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의 콩

저는 가뭄을 버틸 자신이 없는데요.

by 시은

비가 와줘야 할 때 비가 내리고, 햇볕이 내리쬐야 할 때 햇볕이 내리쬐는 적절하고 좋은 환경에 있는 콩은, 잘 자란다. 웬만하면 무럭무럭 자라서, 좋은 상태의 먹음직스러운 콩이 될 것이다.


하지만 가뭄에는 다른 농작물도 마찬가지지만, 콩은 성장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물을 대단히 많이 필요로 하는 동시에 물을 제때제때 필요로 하는 농작물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떤 성취를 이루기가 대단히 어려운 환경을 가졌지만 이룬 것을 가리켜 우리는 ‘가뭄에 콩 나듯이’라고 표현한다. 어떤 일이나 물건, 사람이 엄청 드문드문 나타난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피겨스케이팅의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에서 가뭄에 콩 나듯이 ‘김연아’가 탄생한 것 같은 일 말이다.




인스타 또는 자주 들어가는 sns에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 꿈을 잃지 않고 꾸준히 글을 써서 데뷔하고, 또 성공한 작가들의 인생역전 스토리가 자주 올라오던 시기가 있었다.


작가가 정말 되고 싶었지만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밥벌이만 하고 살다가 우여곡절 끝에 작가가 된 이야기, 혹은 겨우 데뷔는 했으나 일거리가 없어서 쌀 사 먹을 돈도 없어서 생활비를 지인에게 빌려서 생활한 이야기, 이혼한 후 정부 보조금을 받으며 매일 아이를 데리고 카페에 하루 종일 글을 쓴 이야기 등 극단적으로 몰린 상황인 적도 있었으나 결국 지금은 성공한 작가들의 드라마틱한 스토리 말이다.


그 작가들의 실력과 노력은 물론 대단하지만 사실은 어쨌든 말라죽기 전에 비를 만났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을 한다. 정말 비빌 언덕이 없어서 빌빌거리고 있을 때, 어쨌든 손 내밀면 도와줄 수 있는 친구 혹은 직업적 도움을 준 누군가가 1-2명은 있었을 것이고, 그렇게 가뭄을 통과한 재능은 빛을 만난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이다.


나는 사실 인생의 기회가 불공평한 것에 대해서 큰 불만은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끝도 없이 불행해질 수 있으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작가가 그렇게 좋은 운을 타고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야, 너네가 정말 오지게 잘 쓰면 이 사람들처럼 대박 작가가 될 수 있어. 이 사람들을 봐.’라고 소설 <멋진 신세계>에서처럼 마약 뿌리듯 본질을 흐리고 뜬구름을 미화해서 어떤 장밋빛 미래가 다 가능한 것처럼 보여주는 정보를 접하면….


피곤하고 속이 쓰라리다. 지적은 해야겠는데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아득하기도 하다.




작가의 꿈을 이루고 싶어서 멀쩡히 부산에서 직장 생활하다가 서울로 온 주제에, 꿈을 이룬 ‘dream come ture’ 스토리가 아름답게 비춰지면 왜 안 되는지, 그게 왜 올바르지 않은지 지적하자니, 그것도 그것대로 또 피곤하다.


사실, 극소수의 누군가에게는 그런 영화 같은 일이 실제로 생긴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그 콘텐츠의 기반이 되는 실제 정보가 틀린 정보는 아니라서, 어떻게 바로 화를 낼 수는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구름이 걷히듯이 서서히 빡침이 차오른다.


피라미드의 꼭대기를 가리키면서, 바닥에 있는 사람들에게 야, 너네도 할 수 있다, 사실 이 사람들도 피라미드 아래쪽 사람이었어, 하는 식으로 대박 난 유명한 작가들의 성공담을 단순하게 ‘존버의 미담’으로 둔갑시키는 것은 아무래도 시스템이 엉망진창이라는 본질을 흐리는 것이고 분명 악의는 없다지만 골탕 먹이는 것 같다.


분명 그들의 성공이 거저 얻은 성공이 아님을 알면서도(이 부분에 대해서도 나중에 또 할 얘기가 있다) 디테일과 과정이 삭제된, 그저 결과로서의 눈부신 성공만을 진열하는 것을 보는 것은 분명 골탕 같다.


글 쓰는 분야만 그런 것은 아니겠으나, 글 쓰는 것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얼마나 거지 같은 계약을 (어쩔 수 없이) 하고, 그나마 그에 대한 대가를 받기가 어려운지를 ‘모르는 척 ‘해야만 저렇게 태평한 소리를 자연스럽고 물 흐르듯이 할 수 있기 때문에.


물론 유명하지 않는 데뷔 초기 작가들에게 페이를 지급하는 ‘시스템이 불합리한 것을 인정하고, 그래서 곪아있는 제도를 보완하고’, ‘불량한 계약/계약 불이행에 대한 페널티를 어떻게 부과하느냐’, ‘정당한 페이를 어떻게 지급할 것이냐’에 대한 문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쉽지 않은 문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뭄을 견디면 이렇게 될 수도 있다는 메시지는 솔직히 가볍기 짝이 없다.


왜냐하면 ‘가뭄의 난 콩’은 전혀 일반적이지 않으므로.


그러려고 만든 콘텐츠는 아니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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