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집안의 가엾은 핑곗거리
나는 가끔 내가 운이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복권이 된다거나 공돈이 막 생기는 그런 종류의 일은 아니고,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순간에, 내가 그 주변에 있었던 적이 있는데 지나고 보니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였던 적이 꽤 많았다. 지금 말하려는 두 가지의 이야기도 그렇다.
요새는 특정한 성별을 깎아내리는 속담을 공개적인 상황에서 잘 쓰지 않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는 그런 종류의 속담을 쓰는 인간들이 꽤 있었다.
예를 들면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같은.
이 속담은 자기주장을 하는 여자들을 후려치고 입 닥치게 하고 싶을 때 자주 사용되던 속담인데,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인가 6학년 때 같은 반 남자아이가 자신과 투닥거리던 여자아이에게 이 말을 지껄였다. 그 둘의 이름까지 기억나지는 않으므로 편의상 철이와 영희라고 하자.
그때 우리 반에는 미국인가 영국인가에서 부모님을 따라 1년 정도 거주하다가 온 여자애가 있었는데 철이가 암탉 어쩌고 하는 말을 하자, 공부하다 말고 조용히 끼어들었다.
-근데 있잖아, 철이야. 암탉이 울어서, 집안이 망한 게 확실할까?
철이와 영희, 그리고 주변의 몇몇이 무슨 말인가 싶어 그 여자애를 주목했다.
-이상하지 않아? 암탉이 울고 나서, 그 집이 망한 게 그 암탉 운 거 때문이라고, 이게 그 집이 망한 근거로 제시했을 때 납득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어? 네가 보기에?
아이의 말은 이어졌다.
-나는 이 속담 들을 때마다 너무 기분이 이상한 거야. 그래서 생각을 계속하다 보니까, 옛날 사람들한테 속담의 배경이 되는, 실제 이미지가 있었을 거란 말이지.
예를 들면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 이 말, 밟힌 지렁이가 꿈틀 하는 거 보고 만들었을 것 같지 않아?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 이 말도 정말 낫 놓고 기역자 모르는 누군가 있었을 거고. 그럼, 어떤 집 암탉이 울고 나서, 시간이 흘러 암탉 울었던 그 집이 망한 걸 알게 되어서 이 속담을 만들었다기보다 어느 순간, 어떤 망한 집에 암탉이 울고 있는 한 장면을 보고 나서 만든 말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까?
근데 보통 암탉은 안 울어. 왜? 우는 건 수탉 일이거든. 울어서 사람들 깨우는 거. 암탉은 원래 알 낳는 거 담당이고. 그런데 수탉이 할 일을 암탉이 한다? 그러면 그 집은 암탉이 울어서 망한 게 아니라, 아침에 울 수탉도 없을 정도로 망한 집인 거야. 이미 망한 집에 남은 암탉이 자기 할 일도 아닌데 남은 사람 깨워서 일하러 가게 하려고 운다고 보는 게 맞지 않겠어? 그러니까 암탉이 울어서 망한 게 아니라, 망한 집이라서 암탉이 우는 거야, 안 울고 싶어도. 사람들 일 시켜야 자기도 안 굶어 죽으니까.
속담이라는 게 워낙 옛날에 만들어진 거잖아. 그게 꼭 옳은 말이라기보다 그냥 계속 사용하다 보니까 그럴듯해 보여서 그렇게 또 계속 쓰는 거 아닌가... 내 생각은 이래.
문장으로 쓰고 보니 꽤 길어 보이는데 말로 들을 때는 그렇게 길지 않았던 것 같다. 게다가 그 친구는 꿈이 의사라서 쉬는 시간에도 책을 보며 공부만 하던 친구였다. 평소 아이들과 어울려서 노는 성격이 아닌데 갑자기 끼어들어 말을 하니 다들 홀린 듯이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아이가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그 친구는 반년 정도 우리와 함께 공부를 하다가 외국어 중학교인지 뭔지 특성화 중학교로 진학했고 훗날 들려오는 풍문에 의하면 미국 어느 의대를 갔다고 했다. 친한 사이가 아니라서 자세한 정보는 모르겠지만 똑똑한 아이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그 아이가 구체적으로 설명하던 암탉과 망한 집의 상관관계는 내 머릿속에 인상적으로 남아 있었다.
두 번째로 내가 그 속담을 들었던 것은 고 3 때 잠시 다녔던 꽤 인기 있는 수능 입시학원에서였다. 쉬는 시간에 맨 앞자리의 남자애와 여자애 하나가 정치적 이슈로 언쟁을 하다가 남자애가 갑자기 여자애의 말을 끊으며 이야기의 맥락에 어울리지도 않게 ‘야, 암탉 울면 집안 망한다, 조용히 해’라고 하는데 수업 종이 울리고, 곧 강사님이 들어왔다.
강사님도 들어오기 직전에 그 암탉 어쩌고 하는 말을 들으셨나 보다. 강사님이 학생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나서 그 남자애에게 물었다.
-암탉이 대단한 존재냐?
-네?
-아니, 암탉이 뭐 그렇게 대단하고 어마 무시한 존재냐고. 아이언맨, 슈퍼맨쯤 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집에서 알 낳다가 지가 지 소리 내고 싶을 때 울 수도 있는 건데 그 정도 일로 집안 망하는 거면, 암탉이 초능력 있는 거 아니냐?
-아니, 제 말은 그게 아니라...
-그리고 암탉 좀 운다고 한 집안이 망하는 거면, 그 집구석 자체가 시원찮은 거야. 집안이든 회사든 국가든 사회든 구성원 한 두 명이 어쩌다가 실수도 하고, 가끔 내부에서 구성원끼리 싸웠다가도 다시 잘 돌아가는 게 제대로 구축된 시스템인 거지, 암탉 좀 울었다고 집안 망한 거면 그게 자랑이냐? 집안에 제대로 생각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고, 집구석 엉망진창이니까 그깟 암탉 좀 울었다고 멘털 흔들거려서 망한 거야. 암탉 운다고 망할 집이면, 안 울어도 망해. 승승장구할 집은 암탉이 울든 말든 잘 돌아가고. 그냥 암탉 핑계 대는 거지.
세상에. 세상엔 똑똑한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