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혹한 직업의 세계

더 버티라는 게 말이 되냐

by 시은

최고의 변사였던 서상호는 아편중독자로 전락해서 1937년 우미관 화장실에서 숨을 거뒀다. 그의 초라한 죽음은 변사의 몰락을 상징했다.


<조선직업실록> 156쪽, 정명섭, 북로드 2014년


요새 ‘일’에 관한 책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인지 일에 관한 책을 많이 읽고 있다. ‘일을 잘하는 방법’에 대한 책을 읽다가, ‘미래에는 어떤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한 책도 읽었다. ‘일을 할 때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에 대한 책도 읽었다. 이제는 하나의 일만 해서는 안 된다는 책도 읽었다. 일에 대한 책을 읽고 또 읽다가 어느새 ‘조선시대 일의 세계’에 대한 책까지 읽게 되었다.


알지 못했던 다양하고 매력적인 직업인들이 나왔지만 아무래도 나 역시 ‘이야기를 만드는 일’을 하려고 했던 사람이다 보니, ‘이야기에 관련된 직업’에 마음이 쓰였다.


전기수. 그들은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 맛깔나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며 돈을 벌던 직업인이었다. 그러다가 근대화가 되며 극장들로 사람들이 몰려가게 되면서 활동무대가 적어지다가, 지방의 장터나 무성영화 스크린 옆에서 감정을 실어 청중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다시 ‘업’으로 어찌어찌 살아가게 되지만 결국 유성영화, 즉 소리가 나오는 영화가 나오며 변사로서의 생명력도 그 내력을 다하게 되었다고, 최고의 변사의 초라한 죽음으로서 그 직업의 마지막 모습을 설명한다.


어느 직업이든 쉽겠느냐만은, 요새 희극인의 무대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말을 예능프로에서 많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1930년대에도, 물론 그 중간중간, 그리고 2021년 지금에도, 미디어의 방식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 미디어 자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미디어와 관련하여 창작하는 직업은 계속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끊임없이 그 안에서 소멸하는 직업의 숫자가 분명히 존재하고, 직업을 잃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작년에, 버티고 버티던 개그콘서트가 결국 폐지되었다. 정확히 어느 프로그램인지 모르겠는데 유재석이 후배 개그맨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프로그램이 사라지는 건 결코 너희들 탓이 결코 아니다, 열심히 한 거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부디 기죽지 말라고.


기죽지 않는 거, 쉽지 않을 것이다. 죽자살자 고민하게 하던 내 정체성을 부여해주던 ‘나의 일’이 사라지고, 그렇게 모여 일하던 ‘동료들과의 일터’가 사라졌고, 또 그렇게 ‘모여야 할 이유’가 사라졌는데, 아무렇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그러니 아무리 영향력 있는 누군가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그들이 기가 안 죽는 건 아닐 것이다.


직업의 세계는 이렇게 냉정하고 어쩔 수가 없는데, 우리가 어떤 직업을 간절히 원할 때의 감정은, 거의 사랑을 뛰어넘는다.


오죽하면 ‘그래서 일이야, 나야?’ 같은 질문이 탄생하게 되었겠는가. 나는 이 질문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보다 심각한 딜레마를 제공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엄마나 아빠 둘 중 누구를 선택해도 그 관계는 결코 종료되지 않지만, 경우에 따라 ‘일이야 나야’에서 일이 선택되는 경우, ‘내’가 제거되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보았다. 물론, 나도 20대 때 멋모르고 저 질문했다가 일에 밀려 제거당해봤고.


일이란 게, 일에 대한 애정이란 게, 이렇게 무섭고 대단하다.


최고은 작가가 죽음이 알려진 게, 딱 10년 전 일이다. 2011년 2월 9일. 이 날짜가 그녀가 죽은 날은 아니고, 죽은 그녀가 발견된 날이다. 죽은 건, 1월 말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고 언론은 발표했다.


나는, 내가 시나리오 작가로 살거나, 혹은 시나리오 작가로 죽을 줄 알았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다. 그렇게 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사는 게 좋다.


