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란 무엇인가
엉망진창으로 쌓인 메모들이 있어서 아무 노트에라도 쓰자, 하고 찾다 보니 이슬아의 <부지런한 사랑> 사은품 노트가 보였다.
그녀의 글도 무척 좋지만 그녀가 데뷔한 방식이 많은 작가들의 부러움을 사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도 자신을 찾아주지 않아, 스스로 데뷔해버린 작가. 그런데 그러고 나니 기다렸다는 듯이 사람들의 (엄청난) 사랑을 받게 되어버린 작가.
<부지런한 사랑>을 사면 사은품으로 ‘부지런한 글쓰기를 위한 글감 노트’라는 것을 사은품으로 줬다. 지금은 재고가 없다(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여하튼 그 노트가 갖고 싶어서 부랴부랴 샀다. 지금 봐도 예쁘다.
책은 좋았지만 아직도 끝까지 읽지는 못했으며 그 와중에 내 글을 써야 해서 이것저것 써놓은 글들을 한데 어디에라도 모아두려고 쓸만한 노트를 찾다가 이 노트에 내가 쓴 첫 글을 봤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바로 쓰느라 반말, 존댓말이 엉켜있어 읽기 좋게 조금 수정해서 옮기자면 이렇다.
그거, 하나 반짝인다고 끝이 아니다.
아이디어 하나 반짝인다고 해서 좋은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때는 반짝이는 영감이 떠오르면 그게 ‘재능’인 줄 알았다. 기가 막힌 아이디어, 이런 건 아마 나만 떠올릴 수 있을 거야, 라는 생각에 두근두근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아이디어는 그저 가능성을 지닌 아주 작은 씨앗, 딱 그 정도뿐이라는 것이다. 씨앗이 있고 없고는 물론 큰 차이지만 씨앗 하나 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무언가 대단한 걸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아직 아무것도 아닌 씨앗일 뿐이다.
그 조그만 씨앗에 내가 물도 줘야 하고, 햇볕도 쬐어줘야 하고, 시들시들하면 영양제도 줘야 한다. 아무 영양제나 주면 되는 것이 아니다. 비싸다고 꼭 좋은 영양제도 아니다. 이 씨앗에 적합한, 너무 과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그런 영양제를 줘야 한다. 그러니 그 씨앗에 필요한 영양분이 무엇인지 알려면 계속 관심을 가지고 돌봐줘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정성과 애정을 쏟은 그 아이디어, 즉 그 씨앗이 꼭 ‘만족할 만한 형태의 이야기’로 완성이 되는 것은 아니다.
또 ‘나 스스로 만족할 만하게 완성된 이야기’가 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세상에 내보였을 때 인정을 받느냐면, 사실 그것도 확답할 수 없다.
어떤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다양하면서도, 본질적으로는 하나다.
세상에는 글을 쓰는 일보다 더 끌리고 재미있는 일도 많지만 글을 씀으로써, 내 생각과 태도를 정교하게 매만지게 되고, 그렇게 글을 통해 내 생각을 매만지고 다듬을수록 나는 ‘내가 원하는 나’가 되어가고 있다, 는 느낌을 준다.
내가 원하는 나와, 내가 원하지 않는 나는 겉으로 별 차이가 없다. 남들 눈에는 티끌만큼도 다르지 않고 아예 똑같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알잖아요. 내가 원한 나와, 내가 원하지 않는 나의 극명한 차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