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빨간색 손거울

거울이 원망스럽긴 처음이야

by 뉴새로미

외할머니 댁에 가면 늘 티브이옆 벽에 커다란 빨간색 손거울 끝에 고무줄이 달린 채로, 거꾸로 걸려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도 있었고, 중학교 유학 중에 놀러 가도 그 자리에 있었고, 그냥 늘 그 자리에 붙박이처럼 그 거울이 있었다. 할머니께 꽤나 소중한 물건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할머니가 옛 물건을 버리지 못하시는 편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갔다. 궁금해도 굳이 물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어느 날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연히 그 거울의 전설에 대해 듣게 되었다. 사실 엄마와 아빠는 엄마가 19살 때 병원에서 만나셨다. 7살의 나이차이가 났지만 할머니의 열렬한 지지로 결혼이 성사되었다. 엄마는 18살에 근육암진단을 받고 순천의 한 병원에 입원을 한 상태였다. 다리를 절단할지도 모른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를 듣고는 온 가족의 하늘이 무너졌었다고 했다. 외갓집은 종갓집으로 가족애가 대단한 집이었고, 전교 1등에 공부도 잘하고, 똑 부러지며 얼굴도 예뻐 모든 남학생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엄마의 병은, 가족뿐만이 아니라 엄마를 사모하던 친구들과 또 엄마의 가까운 친구들에도 충격을 가져다줬었다고 한다. 그때 그 시절 엄마의 사진을 내가 못 본 것이 아닌데, 자칭 꽃미녀였다고 하는 엄마의 말에 그냥 웃어넘겼다.


엄마는 근육암, 아빠는 옆옆 병실의 담낭결석으로 입원한 촌티 나는 아저씨. 그 당시 아빠가 엄마 병실에 과일도 가져다주고, 과자도 가져다주며 엄청 친한 척을 해서 불편했다고 한다. 엄마와 같은 병실에는 교생 선생님이 계셨는데, 아빠보다는 조금 어린 나이었을 거라고 했다, 굉장히 박식하고 책도 많이 읽는 분이어서 아빠보다는 그 선생님이 좋아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가려진 커튼사이로 왠지 모르게 로맨틱한 병원생활을 하며 설레었었다고 했다. 엄마는 일주일에도 책을 서너 권은 기본으로 읽는 책벌레인데, 그 당시 책을 많이 읽는 데다가 말하는 것도 굉장히 다정하고 박식해 보이는 그 선생님이 그렇게 좋았다고 했다. 외모도 되게 준수했었다고. 그런데 그 와중에 옆옆병실 피부가 씨꺼멓게 타고, 머리는 폭탄 맞은 것처럼 꼬불거리는 아저씨가 엄마는 너무 별로여서 병실에 찾아오는 것도 싫었는데, 외할머니는 그 당시 그 아저씨가 너무 마음에 들었는지 퇴원하면 우리 집 놀러 오라며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적어줬다고 한다.

그러자 연락처를 받은 날 오후, 빨간색 거울을 엄마에게 선물했다고. 그게 바로 전설의 할머니집 TV옆 빨간색 거울이다.

엄마는 정말 기적적으로 회복을 했다. 한 달꼴로 병원을 다니고, 온몸에 깁스를 해 가려움증을 참아내며 그 와중에도 공부를 손에 놓지 않았었다고 한다. 깁스를 다시 하거나, 조이거나 할 때는 그 고통이 이루말로 할 수가 없어, 온몸을 톱으로 잘라내는 느낌이 들어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소리를 지르면, 외할머니가 엄마를 부둥켜안고 그렇게 흐느꼈다고...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고, 할머니댁에 뜬금없는 사람이 전화를 한다. 전라도 사투리가 진득한, 그 까맣고 폭탄머리 맞은 할머니 눈에는 너무나도 듬직하고 잘생긴 청년이.



"여보세요, 저.. 그 ㅇㅇ 병원, 수남이 기억하십니까"


"예? 누구요?"


"저, 수남이요. ㅇㅇ 병원 702호요"


"아이고메. 잘 지냈는가? 누군고 했네, 반갑소"


"바로 퇴원하고, 부산에서 일하다가 인자 고흥 집에 와서 연락 한 번 드립니다"



그렇게 시작된 전화 한 통으로 다시 이어진 인연은, 다음 해에 결혼으로 이어졌다. 아주아주 성급하게.

엄마는 지금에야 와서 말하지만, 엄마의 결혼은 할머니가 아빠를 너무나도 좋아해서 자꾸만 붙여놨기 때문에 이뤄진 거라 했다, 그 당시 아빠가 촌티는 났지만 잘생긴 얼굴에 덩치도 커서 멋있긴 했었지만 그리 빨리 결혼하고 싶진 않았다고. 엄마도 꿈이 있어서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다고. 엄마는,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첫째인 언니를 가지게 되었다. 엄마 나이 만 스물, 엄마는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었고. 엄마는 그날 이후로 전쟁 같은 삶을 살게 된다. 말하자면 너무 길어, 엄마의 이야기를 장편으로 책을 내야 할 정도다. 그렇게 30년을 아빠의 지붕아래에서 자식 셋을 키우며 살았고, 매 순간이 고통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머리가 크고 나서는 나 또한 그 고통을 엄마와 겪으며 살아왔다.


내가 27살이 되던 해에 엄마 아빠는 마침내 이혼 도장을 찍었다. 아주 더럽고 치사하고 더 이상은 엮이기 싫을 정도로 힘겹게. 엄마는 자유인이 되었고, 엄마의 이혼은 철저히 외갓집 가족들에게서 비밀로 감춰졌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할머니께서 엄마에게 전화를 하셨다.



" 옥아, 큰 사우(사위) 랑 별일 없제?"


"응 없는데, 갑자기 그건 왜 물어봐~?"


"아니, 그 사우가 준 거울이 갑자기 깨져 불었당께. 영 기운이 찝찝해서 니덜한테 뭔일이 있나 허고.."


"... 거울이?"


"아이말이다, 근처에 가도 안 했는데 거울이 갑자기 지 혼자 떨어져서 깨져부렀어"


그 거울이 깨진 바로 날은, 엄마와 아빠의 이혼이 결정된 날이었다. 엄마는 소름이 돋아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별일 없다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나중에 할머니가, 그 거울을 조각조각 붙여 제 자리에 둔 것을 보고 엄마가 한평생 겪은 일들을 할머니에게 털어놓고 이혼 사실도 알려드리자, 할머니는 가차 없이 그 거울을 마당에 내동댕이 치셨다고 한다.


억지로 의미부여를 좀 해보자면, 마치 엄마 아빠의 결혼생활을 여태 비춰주며 억지로라도 유지를 시킨 물건처럼. 그 거울이 시작과 끝을 확실히 한 것 같다. 엄마의 평생의 고된 삶을 내가 빨리 멈춰줄 수 있었더라면, 그 거울.... 내가 미리 내동댕이쳐서 깨버릴 수 있었다면 너무 좋았을 텐데. 엄마에게 어울리는 삶을 살 수 있게, 내가 그런 거울을 선물해 드렸을 텐데... 난 그 빨간 거울이 원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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