사실, 죽고 싶을 때도 가끔 있었는데, 그래도 계속 살아가는 게 좋겠다 하는 때가 아주 조금 더 많았다. 그게 비록 내가 원하는 방식의 삶과 직업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글을 쓰고 이야기를 만드는 삶이 매혹적이고 갖고 싶은 삶이었지만 그 문이 너무 좁았다. 너무너무너무 좁았다.


더 슬픈 소식은 그 좁은 문에 어찌어찌 들어가게 된다고 해도, 그 일을 하고 받게 되는 노동의 대가는 아주 불리한 계약서 위에 기반하고 있고, 심지어 그 계약서는 제대로 실행되지 않기 일쑤라는 것이다.


최고은 작가도, 영화사들과 여러 건의 시나리오 계약을 맺고 그 약속에 따라 글을 썼다. 하지만 영화가 제작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들은 원고료를 지급하지 않았다. 비참한 게, 원고료는 제작 이후에 지급한다, 라는 항목이 계약서에 따라 있기도 하다. 계약하고 계약금을 받는 게 일반적인데 시나리오 관련 계약서는 참 희한하다. 표준계약서라는 게 있긴 하지만 그것도 잘 안 지켜지는 데다가, 급한 대로 자신의 글에 대해 어떤 계약이라도 하고 싶은 신입 작가는 말도 안 되는 계약서에 서명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문구는 제작이 안 되면 작가에게 돈을 안 줘도 계약 위반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 새끼들아, 그럼 누가 봐도 제작이 확실한 기획을 하고 나서 작가를 고용하던가 다 큰 성인이 법인 차려 놓고 소꿉놀이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제작이 안 돼서, 계약한 돈을 제대로 못 받은 상황이라 할지라도 어느 영화사와 일부 금액으로라도 계약을 한 상태라면, 그 계약기간이 3년이면 3년, 5년이면 5년, 종료될 때까지 다른 곳에 그 글을 팔 수가 없다.


그 모든 걸 알고 있기에, 그 잔인한 계약 조항들을 감당할 애정이 나에게는 없어서, 그래서 결국 시나리오 작가라는 직업의 바다에 발가락 하나 담가보지도 못하고 유턴했다. 그냥 꼬박꼬박 정해진 날짜에 월급 나오는 밥벌이를 하면서 사는데 그래도 매년 오늘, 2월 9일이 되면 그리고 그 생태계가 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면 좀 쓰리다.


최근 새로 만들어진, 작가를 위한다는 ‘표준계약서’에 대한 뉴스를 찬찬히 읽다 보니 또 한 번 그 세계에 내가 없다는 게 안도가 느껴질 만큼, 가혹한 세계인 건 아직도 변함이 없었다.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작가 등짝에 빨대를 꽂는 세계였다. 그런 계약서에 대해 어떻게 ‘작가를 위한’이라는 말을 할 수 있는지 놀라울 뿐이다. 어떻게 꽂을지, 어디에 꽂을지 다양한 각도를 재고, 색다른 방법으로 꽂을 방법이 보였을 뿐, 작가 등짝에 꽂은 빨대를 뽑고 등짝에 약을 발라줄 생각은 없는 계약서의 조항들이, 너무 투명하게 가혹해서, 이 투명도가 어쩌면 작가들이 자신의 일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은 대가인가 싶을 정도였다.


10년 전인, 2011년 2월 9일 그녀의 죽음에 대한 기사 속 한국영화산업노동조합에서 발표한 성명서에는 한국영화인의 실태가 수줍게 드러나 있다. 바로 2009년 영화 스태프들의 연평균 소득이 623만 원이라는 ‘소득에 대한 정보’다. 얼마나 나아졌는지 모르겠다. 2배가 올랐다고 해도 1300만 원이 안된다. 그만큼이라도 될지 모르겠다. 크게 나아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 수준에서 더 버티라는 게 말이 되냐, 아무리 우리가 어떤 직업을, 어떤 작업을 좋아하고 사랑한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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