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없더라
-나만큼 너를 사랑하는 남자는 세상에 없을 거야.
라는 말을 들은 적이 두 번 있다. 20대 후반에 만나던 남자 친구한테 한번. 30대 초반에 만나던 남자 친구한테 한번.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때, 저 말은 상당히 로맨틱해
보였는데 막상 내가 들어보니 전혀 로맨틱하지 않았다.
그들과의 연애는 다른 연애들만큼 좋았으나 그 연애가 다른 연애와 차별화될 만큼 좋았냐고 물으면,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그 나이 때에 할 만한 딱 ‘고만고만한 연애’였다. 두 번 다시 안 올 것 같은 영화 같고 드라마틱한 사랑 느낌, 그런 건 없었다.
그런 연애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나는 그 두 연애 모두 나와 남자 친구 서로 쌍방 평균 정도의 사랑을 주고받고 있는 것 같았고 나름 만족스러울 때도 있었는데 그 말을 들으면 그 사람 혼자 ‘내가 이만큼 너에게 해주고 있다, 너는 나만큼 너에게 잘해주는 남자를 만날 수는 없다’라는 생각이 느껴져서 연애의 온도가 좀 식었다.
물론 둘 다 나름의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20대 후반에 만난 그 남자 친구는 자기 같은 남자와 결혼해주는 것만도 고마워서 나에게 시집살이 절대 안 시킬 것이라는 말을 종종 하곤 했다. 물론 내 나이 20대 후반, 그 오빠 나이 30대 초반이니 별 문제없으면 이 사람과 결혼할 수도 있겠다 생각은 했지만 꼭 이 오빠와 결혼해야지 생각은 안 들었는데 그는 결혼을 염두에 둔 얘기, 특히 아이 얘기를 참 많이 했다.
이제 와 얘기지만 그와 결혼한다 해도 아이는 절대 낳고 싶지가 않았다.
그가 너무 못생겨서.
그 당시에 남자 얼굴 보는 거 아니라는 사회적 통념에 속아서 그 오빠 얼굴도 꾹 참고 만났는데 말은 안 했지만 결혼까지는 가능해도 아이까지는 무리였다. 가끔 아무리 삶이 힘들어도 아이 얼굴 보면 삶의 피곤이 녹는다던데 그 오빠 얼굴 닮은 아이면 진심 더 짜증 날 것 같았다.
여하튼 그는 나와의 결혼이 아주 확실한 것처럼 굴긴 했고 나도 딱히 그 행동에 선을 긋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의 부모님이 이혼한 것을 몹시 신경 썼고, 그런 자신의 집과 결혼시키려는 부모님이 없을 거라는 말과 함께 나에게 자신의 부모님 문제는 자신이 해결할 거니 너는 신경도 쓰지 말라고 하곤 했다.
언젠가 우리 아빠의 생신이라서 내가 선물을 고민하고 있자 그가 내 대신, 아빠 선물을 준비해서 준 적이 있었고, 나는 별로라고 생각했던 선물이었지만 아빠는 그 선물을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몇 달 뒤 그의 어머니인가 아버지 생신이었을 때, 내가 이번에 선물을 사주겠다고 하자 그가 말했다. 그는, 나에게 너는 화목한 집의 귀한 딸(이혼가정이 아니라는 이유로)이니까 자신이 너를 길러주신 아버님 생신 선물 챙기는 게 당연하지만, 자신은 그런 귀한 집 아들도 아니고 자기 집은 이혼한 부모님 안 그래도 신경 쓰일 테니 자신의 부모님은 자신이 다 챙길 테니 나에게는 신경도 쓰지 말라고 했다.
결혼하면 사람 마음 바뀔 수도 있겠지만 20대 후반의 여자가 저런 말을 들으면 나름 시집 걱정을 덜 하게 되는 게 사람 마음 아니겠는가. 그때 저런 말을 해준 건 참 고마웠다.
저 단면만 보면 든든해 보일지 몰라도 이 남자는 연락이 안 되는 문제로 여자 친구인 나를 답답하게 만들어놓고, 내가 글을 쓰느라 바로 답을 못 하거나 연락이 안 되면 지랄 난리가 났다. 내가 연락 안 되는 이유는 글 쓰는 거 하나뿐이었는데도. 그러면서 내가 글 안 써도 자신이 먹여 살릴 거라는 말을 참 못되게, 아주 정이 뚝 떨어지게 했다. 그러다 자신의 기분이 풀리면 잘 해주곤 했다.
