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목적은 하나야

마음의 평화

by 시은

내가 소설을 많이 읽는다고 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소설 속 주인공들을 떠올렸을 때 그들의 목표가 ‘이거야!’ 하고 단호하게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영화 속 주인공들은 장르를 불문하고 목표가 하나다. 돈? 명예? 인기? 다 틀렸다. 좀 어이없게 들릴지 몰라도, 영화 속 주인공들의 목적은 모두 마음의 평화다.


Inner Peace.

<킬빌>의 브라이드가 피의 복수를 하는 것도, <극한직업>의 형사 5인방이 테드 창을 잡기 위해 위장 치킨집을 하는 것도, <괴물>의 강두와 가족이 딸 현서를 구하기 위해 괴물과 싸우는 것도, <타이타닉>의 로즈가 부유한 약혼을 박차고 잭을 택하는 것도, 결국은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다.


장르가 달라져도 다 똑같다. 돈이 목적인 영화도, 사랑을 쟁취하려는 영화도, 범인 잡으려는 영화, 잃어버린 아이를 찾는 영화, 생존자체가 목적인 영화. 모두, 최종 목적지는 Inner Peace 다. 그래야만 ‘마음이 평화로워지니까’ 돈과 에너지를 써가며 그 난리를 떠는 거다.


복수를 하는 것도(킬빌), 위장으로 투잡 하는 것도(극한직업), 괴물과 싸우는 것도(괴물), 부유한 남자를 버리고 가난한 남자의 사랑을 선택하는 것(타이타닉)도, 사실 이거 다 엄청 현실적, 육체적으로 엄청 고된 일이다. 그런데 이 주인공들이 왜 이러느냐.


몸이 편한, 흔하디 흔한 그 길을 가면, 마음이 불편하니까.


그런데 이 ‘마음의 평화’를 가지려다가 죽을 수도 있다.


<괴물>에서, 강두 가족이 현서를 잃고 나서 바로 ‘산 사람은 살아야지.’ 하고 현서가 처음부터 없던 사람처럼 살 수는 없었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노력의 동기이자 목표였던 현서는, 결국 죽는다. 그리고 구하는 과정에서 할아버지인 희봉도 죽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처음부터 ‘비록 딸이 죽었지만 가족의 희생을 감당할 수는 없다’며 아무 노력도 안 하고 살면 과연 결말에 강두가 목구멍에 밥 잘 넘기며 살아갈 수 있었을까? 당연히 아니라고 본다.





<타이타닉>에서도 잭이 죽는다. 사람들 따라서 구명보트 타고 도망치면 됐는데, 로즈는 구명보트에서 내려서 잭을 구하러 간다. 로즈가 잭을 구하러 갔고, 뛰어난 도끼 솜씨로 구했지만, 결국 잭은 죽었다. 그리고 로즈가 잭을 구하러 안 갔어도 잭은 구해줄 사람이 없어서 죽었다.


로즈가 잭을 구했지만 잭은 죽는다.

로즈가 잭을 안 구했고 잭은 죽는다.


결과적으로, 로즈가 어떤 선택을 했든 잭은 죽는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게 같은 내용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당연하지 않은가?


차가운 바다 위에서 어쩔 수 없이 그가 죽고 말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향해 끝까지 내달렸고, 자신이 원하는 남자를 구했다. 비록 잃었더라도.


로즈가 잭을 안 구하고 사람들 따라서 구명보트 타고 몸 편하게 살아남아서 마음 편히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겠는가. 그럴 리가 없지 않겠는가. 그녀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다. 심지어 도중에 누군가 그녀를 막아섰는데도 되돌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만신창이가 되어 거의 죽기 직전에 살아남았고, 마침내 자신의 삶을 쟁취했다. 그래서 삶의 마지막 순간에, 잭을 당당한 얼굴로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음의 평화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사실은 생각보다 엄청나다. 모든 영화의 목표가 이것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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