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 선물

열심히 일한 땀의 대가를 남기고 간 친구

by 뉴새로미

호주에서 자영업을 하시는 엄마를 돕고 있는데, 미국에서 회사를 다닐 때는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을 만났었다. 디자인회사를 다녔다 보니, 모두가 디자인계열이고 졸업한 학교도 디자이너가 되기까지의 과정도 큰 틀을 벗어나지 않고 비슷비슷했다. 아무래도 모두 비슷한 경험, 비슷한 학교에서 졸업하고 개개인의 목표도 이상하게 원하는 게 비슷하고 해서 인간관계가 무료했다고 해야 하나? 나는 개인적으로 사람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또 그 배움을 발판 삼아 발전시키는 사람인데, 뉴욕에서는 사람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는 건 크게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엄마 가게를 돕다 보니 다양한 전공자들, 나이차의 갭도 굉장히 크고, 각자 목표도 다양하며 또 경험해 온 일들도 너무 색다른 것들이 많아 하루하루 그 친구들을 알아갈수록 너무 재미있고 배울 점도 많았다. 카지노를 전공한 친구도 있고, 토목학 전공을 한 친구, 한국에서 소위 말해 스카이대학을 다니다가 지겨워져서 호주로 워홀을 온 친구들, 사육사, 부모님이 부유해 그냥 경험 삼아 일을 하는 친구 등, 정말 너무나도 다양한 직업을 가졌거나 특이한 경험이 있는 친구들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비자 상황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우리 가게에서는 가장 오래 일한 사람이 10년도 넘게 홀에서 일한 87년생 언니가 있고, 그다음으로는 6년, 5년 함께한 96년생, 89년생 동생과 언니가 있는데, 다른 무엇보다도 가게를 우선으로 생각해 주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 외의 직원들은 워킹홀리데이로 온 친구들이고, 보통 1년 혹은 조금 넘게 지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비자를 학생비자로 돌려 오래 호주에 머무는 친구들이 있다. 일하다 보면 이런 애도 있구나, 저런 애도 있구나 신기하다라고 생각을 자주 하게 되는데, 예를 들어 모든 개인정보를 거짓으로 주고 몇 주 일하다가 금고에 있는 돈을 모조리 훔쳐 날라버리는 애, 7개월 넘게 일하다가 아무런 말 없이 종적을 감춰버리는 애, 가게 물건을 휴지, 빨대, 음료수 등등 몰래 훔쳐가는 애, 입에 욕을 달고 살며 심지어 손님한테도 욕을 하는 애, 무슨 말만 하면 우는 애... 등등 평생 이런 사람들을 한두 번 볼까 말까 할 텐데 엄마 일을 도와보니, 너무 자주 만나 다음에는 어떤 친구가 들어올까 기대감과 설렘에 엉덩이가 들썩일 정도다.


3년 전 요맘때, 이름이 외자인 특이한 이름을 가진 구라는 친구가 가게에 들어왔다. 훤칠한 키에 준수한 외모를 가진 96년생. 일을 오자마자 빠릿빠릿하게 잘해서, 바로 매니저 아래로 올라갈 정도였다. 차분하고, 공손하고 친절하며 뭐든지 열심히 하는 그런 사람. 시간이 갈수록 오래 일한 사람들보다도 일 능력이 이상이어서, 구가 가게에 없는 날은 불안할 정도까지 돼버렸었다. 일을 잘하니, 편애라는 걸 하게 만드는 친구였다. 너무 고맙고,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날 정도로 힘든 날들에 늘 함께 해줬던 직원 동생. 표정이 없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로봇인가? 싶다가도. 내가 많이 아파 가게를 못 나오게 되면 "가게 걱정 말고 좀 푹 쉬세요. 스트레스받아서 그런 거예요"라고 해주던 그런 친구였다. 그런 구가, 2년을 채우고 한국을 돌아갔다. 마지막에 가게에서 만난 친구랑 시작한 연애가 조금 힘들어졌는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인식당 홀에서 본인 이름이 안 좋게 언급되는걸 눈치채고, 남에게 싫은 소리 잘 못하고, 힘든 건 본인이 짊어지는 묵직한 성격의 구가, 소문의 억울함에 한국행을 택했다. 구의 한국행에 서운함이 이루 말로 할 수없고, 사실이 아닌 내용으로 애들이 입소문을 내는 것도 원망스러웠다.


