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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듯 달라지지 않은 세계

나는솔로16기를 보다가

by 시은

어제 나는솔로16기 방송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그날 오후 내가 썼던 글 속의 남자와 여자의 고민과 소름끼치게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제 쓴 글의 주요 주제는, 현실적인 상황 때문에 헤어져야만 하는 연인 중 남자가 여자에게 한번만 자신을 따라와 주면 안 되냐고, 자신에게 한번만 기회를 달라고 매달리는 내용이었다.


남자는 일과 여러 문제 때문에 중국에 돌아가야 하고 여자는 가족과 일 때문에 한국(정확히는 조선. 시대적배경이 17세기 병자호란 직후이다)에 머물러야 하는 상황.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절대적인 양보(라고 쓰지만 희생이라 읽는다)를 하지 않는다면 두 사람은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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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규모가 남자가 더 컸기에 남자가 훨씬 많이 벌 것이 예상되는 상황 +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일이 있는 사람인 상황이었지만 남자는 계속해서 자신을 따라 중국으로 떠나자고 몰아붙이고, 여자는 갈등하지만 남자에게 자신을 위해 남으라고 하진 않는다.


미디어는 가끔씩 사랑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처럼 보여주지만, 사랑은 일적인 부분에서 거의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다.





나는솔로 16기 상철은 자신이 마음에 드는 여성인 영숙에게 계속해서 마음을 표현하지만 영숙은 상철이 어차피 미국으로 떠날 사람이라며 마음을 주지 않는다. 상철은 무신경하게 말한다. “남자 따라와야지.”

영숙은 자신이 하는 일이 한국에서 진행하고 있는 일이라 떠날 수 없다며 자신은 미국 가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자기 아무것도 안 하는, 그냥 살림하는 여자 만들지 말라면서.

자신의 사고방식이 조선시대적, 그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가 조선시대적이라는 말을 수치심 없이, 죄책감 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의 무지가 나는 불쾌하다.


지식의 저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역사를 공부하다보니 알게 된 사실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선시대 여성은 그냥 남성들의 소유물이었다. 신분의 높낮이는 크게 상관없었다. 신분이 높아도 함부로 다뤄지는 양반 아녀자도 수없이 많았으니까. 소유자의 인성에 따라 귀하게 대하는 사람이 있고, 함부로 대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함부로’의 영역에는, 살인과 폭행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말했다시피 소유물이었기에, 물건의 지위밖에 갖지 못했기 때문에, 여성의 살인과 폭행에도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게, 조선시대적 마인드다.



나는솔로 상철, 영숙의 상황을 놓고 보자면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위해 자신의 거주환경을 완전히 떠나는 것은, 그저 일만 그만두는 것이 아니다.


일을 그만두고, 만나던 사람들과 더 이상 만나지 못하고, 가족과 멀어지게 된다. 게다가 영숙이 (아주 만약에) 상철을 위해 미국으로 간다고 하면 언어 장벽과도 마주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을 자신이 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해도 통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간다는 건 상당한 부담이 되는 일이다.


나는 이런 선택이 분명 희생의 영역에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배려가 아니라.


나는 무해해보이는 상철 속에 든 이런 무례함이, 사람들에게 푸근하고 친근하게 비춰지는 것이 불편하다.


그는 계속해서 영숙에게 원래 요리를 안 하던 사람이라도 사랑하면 매일 요리를 해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묻고, 영숙은 1년에 한번? 이라고 응수한다. 상철님은 식사하고 뭐 하실 건데요? 라는 그녀의 질문에 상철이

대답한다.



더 뭐라, 글을 쓰고 싶지가 않다.


바깥에서 돈을 아무리 많이 벌건, 집 안에서 1인분 몫을 전혀 못 하는 사람이 결혼을 해도 괜찮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는 걸까. 나는 이런 사회문화적 감싸안음이 싫다. 불편하다.


집밖에서 유능한 건 유능한 거고, 집안에서도 자신의 몫(1인분만큼의 집안일)을 할 수 있는 사람만 결혼할 자격이 있는 법이라도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제발.


ps. 아래의 글은 서치하다가 찾은 글.


https://v.daum.net/v/5c91af39ed94d200016d6c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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