시나리오를 쓸 때 이런 말이 있다. 단점을 일일이 없앨 수는 없다. 차라리 거부할 수 없는 뛰어난 장점을 만들어라. 단점이 보인다 하더라도 그 장점 때문에 거부할 수 없게.
물론, 시나리오든 사람이든 단점이 없는 것이 더 좋겠지만 그런 시나리오가 얼마나 있으며 그런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자잘한 단점 있더라도 ‘다른 시나리오에서 볼 수 없는 매력’이 있으면 그 시나리오는 꽤 괜찮은 시나리오다. 사람도 비슷하다. 자잘한 단점 있더라도 ‘다른 사람보다 이 사람이 나에겐 제일 괜찮겠다’하는 부분이 있으면 괜찮은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장점이 없었다. 자기 부모님, 자기가 챙기는 거, 장점이겠지만 그렇게 치명적인 장점은 아니었다. 사실 그게 나한테 어떤 구체적이고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이득을 주는 것도 없었다. 자신은 나에게 엄청 잘해준다고 믿고 있고, 항상 그렇게 말하곤 했는데, 나는 딱히 그 정도의 연애 느낌은 들지 않았다. 헤어져도, 이만한 연애는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실제로 그랬다.
얼굴도 그렇고 연락 문제도 그렇고 잘해준다는 유세도 더는 못 버티겠어서 헤어지자고 했다. 그런데 그가 이 이별을 못 받아들여서 ‘우린 헤어진 거’라는 걸 3번을 만나서 설득해야 했다. 그 이후에도 혼자 미친 듯이 연락을 해왔고, 우리 집, 내가 다니는 회사를 맴돌아서 또 한 번 질리게 만들었다. 그는 결국 내가 부산을 떠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다.
30대 초반에 만난 남자 친구는 연락이 참 예쁘게 잘 되는 사람이었다. 나라는 인간 자체가, 연락을 잘하지 않기 때문에 ‘연인에게 바라는 연락 빈도 기준’이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그는 연락을 엄청 잘했고 그 당시 말 예쁘게 하는 걸로 핫했던 ‘이상순’보다 말을 예쁘게 했다. 그리고 자신은 열심히 연락을 하는 것에 비해 내가 연락을 잘 못 해준다고 서운해하지 않았다.
물론 내가 연락이 안 되기 전에, 몇 시간 동안은 글을 쓸 거라 연락이 안 된다 말을 해준 것도 있지만, 그렇게 해도 서운해서 지랄 난리 난 남자 친구들도 꽤 많았다. 니가 얼마나 대단한 작가냐고 비꼬는 말과 함께.
그는 내가 연락 제때제때 하라고 해서, 말을 예쁘게 하라고 해서가 아니라, 그냥 연인이랑 소소한 연락하는 걸 좋아했고, 원래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글 쓰느라 핸드폰 몇 시간 동안 못 본다고 했다가 내가 다시 몇 시간 만에 연락을 하면 그에 대한 말도 참 예쁘게 했다. 고생 많았다고.
그런데 만나다 보니 그가 가진 문제점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가장 큰 문제는 효심이었다. 그는 효자였는데 ‘효심’만 있고 ‘효도의 실천’은 여자 친구인 내가 하길 바랐다. 그는 데이트하고 헤어질 때 가끔 맛있는 디저트 같은 걸 먹고 나면 그걸 할머니에게도 맛보게 해주고 싶다면서 굳이 나보고 사달라고 해서 포장을 해가곤 했다.
나는 그 연애 당시 글 쓴답시고 백수 신분으로 간헐적으로 아르바이트해서 근근이 생활비만 메우며 살던 시기가 길어서 그가 데이트 비용을 내는 일이 훨씬 많았다. 할머니 간식, 얼마 안 하는 거라 해줄 수 있는 거긴 했지만 그 부탁을 들어주고 나면 기분이 좀 그랬다.
그가 이후 할머니한테, ‘할머니 며느리 될 여자가 사주는 거라고 자랑했다’는 얘기 때문이었다.
왜 그냥 손주가 사주는 거면 안 되고, 손주 여자 친구인 내가 사는 걸로 해야 하는지, 그걸 왜 내 허락 없이 며느리라는 단어를 쓰는지 짜증 나긴 했지만 금액도 별로 안 되는 걸로 기분 상하게 하기 싫었고, 그 이유로 지금 이 따뜻한 연애의 흐름을 망치긴 더욱 싫었다.
