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행복이 함께했던 노란 스쿨버스

나의 반짝임을 더 빛나게 해 준 사람

by 뉴새로미


새 학기가 시작되고 학교에서 여행을 가게 된 일이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가는 여행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다, 이건 나이 먹어서도 마찬가지다. 술 먹고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을 해도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학교에서 여행을 가기 전 밤새 설레어서 가방에 이것저것 준비해 둔 것들을 다시 꺼냈다가 넣었다가를 반복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침이 되어, 학교 앞에 주차되어 있는 노란색 스쿨버스 앞에서 출석체크를 하고 도착한 순서대로 버스에 탑승했다. 학교 전통인지 뭔지, 커플들이 맨 뒷자리를 앉게 되었는데, 나는 커플 따위가 아니니 그들이 앉는 자리보다 살짝 앞에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일찍 도착한 편이라 친구들 오는 걸 목 빠져라 기다리며 창밖을 보다가 앞을 보고 앉아 있었는데 낯익은 얼굴이 버스에 막 올라타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반갑지만 그렇게 반갑지만도 않은, 오라는 친구들은 안 오고 J군이 버스에 올랐다. 평소 같으면 친구들이 함께 자리를 피해 줬을 법한 상황인데 친구들은 없고, 차에 탄 사람들도 몇 없어서 당황해서 손이, 발이, 머리가.... 온몸이 떨렸다. 이 몸의 떨림에 내 엉덩이가 의자에 붙어있는 게 맞나, 나 지금 괜찮은 거 맞나 싶을 정도로. 괜스레 무릎에 올려져 있는 가방을 들춰보며 MP3,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모를 음악 듣는 기계 따위를 찾고. 립밤을 괜히 꺼내고, 있지도 않은 거울을 찾아 헤맸다. 가방은 왜 이렇게 작은 건지 이왕이면 집에 있는 이민가방에 온갖 잡다한 걸 가져올 걸 그랬나 싶을 정도로 더 이상 가방에 아무리 손을 넣어도 딱히 위기를 모면할만한 거리가 없었다.


가방에 머리를 처박고 립밤을 계속 쥐락펴락하고 있는데 의자 시트가 푹 꺼지면서 익숙한 향기가 공기 중에 퍼졌다.


“안녕!!”



“어? 어...”



J 군이다. 다른 자리가 많은데, 왜 하필 내 옆자리에 앉는 거야. 그리고 먼저 내 옆에 앉아서 안녕이라고 해놓고 자기가 더 어색해했다. 그럴 거면 제발 다른 곳에 앉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심장은 터질 것만 같고, 정수리에서 송골송골 땀이 맺히는 것만 같았다. 너무 어색하고 몇 개월 만에 처음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거라 제정신이 아닌 것만 같았다. 그 와중에 늘 J군에게서 나는 향수 냄새는 어찌나 좋은 건지. 그 순간에 향수 냄새에 좋아하는 나 자신이 너무 비참하고 한심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창문에 붙어서 친구들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것이었다. 곧 친구들이 세상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버스에 올라탔고, 나는 반가움에 반쯤 서서 손을 휘저었다. 제발 빨리 이곳으로 와서 나를 구출해 달라고.


눈이 마주친 친구는 눈으로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야?” 하고는 어떻게 상황판단을 한 건지 다시금 이상하게 눈을 찡끗하고는 우리 앞자리에 그냥 따로 앉아버렸다.

버스는 얼마 안 가 만석이 되었고, 신난 애들이 소리를 지르고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지껄여서 고막이 아플 정도로 시끄러웠다. 역시 여행은 그런 맛에 가는 거지만 나는 가시방석에 앉은 듯 너무 불편하고 어색해 그대로 그냥 집에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 너무 어색해서 J군이 안보는 사이 친구들에게 눈치를 주고 잠깐 버스가 멈췄을 때 자리를 옮겨달라고 눈짓으로 부탁을 했다.


