누가 덮치려고 하면... 이걸로 그 사람 찔러 죽이라는 뜻으로 주는 거지? 그리고 그때 이 칼, 니가 준 거라고 말해도 되는 거지?
그 말을 듣자 그제야 그 아이가 눈 앞에서 꺼졌다. 선물인데 갖기 싫으면 ‘그냥 싫다’고 말하라고 하면서. 10분 가까이 말했는데 ‘그냥 싫다’고 말하라니. 요즘 핫한 제주대 교수가 걔랑 무슨 친인척 관계일까 싶은 생각이 든다. ‘싫어요’만 207번 해도 못 알아듣는 영감탱이가 교수라니. 좋은 말로 할 때는 왜 안 알아듣지. 게다가 갖기 싫은 걸 주는 것도 선물이 될 거라고 생각하다니.
그때 내 몸에 닿던 칼 생각을 하다 보니, 사람 몸에 칼로 글자를 새기게 했다던 N번방 놈들 생각난다.
피해자들 버릇 나빠질까 봐 예방 안 해준 덕분에 지금 가해자들 버릇이 나빠졌다. 그들의 당당한 표정을 볼 때마다 우리 사회 괴물의 태도는, 우리의 관대함 넘치면서도 예방에는 냉정한 법이 그 태도에 대한 양분을 주고 베이스를 제공한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어린 시절의 나는 만족할 만한 사과도, 만족할 만한 처벌도 보지 못했다. 내가 아닌 ‘우리’는 좀 더 나은 처벌을 볼 수 있을까. 23년이나 지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