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 그 피곤함에 대하여
오래 전에 지인으로부터 자기 친구 한 번 만나보라며 진짜 괜찮은 남자인데 오랫동안 여자친구를 못 만드는 것 같다며 소개를 받은 적이 있었다.
물론 주선자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진짜 괜찮은 남자’는 소개팅 자리까지 나올 필요 없이 그 사람 주변의 여자들이 그가 솔로로 ‘오래’ 있을 수 있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 전에, 그 당시의 나에 대해서 말해두자면, 지금 기준으로 새파랗게 어렸고, 제법 나이 있는 어른남자들의 허세에 좀 질려 있었다. 주변 지인, 또는 어른들을 통해 소개 받은 사람들은 나보다 ‘나이가 좀 많이 있었고’ 그 사람들 중에는 매력을 어필하는 과정에서 ‘재력’을 어필하는 경우가 꽤 많이 있었다.
그 정도가 또 어마어마한 재력은 아니었다. 다만 20대 중반 여자가 이루기엔 평범하게 월급받아서 모은다고 해도 그 나이 되면 모으기 힘든 정도의 재산이기는 했다.
대학 중퇴하고 21살부터 바로 일해서 20년간 일만 해서 모은 돈이 얼마다. 그래서 아파트가 있다.
부모님이 도와주신 것도 있지만 온전히 자기 소유인 집 한 채, 대출이 남아 있긴 하지만 전세집도 한 채가 있다, 같은.
휴. 나는 집도 없고, 차도 없는, 쥐뿔도 없는 20대 여자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게 너무 꼴보기가 싫었다. 그것들을 이루기 위해 고생하셨겠지만 30대 후반, 40대 초반 남자가 그걸 어필하는 게, 매력이라고 보이기보단 허세라고 보였다.
지금은 그 모습이 대단한 것도 맞고 지난 날의 고생을 지금의 연애, 또는 결혼으로 보상받고 싶어하는 거라는 걸 이해하지만 그래도 이성적인 매력의 카테고리에 넣어줄 수는 없을 것 같다. ‘아, 젊은 시절에 고생하셨구나’ 하는 리스펙을 보여줄 수는 있어도, 여전히 그게 남여 사이 애정으로 변화할 수 있는 그런 요소는 되지 않는다.
그런데 지인으로부터 소개 받은 그 사람은 허세가 없었다. 외모도 직업도 그저 그랬지만,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부분에 있어서 마음이 열렸던 것 같다. 대학 졸업을 하고 이런 저런 일을 했고, 높은 월급을 받는 직업은 아니지만, 언제까지 이 일을 하고, 한 10년 후 어떤 일을 하고 싶다 같은, 대단하진 않지만 단단한 계획 같은 게 있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크게 남자로서 매력을 어필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도 지금 생각해보니 그를 좋게 본 이유 중 하나 였던 것 같다.
한번으로는 사람 모르니 한번만 더 만나보자, 너를 꼭 만나고 싶다, 같은 분위기가 없어서 오히려 좋았다. 담담하게, 담백하게 오래 만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만나게 되었다.
그는 마음을 담은 손편지를 참 자주 써줬다. 그것도 2-3장씩 되는 편지를. 지금 같은 시대에 손편지라니 뭔가 몽글몽글한 느낌도 들고 좋았던 것 같다. 딱, 2개월 까지만 괜찮았다.
손편지는 거의 만날 때마다 주는 데 전화건 메시지건 연락이 잘 안 되었다. 하루에 연락이 되는 때가 3회 정도였다. 출근길, 점심시간, 퇴근 후. 오후에 몇 번 더 해줘서 5회 정도인 날도 있긴 했다.
내가 연락 문제로 불만을 얘기하자, 옛날 사람들은 휴대폰 없이도 다들 잘 사랑하고 가족 이루고 살았다는 얘기를 했다.
얘가 지금 뭐라는 거야, 라는 생각과 함께 애정이 팍 식었다.
그 다툼 이후 자신이 왜 연락을 자주 할 수 없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또 손편지로 구구절절 써서 준 적도 있다. 별 시답지도 않은 이유였다.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핸드폰을 볼 수 없다는 게 주 내용이었는데, 직업 특성상 휴대폰을 계속 봐야 하는 직업이었으므로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나라고, 직장에서 할 일이 없고 시간이 남아 돌아서 연락한 게 아니었다.
결국 3개월을 못 채우고 헤어지자고 하자, 또 그놈의 손편지를 써서 이 편지를 꼼꼼히 읽고 나서 다시 한번 생각해달라고 했다.
평소보다 훨씬 긴 편지였다. 7-8장 정도 되는 편지에는 구구절절한 자신의 어린 시절의 성장기를 비롯해 자신이 왜 성공에 목마른지와, 일을 미친듯이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빼곡하게 담겨 있었다. 읽으면서 어떤 부분에서는 눈물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결론은, 그러니 앞으로도 연락을 자주 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여유 없는 자신이라도 조금만 이해하고 보듬어 달라는 내용이었다. 지금 쓰고 보니 또 빡치네. 진짜 저 표현 그대로 편지에 있었다. ‘부족한 나지만 그냥 좀 계속해서 보듬어주고 이해해 주면 안 되겠냐’고. ‘그냥, 좀 계속해서?’ 하, 나 참.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편지를 덮고 눈물을 닦고 곰곰히 생각을 했다.
내가 앞으로 이 문제를 가지고 문제 제기를 안 할 수 있을 정도로 이 남자를 사랑하는가. 그게 아니라면 이 문제만 빼면 이 남자는 괜찮은 남자인가.
내 대답은 둘 다 아니오, 였다.
첫번째로, 연락 문제는 내가 어떤 남자를 만난대도, 세계 절세 미남, 세계 대부호를 만난대도 무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 정도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공유, 유아인이라 쳐도 연락 문제로 속 끓이면서까지는 안 만난다. 이 남자 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도 이딴 식으로 굴면 사랑해줄 생각이 없다,가 내 결론이었다.
두번째로, 이 문제만 빼면 이 남자는 괜찮은가. 연애 고민에서 ‘이 문제만 빼면 정말 괜찮은 남자에요.’ 하는 여자들에게 항상 해줘야 하는 충고는 이것이다. 아니 그걸 왜 빼요..
하지만 어떤 답이 나올까 싶어서 한번 고민해봤다. 우선 이 남자에게서 연락 문제만 빼면 괜찮은가. 내 대답은 그것도 아니오, 였다. 이미 말한 것처럼 학벌도 그저 그랬고, 직업도 그저 그랬고, 월급도 나보다 살짝 높긴 했지만 별 차이가 안 났다. 그의 담백함에 눈감아줬을 뿐이었다.
결국 내 대답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오, 아니오, 아니오’ 였다.
나는 그에게 헤어지자고 말했고, 그는 나에게 그렇게까지 진심을 보여줬는데도 답변이 이별일 수가 있냐고 자신은 납득을 못 하겠다고 하더니 결국 며칠 뒤 자신이 줬던 편지를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되돌려 달라고 했다. 그건 자신의 최대한이자 모든 진심이었던 만큼 내가 가질 자격이 없다고 하면서.
나는 그의 ‘진정성과 진심’을 되돌려주면서 ‘진정성’이 이렇게 피곤한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 타인의 배려와 인내심을 쥐어짜내면서까지 인정받길
원하는 요구하는 진정성이란 그 진정성을 받는 입장에서 참 괴로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