정말 두 개의 목석처럼 우리는 딱딱하게 굳어서 억지로 앉아있는 로봇처럼 앉아있었고 나는 앞으로 몇 시간은 더 가야 하는 그 상황에서 최대한 앞자리에 앉은 친구들에게 의지하며 이야기를 하거나 창문만 주시하고 가고 있었다. 정말 J군이랑 할 말도 없고 딱히 하고 싶지도 않았다, 긴 시간 공유하고 있던 이야기나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없어서 더더욱 어색했다. 그래서 창밖의 풍경도 휑해지고 앞자리 친구들도 떠들다가 지쳤는지 조용해졌을 때 MP3를 꺼내서 이어폰을 꽂고 별것도 없는 창밖을 봤다. 어찌나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으면 목이 석고처럼 굳는 느낌이 날 정도였다. 왼쪽으로 한 번만 접었다 피면 나아질 것 같았는데 절대 J군 쪽으로 얼굴을 돌리지 않겠다, 대화를 시작하지 않으리라 굳은 다짐을 했기에 나는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그렇게 얼마 가지 않아

갑자기 J군이 내 한쪽 이어폰을 뺐고. 나는 놀라서 고개를 홱 하고 왼쪽으로 돌려 마침내 J군을 보게 되었다. 순간 당황함 보다는 마치 소변을 3시간 동안 참다가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시원하게 분출한듯한 느낌이 왼쪽 목에 퍼졌다. 눈이 마주쳤고 J군이 나지막하게 말을 뗐다.


“너 왜 내 메시지 다 무시해?”


아닌 척했지만, 온갖 집중이 J군에게 향해있던 나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쿨하게 보이고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 있을까 고민했다.

명치가 파르르르 떨리고 심장이 손끝에서 뛰는 것만 같고 누가 날 좀 그 순간에서 구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무시 안 했는데?”



“무시했잖아. 대답도 안 하고, 그리고 우리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것도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아”라고 하며 정면을 주시하고 있다가 내 쪽으로 몸을 비틀어 앉았다.

가까이 앉아있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계속 힘든 질문만 던져서 대답을 못하고 “음..” 아니면 “아...” 밖에 나오지 않았다.

한참 더 그런 어색한 상황이 이어지고 J군은 한숨을 크게 쉬더니 뺏어간 이어폰을 꽂더니 어쩌다 보니 자연스럽게 함께 노래를 들으며 가게 되었다. 아니 그런데 노래가 주야장천 사랑노래 아니면 이별노래만 나오는 것이 아닌가. 노래 가사가 이별한 후 슬퍼서 죽어버릴 것 같다는 내용의 노래가 줄줄이 나오는데 정말 3달간의 나의 슬픔의 시간들이 적나라하게 노래로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노래를 들으며 차곡차곡 우리는 어색의 강도를 높여갔고, 그 와중에 전날 밤 들떠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나의 육신과 정신이 불을 끄려고 준비를 드릉드릉. 잠이 솔솔 왔다.

이 상황에서 잠이 들면 안 되는데, 친구들의 산만함과 말도 못 할 떨림 속에 창문에 머리를 고정하고 잠이 들었다.

자고 있는데 누가 건드리면 나는 바로 깨는 스타일인데, J군이 손을 창문 쪽으로 갖다 대면서 내 머리를 지 어깨에 살포시 올려놓았고 나는 정신은 깼지만 눈은 감고 있었다.

아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러더니 자기 옷인지 뭔지 하는 것도 무릎에 살짝 덮어주고 나는 눈을 감은채 이게 뭔가 싶었다.



30분, 40분...

적어도 그 정도는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최대한 머리 무게를 줄이고자 힘을 빼고 있었더니 목을 반대로 꺾었다가는 이번에는 그냥 톡 하고 부러져버릴 것만 같았다.

목에 통증이 심해져서 이쯤 되면 그냥 떨림이고 나발이고 목부터 살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로 나는 내 목 살리기 작전을 짜 본다.




작전 1.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깬 척한다.

작전 2. 그냥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작전 3. 다시 차가 흔들릴 때 고개를 재빠르게 창문에 붙인다.

작전 4. 차가 덜컹거렸을 때 깜찍한 표정으로 놀라며 깬다.



3번을 아주 자연스러운 연기로 시도했고, 안정감 있게 다시 창문에 머리를 붙이며 최대한 근육을 늘려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데

또다시 지 어깨로 내 머리를 가져다 놓는 게 아닌가. 내 목에도 평화가 필요했고 다시 작전 4번을 시도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이번엔 J군이 잠들었는지 내 머리 위에 지머리를 포개서 잠이 들어버리는 게 아닌가. 고개를 도저히 옮길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목적지에 차가 도착할 때쯤엔 내 목은 무감각해지고 그대로 떨어져 나간 것만 같았다.






