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작 vs 흥행작

작가들은 저마다의 캐릭터 패턴이 있다(feat.옥란면옥)

by 시은

부부의 세계가 끝나고 나서 배우 한소희의 출연작이 검색어에 오르내린 적이 있었다. 그 작품들이 <백일의 낭군님>과 KBS 추석특집극 <옥란면옥>이었다.


<옥란면옥>에서 한소희가 맡았던 역할은 월평군 냉면집 아들인 봉길의 전여자친구였지만 촌에서 썩기 싫어 그와 헤어지고 서울로 떠난 뒤, 요리 방송 PD가 되어 나타난 오수진.

사실 이 정보를 접했을 당시 나는 이미 작가 데뷔를 포기한 상황이었으므로 굳이 이 단막극을 찾아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한소희의 출연작도 내가 알고 싶어서 찾아본 정보가 아니고 정보 과잉 시대이다 보니 네이버 접속했다가 원치 않게 알게 된 정보였다.


작가 지망생도 ‘재미’로 드라마 볼 때가 있다. 많다.

문제는 재미로 보다가 어느 순간 일처럼 시퀀스 분석하고 모니터링하듯 보는 것처럼 보는 자세가 ‘자동적으로’ 업무적 태도로 바뀌곤 한다는 것이다. 여하튼 작가 지망생들이 단막극을 보는 건, 뭐랄까 취준생이 토익 공부하는 것 같은 그런 맥락의 일이다. 물론 하다 보면 공부의 재미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대부분 작가지망생에게는 취직 자리를 위해서 하는 그런 맥락의 일. 그러니 당연히 작가를 때려치운 나로서는 딱히 그 드라마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좀 더 지나서 <사이코지만 괜찮아>를 쓴 작가가 <옥란면옥>도 쓴 그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래 데뷔작이라는 게, 작가의 세계관 같은 게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이야기다 보니 그 작가의 데뷔작이 좀 보고 싶어 지긴 했다. 분석해서 좋은 작품을 쓰고 싶다거나 하는 건 아니고, 그냥 작가 지망생의 흔한 호기심 같은 거다. 언젠가는 흐려지다가 사라지겠지만 그 호기심이 아직 남아 있는 것 같다. 뭐, 시간도 많고.




그녀의 전작인 <저글러스>(2017년)를 보지는 않았고 <옥란면옥>(2018년)이 방송된 시기로는 그 뒤이긴 하지만, 아마 공모전 당선은 <옥란면옥>이었을 확률이 높다. 보통 단막극으로 공모전 당선되고 4부작이나 8부작 하다가 16부작 맡는 루틴이니까.


<옥란면옥>은 <사이코지만 괜찮아>(2020년)와 드라마 톤과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의 환경은 꽤 비슷하다.


<옥란면옥>의 여주인공인 영란(이설)은 치명적인 맛의 느릅냉면을 만들 줄 아는 여자로 나온다. 북한에서 넘어온 것으로 추정되는 말투. 하지만 성도, 진짜 고향도 말해주지 않는다. 한마디로 비밀이 있는 여자다. 그리고 남주인공인 봉길(김강우)이 우연히 그녀의 등에 난 흉터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녀에게 마음이 생기는 강우는 자신에게 벽을 치고 비밀을 알려주지 않는 그녀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


니가 왜 그렇게 끔찍한 상처를 등에 짊어지고 사는지. 뭐가 불안해서 짐보따리를 끌어안고 악몽 속을 헤매는지. 왜 그렇게 한사코 나는 안 된다고 한 건지 그딴 거 이제 몰라도 된다고. 그냥 이렇게 지금처럼 살자고.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고문영(서예지)은 신체에는 흉터가 없지만 마음에 끔찍한 흉터가 있다. 잔인한 엄마가 새겨준, 치료가 불가능할 것 같은 흉터. 그리고 고문영이 악몽에 시달리며 사는 것 역시 <옥란면옥>의 영란이 악몽에 시달리는 것과 비슷하다. 고문영이 인기가 많은 동화 작가라는 설정도, 남다른 동화창작능력과 요리 실력은 활동 분야가 다르지만 '남들보다 뛰어난 직업적 재능이 있는 여자'로 카테고리를 좀 넓게 포함시키면 영란과 비슷하다.


그리고 <옥란면옥>에서 수진이가 봉길의 여자친구이던 시절, 버스터미널까지 쫓아와 자신을 붙잡는 봉길에게 이런 말을 한다.


나 오빠네 아버지 진짜 싫어. 원래부터 싫었는데 풍까지 맞았다니까 더 싫어졌어. 이런 나랑 결혼할 수 있어? 오빠는 오빠네 아버지 절대 못 버려. 근데 나는 오빠 버릴 수 있어. 내가, 그거밖에 안 되는 년이야. 그러니까 내려.

버리고 싶지만 차마 버리지 못하는, 자신이 부양해야 하는 가족이 있는 남자.

바로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강태와 <옥란면옥>의 봉길은 같은 환경에 있다.


그리고 <옥란면옥>에서 서브 여주인공(한소희)이 자신의 직업, 환경에 있어서만 이기적이고, 외모는 치명적으로 예쁜 여자였던 반면,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메인 여주인공(서예지)은 외모는 치명적으로 예쁜 것은 상태 유지했지만 그냥 직업적인 부분이나, 인간관계나 가족관계에서 압도적으로 이기적이고 탁월하게 못돼 처먹은 것으로 설정이 진화했다. 악녀 캐릭터가 당당하게 메인으로 승진했다고 해야 할까.



이 작가의 데뷔작과 흥행작에서는 닮은 점이 아주 많이 보인다. 원래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 는 게 스토리텔링의 기본이긴 하다. 하지만 이 두 작품 구도는 놀랄 만큼 닮았다. 의도하고 쓴 건지, 쓰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인지는 작가만이 알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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