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여자는 ‘존재’하면 안 되나요?

사실 엄청 많은데(feat.낯선 동화)

by 시은

1부작, 혹은 2부작 단막 드라마가 인기 있던 시절이 있었다. 주말드라마나 일일드라마, 혹은 프라임 시간 드라마처럼 시청률을 씹어먹는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그다음 날 포털에 꽤 비중 있게 다뤄지고 꽤 꾸준히 찾아보는 사람들이 있는, 일정한 타깃층이 있는 그런 인기 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비중이 없어졌다.


그 배경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짐작하는 이유 중 하나는 어느 순간부터 ‘진부한 길’로 걷기 시작해서라고 본다.




작가 지망생들은 영화 시나리오 대본과 단막극의 대본을 구해서 본다. 정말 많은 작품을 본다. 어떤 내용을 썼는지, 어떤 기획의도로 썼는지, 이게 왜 뽑힌 건지, 나는 어떻게 써야 할지 등을 고민하기 위해서.


넓게 보자면 원작 소설 먼저 읽고 그 소설을 베이스로 만든 영화를 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인상 깊게 기억나는 단막극은 2015년 방송된 ‘낯선 동화’라는 단막극이다. 이 드라마가 기억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드라마의 플롯이 ‘낮은 계약금 몇 푼에 저작권을 도난당한 대박 캐릭터 창작가의 정당한 저작권을 찾기 위한 고난 분투기’ 이야기이기 때문이었다. 나도 작가(지망생으)로서, 내가 아직 유명한 사람이 아닌 상태에서 혹시 만약 뭐라도 계약을 하게 될 일이 있으면 그걸 만든 나만큼은 세상보다 높이 쳐줘야 하는구나, 데뷔작이네 뭐네 후려친다고 후려 맞고 있으면 안 되고, 그 사람 안목에 대해 나도 같이 후려쳐야겠다, 하고 다짐하게 해 준 작품이었다.


두 번째는, 여자 캐릭터의 심각한 훼손이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상구는 아이가 둘인 아버지로서 밥벌이를 전혀 하지 않는 창작가이며 현실감 없는 남자이다. 결혼 상태의 그는 아버지 노릇을 전혀 하지 않는 남자였다. 그런 그에게 지쳐 아내인 ‘마리’가 두 아들을 두고 떠난다. 마리도 처음엔 낭만적인 창작가 상구에게 반해 결혼했지만 그가 남편이 되고 나자 현실감이 없는 남자이며 결혼생활을 유지하거나 노력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눈치챈다. 그게 왜 필요한지 모르는 남자라는 것도. 그냥, 그건 노력없이 당연하게 유지되는 거라고 생각하는 남자다. 그래서 그런 남편 곁에서 가난과 독박 육아, 독박 살림에 지쳐 이혼을 하는 여자로 나온다.


그런데 원작 대본에는 이혼 후 마리는 자식, 남편 전혀 생각하지 않은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여자’로 나온다. 그래서 상구가 마리를 찾아가자, 마리는 화려한 네일을 받은 손으로 푸들 같은 작고 귀여운 강아지를 안고 나와서 상구가 어떻게 자식새끼는 버리고 간 주제에 개는 키우냐 하는 힐난을 하자 한 귀로 듣고 귀찮아하며 자리를 뜬다.


신선했다. 이 여자 캐릭터. 이 드라마가 당선된 게 2015년이었는데 물론 그때도 이혼이 흔하지 않은 일은 아니었지만 지금만큼 많지는 않았고 어쨌든 여성들이 이혼시 자녀를 두고 가정에서 빠져나온다면 그 이혼의 사유에 남자 배우자의 잘못이 90% 이상 있다고 해도 아이를 두고 나온 ‘엄마로서의 죄책감’이 있어야 하는 게 너무 당연한 사회 분위기였다. 지금도 아예 없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말이다. 이 여자 캐릭터를 누가 없애버렸다. 대본 속에서 ‘엄마에서 다시 자기 자신’으로 진화했던 마리는 영상화되면서 ‘이혼했지만 그래 봤자 엄마’인 인간으로 다시 퇴화했다. 아이들한테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그리고 이혼 후 변변한 직업을 갖지 못해 식당에서 일하며 숙식을 해결하는, 경제적으로 궁핍한 여성으로 나온다. 전혀 꾸미지 못하고 사는.


아무래도 괘씸했나 보다. 이혼한 여자 주제에 돈 걱정 별로 없이 사는 꼴이. 연출가의 의견인지 더 높은 곳의 커트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드라마의 유일한 여주인공을 구질구질하고 진부한 80, 90년대의 여주인공으로 만들었다. 기분 나쁘다고 새로운 캐릭터 죽이면 이야기는 후져진다. 그래서 몇몇 더럽게 재미없는 드라마가 나온 것 같다.


공모전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찾고 새로운 작가를 뽑는다는 취지 자체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 ‘신박하고 매력적인 새로운 캐릭터’를 찾기 위해서 아닌가?


누가 삭제시킨 것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이런 식의 ‘여자 캐릭터 기죽이기’가 재미없는 드라마들이 양산된 배경 중에 하나라고 본다. 이런 여자가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삭제했는지, 이런 여자가 괘씸해서 삭제했는지는 모르지만 이제 우리는 알고 있다. 비혼 상태로 엄마가 되고 싶은 여성도 존재하지만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엄마이고 싶지 않은 여자도 존재한다. 그렇게, 다양하게 존재한다. 그리고 이혼 후에 돈 걱정 없이 사는 여자도 꽤 많다. 물론 궁핍한 여자도 많다. 다 많다.


이제 여자들은 자기가 존재하고 싶은 방식으로 존재한다. 자기 인생의 주도권을 쥔, 혹은 쥐려고 하는 여자들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존재한다.’ 안 존재하지 않는다. 삭제해도 존재한다. 누군가가 아무리 불쾌해해도 그런 여자도 ‘존재한다.’


그런데 뭘 어쨌다고 불쾌해할까. 우리 인생,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는데.


아마 내가 당선 안 된 이유 중에 이런 여자 캐릭터 이야기를 싫어하는 심사위원이 있었기 때문일 것 같기도 하다. 내 주인공들은 이 주인공보다 10배는 구체적으로 이기적이고 주변보다는 자기를 생각하는 인물이라서.


그래서 가끔 데뷔 못 한 게 아쉽지가 않다. 저렇게 변질당할 일은 안 생겨서. 차라리 데뷔를 빌미로 퇴화당하지는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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