요즘 여자들이 좋아하는 이성의 기준에 ‘말 예쁘게 하는 남자’가 언급될 때마다 이 친구가 떠오르는데 이 장점 말고는 가진 게 없었다. 물론 이 장점은 정말 작지 않은 장점이었다. 2년이 좀 안 되는 연애기간 동안, 한 사람으로서 온전히 인정받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 주었다. 부모님에게서도, 아니 그 어떤 사람에게서도 받아본 적 없는 완전한 배려였고 존중이었다.
그가 가진 가장 큰 문제는 ‘가까운 시일에 결혼을 하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둘 다 30대 초반이니 그럴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멍청한 생각인데 그 당시에는 결혼 생각이 없어서 나는 모은 돈이 없었다(하지만 이제 와서 깨달은 건데 결혼 생각이 있든 없든 돈은 모아야 한다. 이 글을 읽는 20대, 30대 글 쓰는 여자들, 특히).
남자 친구의 집은 진짜, 돈이 지지리 없는 집이었다. 물려주실 재산은 없는데 돌아가신 어머니가 물려주신 빚은 있는 상황이었고, 그걸 해결해 줄 만한 뭔가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남자 친구가 그리 잘 벌지도 못했다.
게다가 그 문제 외에도 문제 있는 가까운 친척도 내 기준 3명이나 있었다. 문제는 그중에 2명은 문제 해결을 이 친구에게 부탁하곤 했다. 내가 보기엔 그럴 능력이 없는 친구였고, 내 예상대로 문제 해결은 되지 않고 어찌어찌 넘어가지긴 했지만 그게 끝이 아니라는 건 너무 자명했다. 그 문제들이 꼭 돈 문제는 아니었는데, 사실 돈이 있으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했다.
결혼은 결국 집안끼리 엮이는 건데, 그야말로 소위 없어도 너무 없는 집이었다. 뭐 돈 없는 거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 친구는 내가 자기 집안에 들어오면 많은 게 잘 풀릴 거라 생각했다. 포인트는 그거였다. 그는 내가 결혼을 해서 자기 집안으로 들어오길 원했고 나는 비혼인 상태로 연애하며 존중받고 서로 조금씩 성장하길 원했다.
내가 돈 없어서 비혼인 것도 있지만 나는 내 똑 부러진 능력을 결혼해서 남자 집안 일으키고 집안 살림 돌보는 데 쓸 생각이 없다. 누구 집안 며느리로 들어가서 내 삶을 갈아 넣을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없다. 그럴 능력, 그럴 에너지가 ‘아주 남아돌면’ 그건 또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 능력을 내 몸 하나 건사하고 가끔 글 좀 쓰고 나면 내 에너지는 끝이다(그래서 요즘 글도 자주 못 쓴다).
사실 나보다 더 똑 부러진 능력을 가졌으면서도, 사랑한다는 이유로 결혼해서 결국 시궁창 같은 남자 집안에 에너지를 쏟느라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여자들을 너무 많이 봤다.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말 예쁘게 해주는 것이 인생을 구해주진 않는다. 괜찮은 남자가 평생 안 나타나서, 내 인생 안 구해줘도 된다. 내가 나를 구할 거니까. 최소한, 내 인생을 말 예쁘게 하는 남자의 따뜻한 시궁창 같은 인생에 함께 처박을 수는 없었다.
‘말 예쁘게 하는 장점’을 가진 그가 헤어질 때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 나만큼 널 사랑하는 남자는 없을 거야.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아무리 그래도 30대는 사랑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걸 아는 나이다. 그러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그와 결혼하는 건 시궁창으로의 점프였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
-니가 나랑 결혼 안 해주면.. 나 같은 놈 만나주는 여자 아무도 없을 텐데, 우리 할머니는 어떻게 해.
...니 할머니는 원래 니가 챙기는 게 맞잖아.
그의 뛰어난 장점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진 수많은 단점을 극복할 수 없었다. 특히 결혼한 여자가 가정에서 많은 걸 부담하길 바라는 그의 태도는 장점 따위 눈에 띄지도 않게 만들었다.
아무리 장점이 뛰어나도, 단점이 너무 크거나, 너무 많으면 그 시나리오는 틀려먹었다. 사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