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용돈 주머니

작은 주머니만 보면 미소짓게 되는 이유

by 뉴새로미

어렸을 적 부모님이 자영업을 하셔서, 언니와 나를 봐줄 사람이 없었다. 다행히 외할머니께서 봐주실 상황이 되셔서 엄마는 나와 언니를 할머니댁인 순천에 두고 인천에서 아빠와 함께 장사를 하셨다. 엄마가 언니와 나를 순천에 두고 가는 날, 나에게는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언니에게는 용돈을 쥐어주며 4살, 6살 아직 엄마의 손길이 너무나도 필요한 우리를 그렇게 마트 앞에 할머니와 남겨둔 채로 버스 뒷칸에 앉아 연신 손으로 인사를 했다. 그날, 나는 엄마가 가든지 말든지 상관도안한 채, 엄마에게서 받아 든 스케치북을 땅바닥에 펼쳐두고 크레파스로 마구 색칠을 했다. 이것도 기억이 거의 없어 할머니와 엄마에게 전해 들은 일이지만... 언니는 흐르는 눈물을 참으로 입을 꾹 닫고 엄마에게 손인사를 했다.


엄마 아빠의 부재덕에 언니와 나는 부모의 사랑대신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이 사랑의 깊이나 크기를 재보라고 하면, 아직 발견되지 않은 행성이 수두룩할 우주의 크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할머니의 사랑은 유별났다.


"또띠" "멍뭉생이" "내 새끼"


여러 별명으로 불렸던 나는, 35살이 먹은 지금도 온 가족이 할머니께서 지어주신 어릴 적 별명인 "또띠"로 불리고 있다. 왜 또띠냐고 물으신다면, 얼굴 생김새가 또띠처럼 생겨서 또띠라고 불리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대체 할머니의 눈에 보이는 또띠는 대체 어떻게 생긴 것일까? 아직도 의문이다.


방학이면 할머니가 우리를 데리고 선암사로, 보성녹차밭으로 안 데려가는 곳이 없을 정도로 여기저기 구경을 시켜주셨다. 덕분에 할머니와 보내는 봄은 향긋한 꽃놀이, 여름은 시원한 계곡과 수박이 그리고 수영 후 나른해진 몸으로 타고 가는 마을버스, 가을은 선암사에서 보내는 낙엽들이 바람에 쓸리는 소리가 가득한 산, 겨울은 할머니 집에서 따뜻하게 보일러 틀어놓고 귤이랑 고구마를 까먹으며 오손도손 이야기하던 게 생각이 난다. 너무나도 사소한 일들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만큼 보물 같던 순간들도 없다. 할머니와의 추억들이, 내 기억의 방에 아주 가득, 빈틈없이 차 있는 것 같아서 어쩔 땐 벅차고, 할머니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났다가 웃음이 났다가 한다.


부모님의 사업이 대 성공을 하게 되어, 다시 언니와 나는 부모님의 곁인 인천으로 가게 되었다. 방학마다 할머니댁에 놀러 가면, 할머니는 여느 할머니들처럼 방학기간 내내 음식으로 우리를 사육했고, 늘 그랬던 것처럼 할머니와 즐겨 가던 곳들에 우리를 데리고 가시곤 하셨다. 그러다가 방학이 끝나고 우리가 고속버스를 타고 가는 날만 되면, 양손에 현금을 한 다발씩 들고 우리 주머니에 꽂아주기 바쁘셨는데. 그때마다 우리는 절대 안 받으려 할머니와 몸싸움을 하곤 했다.


