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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플갱어를 만나면 죽는 이유

아마도 둘 중 약한 쪽 한 명만 죽을 거야

by 시은

속설에 도플갱어를 만나면 죽는다는 말이 있다. 나는 그 말의 탄생 배경을 조금 알 것 같다.




작가 지망생 시절, 나의 도플갱어를 만난 적이 있다.


동갑이었고 외모나 분위기, 태도 같은 게 내가 봐도 흡사했는데 다만 성별이 남자였다. 주변에서 둘이 분위기도 비슷하고 어울린다며 연애 분위기를 조성해주려고 한 적도 있었는데 나 같은 경우 연애를 안 했을 뿐 남자를 안 만나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게 불안정한 작가 지망생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살고 있었다. 그걸 연애라고 부르긴 좀 그랬다. 내 촉에 의하면, 아마 그도 그랬을 것 같았다. 아니면 말고.


여하튼 도플갱어 같긴 하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왜 닮은 두 사람이 만나면 죽는다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어느 한쪽이 불행해지거나 무슨 대단한 일이 생기지도 않았다. 둘 사이에 아무 일도,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고 각자로서도 별 일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그냥 옛날 사람들이 심심해서 만든 말인가 보다, 싶었다.


글 쓰고 합평을 하고 난 뒤, 글 쓰는 사람들끼리 다 같이 술을 먹고 얘기하다 보면 그와 나는 동갑이다 보니, 같은 나이일 때 겪은 일들이 같은 게 많았다. 예를 들면 2002년도에 고3이어서 사회적 축제 분위기가 학습 분위기 조성에 도움을 주지 않아서 수능을 망쳤다, 뭐 이런 거.




이런저런 얘기 중 어릴 적에 받은 최고 성적 이야기가 나왔다. 전교 몇 등까지 해봤다, 그런 이야기 말이다.


생각해보면, 이게 30세에서 40세 안팎의 성인들이 술 먹다가 할 얘기인가 싶기도 한데 뭐 어쨌든 이런 얘기를 했다. 나는 공부를 눈에 띄게 잘한 적이 없었다. 다만 사고 안 치고, 존재감은 없지만 출석 잘하는 아이였다. 도플갱어 녀석이 자신이 제일 잘 받은 등수를 얘기했다. 초등학교 때 반에서 10등 안에 겨우 드는 정도였는데 5학년 때 전교에서 2등을 한 적이 있은 후, 부모님이 지속적으로 비싼 과외와 학원을 보내주셨다고 했다. 그 후로 안정적인 성적으로 유명한 대학에 들어갔고.


그의 말을 듣자, 잊고 있었는데 나도 딱 한번 초등학교 5학년 때 전교 2등을 했던 것이 기억났다. 나도 반에서 10등 안에 겨우 드는 정도였는데 무슨 일인지 5학년 때 전교 2등을 한 적이 있었다. 딱히 시험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고 학원을 다닌 것도 아니었는데 그런 성적을 받아서 나도 놀랐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그때 그 성적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 했었다는 것도 떠올랐다.


나는 정말 아무 존재감 없는 아이였는데 전교 2등을 한 것 덕분에 처음으로 전교생 아이들 사이에서 한동안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학원을 보내달라고 했다. 이루고 싶은 큰 꿈이 있거나 좋은 대학을 가서 좋은 직업을 갖겠다 이런 마음보다 계속, 시험을 잘 치고 싶었다. 아이들이 이런 식으로 은근히 내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계속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티 내긴 부끄럽지만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아마 주변에서 보내주는 관심에 살짝 도취된 것 같다. 진짜 그랬다. 관심에, 살짝 취했다. 그리고 계속 좀 취하고 싶었다.


엄마는 딱 잘라 거절하며, 집에 그럴 돈이 없다고 했다. 나는 몇 날 며칠을 졸랐고 결국 어느 날, 분노조절에 실패한 엄마가 이성을 잃고 그만하라고 내 머리를 수 차례 후려갈긴 이후, 학원 보내달라는 부탁을 그만두었다. 더럽고 치사해서, 더 보내달라고 하기 싫었다. 안 해, 공부.


최근에 와서야 생각해보니 그때가 1995년, IMF 2-3년 전이었다. 국제적 위기가 닥치기 전에 이미 어떤 집들은 경제적 상황이 악화되었을 거고 아마 우리 집도 그중에 하나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중학교 1, 2 학년 때 아빠가 1년 정도 백수였던 것이 기억난다. ‘가난’이라고 할 정도의 상황이 왔던 것 같지는 않지만 어린 나와 동생 모르게 비상 상황이었을 것이다. 외할머니가 나와 동생에게 각각 대학 갈 때 목걸이랑 반지 하라고 선물해주신 한 냥짜리 금도 그때 팔았다. 어쩌면 아빠의 회사는, 아빠를 내보내기 몇 달 전부터 회사 사정이 어쩌고 하며 임금을 떼먹었을지도 모르겠다. 진짜 회사 사정이 안 좋았을 수도 있겠지만.


도플갱어 녀석은 나와 동일한 시기를 경제적으로 큰 타격 없이 통과한 듯했다. 타격이 없을 만큼 집이 잘 살았던 걸까, 아니면 남자아이니까 괜찮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을 갖게 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그의 부모님인 사람들이 열악한 상황에서 쥐어짜서라도 뒷바라지를 해주신 걸까.


도플갱어를 만나면 한쪽이 죽는다는 그 말은, 진짜 죽는다는 게 아니라 나와 동일한 외면을 가진 누군가가, 상대적으로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너무도 쉽게, 풍족하게 누린 것을 알게 되면, 참기 힘든 질투와 짜증이 나서 죽고 싶어 진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만든 문학적 표현이 아닐까.


아마 둘 다 죽진 않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열 받은, 어느 한쪽만 죽고 싶은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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