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비일상의 공생관계
얼마 전에 '위대한 개츠비' 독서모임을 다녀왔다. 6년 전쯤에 문학동네에서 하는 시간여행이라는 독서모임에서도 한 적이 있고 내가 만든 독서모임에서도 3년 전쯤에 한 적이 있는 책이다. 인스타그램에서 신촌 어느 카페에서 위대한 개츠비 독서모임을 한다길래 또 한 번 갔다 왔다.
다들 문장이 어떠니, 원서로 읽었을 때 완벽한 운율이 어떠니, 재즈 시대의 상징이 어떠니 얘기를 했지만, 내가 보기에 위대한 개츠비를 한 줄로 정리하면, 이건 개츠비가 이룩한 완벽한 '쌍년 판타지'라고 생각한다. 이 정도까지 한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는 없으므로.
예전에 승리가 개츠비를 영 앤 리치의 판타지의 최정점으로 해석해서 따라 하는 것을 보며 그가 위대한 개츠비를 안 읽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위대한 개츠비는 개츠비의 판타스틱한 성공 스토리가 아니다.
(이 스토리의 주인공은 사실 데이지다. 원래 결말에 가장 좋은 열매를 손에 쥔 자가 주인공이다.)
개츠비의 입장에서, 온갖 불법적인 경로를 통해서라도 반드시 부를 얻어야만 했던 이유는 리치해지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데이지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였다. 데이지는 돈 없는 남자를 절대 사랑할 수 없는 여자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데이지의 입장에서, 사랑보다는 돈을 좇아 결혼했는데 몇 년 안 돼서 돈 많은 남편이 바람나서 결혼생활이 불행하다고 느끼지만 이목 때문에 이혼은 못 하고 있는데 결혼 전, 자신이 돈 때문에 차 버린 남자가 말도 안 되는 부자가 되어서 나타나서는 괘씸한 남편을 한동안 똥줄 타게 하며 한여름 밤의 꿈같은 로맨스를 선물한다.
이 판타지의 정점은 데이지가 남편과 불륜을 저지른 여자를 그 여자인 줄도 모르고 차로 치어 죽였는데(이 지점에서 나는 피츠제럴드가 천재 같다. 다른 누구도 아닌, 가장 눈엣가시인 사람을 의도치 않으면서도, 사고로 직접 죽이게 만들어줬다) 심지어 그 혐의를 개츠비가 뒤집어쓰고 죽는다. 그리고 다시 데이지는 원래 자기의 결혼 생활로 돌아간다.
데이지의 쌍년 판타지는 신데렐라 판타지보다 여주인공에게 훨씬 많은 아량을 베풀고 있다. 신데렐라는 노력하지만, 데이지는 노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원하는 것을 다 얻는다. 데이지도 마음고생은 좀 하지만 그건 그거고, 노력을 안 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신데렐라는 생존을 위해 아주 열심히 살아야 하는데 그 힘든 와중에 (짜증이 나더라도) 착하게 살아야 하고, 그 끝에 가서야 겨우 뭔가를 쟁취하지만, 데이지는 살면서 별다른 노력도 안 하고, 대놓고 속물인데 아무도 비난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따라 온갖 감정 기복을 다 부리며, 선하지도 않고 훗날에도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고, 사랑과 복수를 손쉽게 쟁취하고, 그 과정에 범죄의 범주에 속하는 행동도 있었지만 아무런 사회적 페널티 없이 자기 갈 길을 간다.
여기까지 썼는데 너무 부럽다. 이런 장르를 써본 적은 없지만 써보고 싶(었)다.
앞으로 사회가 아무리 발전해도 판타지가 일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판타지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판타지는 일상이 아니기 때문에 눈을 뗄 수 없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다.
그렇게 눈을 뗄 수 없는 비일상적인 판타지를 보면서 일시적이나마 우리는 일상을 잊는다. 일상을 잊는다는 건 쉽지 않고 결코 영원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일상을 잠시나마 잊어야 다시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으니까.
판타지는 그 잠시나마의 일상을 잊게 해서, 그 이후의 일상을 응원하고 보호하기 위해서, 그러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니 일상이 사라지지 않는 한 판타지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