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좀 도와주면 안 되냐?

안 그럼 곧 죽을 것 같아서 그래

by 시은

가뭄 이야기를 쓰다 보니까, 가뭄 상황에 놓인 물고기를 만난 선비 이야기가 생각난다. 장마가 시작될 무렵에 가뭄에 대한 생각이 계속 나는 건, 아무래도 내가 정반대의 상황을 떠올리는 습관이 있어서일 것이다.




중국 설화인가 민담인가에 보면 한 선비가 과거를 보러 가는 길에 웅덩이에서 펄떡거리는 물고기 한 마리를 만나는 얘기가 나온다.


물고기가 선비에게 말을 건다. 살려달라고. 조금만 가면 호수가 있는데 거기에 던져달라고. (호수로 데려가 달라는 게 정확한 스토리였는지는 모르겠다. 물 한 바가지를 달라고 한 것일 수도 있는데 여하튼, 근본적으로는 물고기의 몸이 물에 담겨야 생존 가능하다는 것에 큰 차이는 없으니 패스하자. 한 바가지 물보단 호수가 낫기도 하고.)


어릴 시절의 나는 설화를 읽을 때마다 이야기의 본질을 잘 읽어내기보다는 그 상황의 진실을 의심하는 어린이였는데 저때 당시 내가 했던 생각은 이런 거였다.


-이야, 물고기가 말을 하네?

-어떻게 이렇게 허황된 이야기를 만들고 애들에게 믿으라고 들려주는 거지?

-과거 보러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이 물고기 구경시키는 장사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등이었던 것 같다. 대략….


중요한 내용은 아니지만 그냥 한번 써봤다. 중요한 건 선비의 대사이다. 우리의 주인공인,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는 뭐라고 하느냐.


-미안한데 내가 급해서 지금은 네 말대로 해줄 수가 없구나. 대신에 돌아오는 길에 잊지 않고 꼭 구해줄 테니 걱정 말아라.


선비가 ‘지금’은 구해주기 힘들다는 것에 핑계도 댔던 것 같다. 너를 호수로 옮겨가기 위해 담을 바가지가 없다고 했던가, 그런 비슷한. 그러자 우리의 시크한 물고기는, 잊지 않고 구하러 오겠다는 말에 더 매달리지도 않고 이렇게 말한다.


-그때쯤이면 난 이미 말라죽어 있을 텐데.


그러면서 물고기는, 아주 거대한 바다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의 물 한 바가지가 필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엄청 대단하게 도와달라는 게 아니고, 좀 피곤해도 조금만 수고를 들여서 지금 도와주면 안 되냐고. 안 그럼 조만간 죽을 것 같아서 그렇다고.


가뭄에도 살아남은 ‘난 콩’이나 혹은 호수 밖으로 튕겨져 나왔지만 어떤 식으로든 다시 ‘물을 만날 수 있었던 물고기’는 인지하든 못하든 사실 엄청 운이 좋은 것이다.


대부분의 가뭄의 콩은 말라죽고, 대부분의 물 밖으로 튕겨나간 물고기는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주변이 악조건이어서가 아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그게 평범한 조건이다.


날씨가 악한 의도가 있어서 콩을 말려 죽이려고 한 것이 아니다. 그냥 어쩌다 보니 가물었고 콩은 죽는 것이다. 콩이 죽고 나서 비가 내릴지도 모른다.


물고기를 만나게 한 상대가 그 흔한 농사꾼도 아니고,

물고기를 팔아먹을 수 있는 장사꾼도 아니고,

물고기를 당장 죽일 법한 산적도 아니고, 선비라는 것은 그래도 어느 정도 ‘그 사회에서 지적 수준이 있는 상태의 인간’인 것으로 설정한 것이다. 그럼에도 안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다 보고 도와주러 올 수도 있지만, 그러면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날씨나 선비가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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