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생각보다 어려워요
나는 출퇴근하면서 네이트 판을 종종 본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공간이니만큼 갖가지 글이 올라오는, 그 중 심각한 고민으로 분류되는 카테고리에 올라오는 글 중에는 주작으로 의심을 받는 글들도 꽤 많다.
어떤 사람들은 ‘후기’로 이후 상황을 추가 작성하면서 주작을 의심하는 사람들을 향해 왜 이런 주작글을 쓰겠느냐고 너무 답답해서 올린 글이라고 푸념의 내용을 덧붙인다.
당연히 나 역시 그 곳의 모든 글을 믿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주작이라고 의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익명게시판에 그런 글을 쓰는 ‘어떤 불합리한 상황의 나’에게는 ‘그 어떤 불합리한 상황’ 의 모든 디테일과 그 일이 불쾌할 수 밖에 없는 개인적인, 어쩌면 어린 시절의 서사까지도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있을 수 밖에 없다. 우리 모두는 각자 고유한 서사를 가질 수 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자기 개인의 서사 및 그 모든 디테일을 다 말하면서까지, 그러니까 주변 사람들이 봤을 때 ‘나’임을 짐작하게 할 정도까지는 쓸 수 없고, 그러다 보니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하는데, 사실은 절대 말할 수 없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정보일 때가 아주 많고, 그런 중요한 정보가 빠진 글이니만큼 완벽한 타인인, 그저 인터넷을 이용하는 한 사람으로서는 그 글의, 아니 그 사람의 전체적인 상황의 맥락까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공감을 받으려고 쓴 글에 의심이 붙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글쓴이의 모든 맥락을 결코 알 수 없다는 것과, 아무리 절박해서 쓴 글이라고 해도 공감을 위해 모든 맥락을 까발려 자신의 내면과 상황을 낱낱이 보여줄 수는 없다는 것.
하지만 주작의 의심을 받으면서도, 의심을 받을 각오를 하면서도 우당탕탕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고 나면 실제 상황은 정리가 되지 않더라도, 그 일에 대한 내 마음이 조금은 정리가 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원래는 아무 대책이 없던 것 같은 상황에서, 어떤 대책(그게 좋은 것이든, 그저 그런 것이든)이 보인다. 그것만으로도 해볼 만한 무언가가 생긴 것 같아 괜찮아지는 것이다.
그러니, 우당탕탕 하면서도 다들 글을 쓰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