구가 한국 가는 게 결정된 날부터 2주 동안, 일하며 구의 눈을 마주칠 때마다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아서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일했다. 그만큼 참 구를 예뻐하고, 아꼈는데 당장 구가 함께 일을 안 한다 생각하니, 여태 고생해 온 지난 2년이 스쳐 지나가면서 고마운 마음에 마음이 벅차 어떻게도 이 마음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 구가 한국에 가기 며칠 전 먹어보고 싶다던 하이디라오를 다른 직원동생을 껴서 셋이 갔다. 마치 아기새가 입에 지렁이를 연신 넣어주는 엄마새처럼, 여름방학 때마다 음식으로 사육을 하던 할머니처럼 배부른 구에게 계속 음식을 권하게 됐다. 먹는 것만 봐도 뿌듯해서. 고마움을 음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구의 배를 터트릴 수도 있었을 거다. 이런저런 이야기하며 앞으로 한국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이야기도 한국이 아니다 싶으면 언제든지 다시 호주로 빠꾸! 하라고 외쳤다.

이구는 한국에 가서 젤라또가게를 하고 싶다고 했다. 아마 구는, 성공을 하고도 남을 녀석이라 언젠가 한국에 가게 되면 사장이 되어있을 모습을 꼭 보고 싶다.

그렇게 2주는 바쁜 일상 속에 빠르게 지나갔고, 구가 떠나기 마지막날 마지막으로 구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처음 구를 만나 인터뷰를 하던 날이 스쳐 지나가면서, 구에게 연신 " 고마웠어 이구! 누나 눈물 날 거 같으니까 한국 가면 연락하고, 한국 힘들면 다시 언제든지 돌아와~ 알았지?" 하고 바쁜 척, 이미 반들반들하게 닦여있는 카운터 앞 키보드를 닦아댔다. 구가 쭈뼛쭈뼛하더니, 엄마와 내 선물가방을 하나씩 줬고.

"누나 한번 안아봐요~" 하면서 잘 지내라면서 마지막인사를 했다. 구가 가게를 걸어 나가는 걸 안 보는 척 보며,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말 이렇게까지 정이 들 수 있구나 하며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해, 카운터 뒤에 쭈그려 앉아 많이도 울었다.


수줍게 건넨 선물가방 안에는, 삐뚤빼뚤 쓴 편지와. 명품 선글라스, 그리고 명품 귀걸이가 들어있었다. 비싼 브랜드라 $2000불은 줬을 건데. 그 $2000불을 벌기 위해, 얼마나 많이 걷고, 뜨거운 걸 옮기고, 허리를 숙여가며 바닥을 쓸었을 건데. 마지막이라고 이렇게 피땀 흘려 번 돈으로 선물을 쥐어주고 가는 게 너무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너무 고맙기도 해서..... 선물을 뜯어보자마자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이런 걸"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명품을 선물 받아 좋은 것보다, 그냥 이 선물의 가치가 명품 이상이라서 감히, 가치를 따질 수도 없는 거라서 격한 마음에 눈물이 났다. 이구 때문에 참 많이도 울었다, 고마운 녀석.


귀걸이도, 선글라스도 이구가 떠난 지 6개월이나 됐지만, 아직 착용해 보지 못했다. 보물같이 여겨지는 이것들을, 닳게 하고 싶지가 않다랄까. 나중에 한국에 가게 되면, 해가 쨍쨍한 여름날 이구의 젤라또집에 가서 이구가 선물해 준 보물, 선글라스랑 예쁜 셀린느 귀걸이를 하고


"이구 사장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많이 보고 싶었어요~" 하고 문을 박차고 들어가고 싶다.

아마, 이구네 가게에서 먹게 될 젤라토가 내 인생 젤라또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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