늘 현명하고 지혜롭던 우리 할머니. 매번 우리가 할머니가 주시는 돈을 안 받거나, 그대로 할머니댁 티브이 위에 두고 가거나 하니, 어느 날은 머리를 쓰셨다. 지금 생각해도 우리 할머니, 너무 귀여우시다. 얼마나 손주들에게 주고 싶으셨으면 그렇게 까지 하셨을까 싶고, 그 마음이 너무 애틋하다,


그때는 내가 캐나다 유학 중이었고, 고등학생이었다. 할머니가 너무 뵙고 싶어 방학을 하자마자 한국엘 들어가 순천 가는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3일 정도 할머니댁에 머물다가 다시 인천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우리 할머니 냄새 3일 동안 할머니 옆에 꼭 붙어서, 그 그립던 할머니 향 맡으며 온갖 스트레스를 날려버렸다. 남들은 피톤치드향으로 힐링한다고 하는데 나는 우리 할머니 냄새, 우리 엄마냄새가 직빵이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고속버스에 올라 할머니께 양손을 흔들 어제 끼며 인사했다. 손이 떨어질 정도로. 그렇게 오버하지 않으면 흐르는 내 눈물이 할머니께 보여 속상하실까 봐. 그런데 할머니가 창문을 열어보라더니, 하시는 말씀이


"또띠, 할미가 주머니에 용돈 좀 넣어 놓았으니까. 인천 가서 맛있는 거 사 묵고, 캐나다 들어갈 때 약 같은 거 야무지게 사가라. 할미가 돈이 없어서 그만큼 밖에 못줘서 영 맴이 안 좋다..."


할머니 말을 듣자마자 코트 주머니를 뒤졌는데. 있는지도 몰랐던 안주머니가 묵직했다. 빨리 빼서 할머니한테 그냥 줘버리려고 구멍을 찾았는데.... 주머니 입구가 삐뚤빼뚤 바느질이 되어있었다..... 그것도 겹겹이 여러 번.


내가 행여, 돈을 빼서 할머니한테 줘버리거나. 버스 타기 전에 할머니댁에서 발견해서 놓고 올까, 아예 빼버리지 못하게 돈을 그렇게 내 코트 안 작은 주머니에 숨겨놓은 것이었다.

허둥지둥 돈을 빼내려고 난리 치는 동안 버스는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건 버스가 인천에 도착해도 못빼낼것같은 상황이라 포기하고 할머니께 감사하다고 추우니 빨리 들어가시라고 손짓했다.


어찌 이런 사랑을, 벅차게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할머니가 버스역에서 집으로 홀로 돌아갔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프고, 또 할머니가 준 이 돈의 가치가 얼마나 감사하고 대단한지 생각하니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나는 참, 사랑받고 자란 사람이다.


집에 도착해 가위로 할머니가 꿰매 놓은 주머니를 살살 틑었다. 그 작은 주머니에 가득 차 있는 현금.

하나, 둘, 셋, 넷, 스물, 서른하나, 쉰,...

총 만 원짜리 70장이 동그랗게 말려 고무줄로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그 돈을 다시 고무줄로 말아, 한국에 머무는 동안 한동안 쓰지 못하고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내, 왠지 모를 눈물이 난다. 할머니가 너무나도 보고 싶다.



내 시간은 흐르지만, 할머니의 시간은 사라져 가는 것 같다.

언제까지 내가 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오늘처럼 전화통화로 사랑한다 전할 수 있을까.

서른다섯이 된 지금도 할머니는 용돈을 늘 잊지 않으신다, 꼬깃꼬깃 내 옷 구석구석 주머니마다 돈을 넣어주신다.

가끔 빨래를 하다가 주머니에서 생각지도 못한 돈이 발견되면 무척 기쁘다가도 나는 늘 할머니 생각을 한다.


사실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빨래를 하다가 뒷주머니에서 $5 짜리 지폐가 나왔다.

"오예, 꽁돈이다" 사실 꽁돈이라기 보단, 내가 언젠가 넣어두고 잊어버렸을 돈인데. 갑자기 발견하니 돈을 주운 것 마냥 기뻤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나온 그 돈 때문에 손녀 바라기 우리 할머니가 생각났다.

우리 할머니는 그거 아실까, 할머니가 하도 주머니마다 돈을 주셔서

서른 넘어서는 최대한 주머니 없는 옷을 입고 다녔다는 거.


호주머니, 옷에 달린 작은 주머니에 우연히 동전하나,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주머니에 들어있는걸 발견할때면

어김없이 할머니가 생각나,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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