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우리는 누군가의 솔로몬이 아니다

튀김은 떡볶이 먹을 때나 먹자

by 시은

추석이었을 때 각종 커뮤니티에 추석 음식 관련한 에피소드들이 올라왔다. 그중에 추석에 튀김은 경상도에서만 먹는 거라는 글이 올라와서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이 글이다.



왜냐하면 부산은 튀김이 반드시 올라가는 명절 음식이자 제사 음식이었고, 그래서 이게 ‘국 룰’인 줄 알았다.


이 내용 자체는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내용은 전혀 없었는데 페이지 링크를 남자 친구에게 보내주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도중, 이 힘든 걸 명절마다 엄마가, 그리고 여자들이 다 한 걸 생각하니 빡친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러자 남자 친구가 말했다.


-그러게, 튀김은 떡볶이 먹을 때나 먹으면 되는데.




남자 친구를 만나면서 배우는 점 중에 하나는 ‘예민한 주제를 싸움으로 만들지 않는 능력’이다.


이 친구의 집은 원래부터 제사가 없는 집안이고 우리 집도 제사를 없앤 지 몇 년 되었다.


남자 친구는 제사 음식에 대한 생각 자체를 전혀 하지 않고 평생 살았을 것이다. 어차피 집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으니까. 그러니 커뮤니티에서 여자와 남자가 제사 음식 때문에 의견 충돌을 일으키고, 싸우고 헤어지고 그런 일련의 사건들이 그에겐 크게 와닿지는 않을 것이다. 나에게는 저 이야기들이 와닿았다. 나도 저런 상황을 겪고 헤어진 사람이니까.


나는 불과 얼마 전까지 제사를 모시던 장남 아들인 아버지와 그 제사를 거의 다 준비하던 맏며느리 어머니 사이에서, 그 불편한 분위기를 고스란히 겪고 자랐다. 이제 우리 집도 제사가 끝나긴 했지만 나로서는 제사 노동에 대한 주제가 나오면 제사를 준비하는 날은 묘하게 살벌해지는 집안 분위기, 그리고 부모님 눈치를 봐야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에 그냥 넘어가지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건 문제야.’라고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제사 음식 하는 거 별 거 아니라는 식의 글이나 전통인데 왜 안 하려고 하느냐 어쩌고 하는 글을 보면 스트레스 수치가 올라갔다. 나는 댓글을 안 쓰는 성향이라 그런 글에 굳이 댓글은 안 쓰지만 주변 사람들과 그에 대한 대화를 말을 하지 않고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이전에 만나던 남자 친구들 중에는 유교 전통인데 왜 이걸 문제라고 생각하냐, 고 말을 하던 남자 친구도 있었고, 우리 집도 제사 없고 너네 집도 제사 없앴다면서 이제 니 문제가 아니게 됐는데 문제 삼냐, 는 친구도 있었다. 일 년에 그거 뭐 몇 번 한다고 투정이냐, 하는 지적질도 들었었다.


글을 읽으며 받은 스트레스를, 대화하면서 낮추려고 했는데 더 스트레스받게 하는 대화다.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면, 일단 나에게는 그게 문제인 것이다. 물론 반대로 누군가가 어떤 일을 문제라고 생각하면, 나에게야 별로 대단한 문제가 아닌 것 같아도 그에게는 그게 문제일 것이고. 타인이 문제다, 아니다 판단해주길 바라는 게 아니다. 제발 대신 생각해줄 필요 없다. 그 당사자가 그게 문제라고 하면 문제인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도 안 했다. 그냥 나는 이게 문제라고 생각하겠다는 거다. 그리고 어떤 일을 문제라고 생각하면, 문제 해결에 대한 생각과 고민을 하게 되는 게 당연한 사람 심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떤 문제에 대해 ‘그게 왜 문제냐’고 되묻는 사람의 심리는 무슨 심리냐면, 내 마음을 이해할 생각이 없고, 내 마음을 헤아려볼 생각도 없고, 무엇보다 그걸 문제라는 생각하는 내 생각이 이 사람에겐 신경 쓰기 귀찮고 그럴 가치를 못 느낀다는 뜻이고, 중요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 이게 무슨 가까운 사람이냐, 남이지.


이미 오래전에 헤어진 마당에, 이 친구들의 말 어느 지점이 잘못되었는지 정확하게 체크하고 수정할 생각은 없다. 그냥 계속 저렇게 살게 내버려 둘 것이고, 그 옆자리에 나는 있지 않으면 될 뿐이다.




튀김은 떡볶이 먹을 때나 먹으면 되지.


내 남자 친구에게 제사 음식 같은 문제는 딱히 문제라기보다 그저 하나의 상황으로 보이는 그런 일일 것이다.


어릴 때는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면 나와 가까운 사람도 반드시 그걸 문제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살아보니 모두 각자 갖고 있는 경험은 다를 수밖에 없고 그 문제에 대한 문제 인식 깊이 역시 다를 것이다.

비유하자면 이 문제 인식에 대한 태도가 그에겐 1cm 정도 되는, 별로 대단하지 않은 문제라면 나에겐 10m짜리 문제랄까.


남자 친구든 아주 오래된 친구든, 타인은 나와 100% 동일한 생각을 할 수는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남자 친구든, 친구든, 나 역시 그들의 문제에 그가 느끼는 무게와 동일한 느낌으로 문제 인식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공감까지도 필요 없지만 최소한 대신 생각해주지 말자. 그게 왜 문제냐 고도 되묻지 말자.


그건 문제다, 아니다, 그건 문제가 아니다 하며 대신 판단질 해주려는 태도는 사실 오지랖일 뿐,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


우리는 결코 누군가의 솔로몬이 아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솔로몬이 필요한 게 아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대단한 걸 원해. 남들이 부러워하는 그런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