차 타고 가는 내내 이게 무슨 상황인지. J군의 향수에 취해 온갖 잡다한 생각을 했다. 생각할수록 설레고 동시에 또다시 상처의 구덩이로 빠져들어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또 예전처럼 가까운 친구처럼 지내게 되는 건가. 요즘 말로 남사친 되는 건가.

목적지에 도착하고 둘 다 어색하게 잠에서 깼다, 아니 나는 깬 척을 했다. 애초에 목때문에 잘 수가 없었으니. 버스에서 내려 각자 숙소에 방을 배정을 받았고, 룸메이트를 정하고 바비큐로 저녁을 먹었다. 이 모든 걸 하는 내내 목은 몸뚱이 위에서 머리와 함께 덜렁거리는 느낌에 선생님께 말씀드려 근육 스프레이를 처방받고 목에 뿌렸다.


그날 밤공기 좋은 캐나다 시골에 까만 밤하늘에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별들을 천장 삼아 친구들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 순간이 너무나도 행복해서 다들 너무 행복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그 밤하늘이 잊히지가 않을 만큼 너무나도 아름다운 하늘이었다. 하루를 그렇게 캠핑을 하고 학교로 돌아가는 길이 어찌나 아쉽던지, 왜 1박 2일만 하는 건지 10박 11일도 할 수 있는데 라며 불평을 쏟아냈었던 기억이 있다. 학교로 돌아오는 버스에서도 J군과 나는 옆자리에 타게 되었다. J군은 먼저 버스에 타서 내가 오르자마자 눈이 마주쳤고 베실 베실 웃으며 당연하다는 듯이 옆자리를 팡팡 치며 “여기!!!”라고 외쳤다.


주변 친구들이 야유를 보내며 “워 어어어 뭐야!” 하고 난리가 났지만, 나는 이 상황이 뭔가 싶고 설레고 너무 좋았지만. 이번에 또 함께 앉으면 내 목이 정말 남아나지 않을 것만 같아서 아직 파스 냄새도 가지실 앉았는데 심히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이미 내 엉덩이는 조심스럽게 J군 옆자리에 안착을 했다.


돌아가는 버스에서 J군은 자꾸만 내게 말을 걸었고, 전처럼 심각한 어색함은 없었지만 완전히 예전의 친구사이 느낌은 아니었다. 알게 모르게 벽하나 가 우리 둘 사이에 있는 것 만 같았다. J군은 긴 시간 못했던 이야기보따리를 푸는 것처럼 입을 쉬질 않았고, 날 보고 해맑게 웃으면서 해주는데 난 또 그 웃는 게 좋아서 헤벌쭉.


노란 스쿨버스의 거지 같은 승차감을 엉덩이로 온전히 느끼면서

즐겁고 얄리 꾸리 했던 여행이 끝이 나고 그 후로도 빛의 속도로 시간은 지나갔다.

그날은 내 생일 날았다. 카페테리아에서 친구들과 다 같이 밥을 먹고 있었는데 J군이 그날따라 나를 어색하게 대했다. 또 왜 저러나 싶어서 무척 신경이 쓰였는데, 밥을 다 먹었을 때쯤 선배 언니가 와서 라커에 가보라고 했다. 그게 뭔지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는데, 점심시간이 끝나기 바로 전에 라커에 텍스트북을 가지러 가서 문을 열었는데 J군의 향수 냄새가 내 라커에서 진동을 했다. 그리고 갈색 상자에 빨간 리본이 붙어있는 게 보였다. 라커에 힘겹게 들어간듯한 사이즈의 그 상자를 꺼내서 열어보니 아메리칸 이글의 핑크색 가방이 들어있었다. 그때는 또래 사이에서 아메리칸 이글이 굉장히 핫한 브랜드였다. 그리고 그 가방과 함께 스누피 카드도 있었는데, 연필로 편지를 썼는데 이름을 썼다 지웠다 꾹 눌러써서 한번 지워도 자국이 버젓이 남아있었다. 그 위에 또 눌러쓴 자국. 세상 이렇게 귀여울 수가 있나? 너무 사랑스러웠다.


“생일 축하해, 오늘 최고로 좋은 하루 됐으면 좋겠어. 아프지 말고 항상 지금처럼 많이 웃고 앞으로도 잘 지내자. 선물도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이제 오빠님한테 고맙다고 인사하러 와 당장!”


너무 행복해서 카드를 열었다 닫았다, 몇 번을 했는지.

카드를 수업 중에 몇 번을 열어 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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