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 너머 들리는 작은 기침소리도 설레었던 매일

나의 반짝임을 더 빛나게 해 준 사람

by 뉴새로미

귀여운 핑크색 가방을 선물 받은 생일날. 하루 종일 책 사이에 J군의 향수가 묻어난 카드를 껴놓고 수십 번 열었다 폈다. 마음만은 쉬는 시간에 당장이라도 달려가 고맙다고 얼굴을 보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그날따라 수업이 겹치는 게 없었고 또 우연히라도 스쳐 지나가는 일조차 없어 괜히 발만 동동 굴리고 있었다. 수업이고 뭐고 그냥 머릿속엔 이 유치하고 이상한 가방을 사러 갔을 J군의 모습이 머리에 그려지며 너무 귀엽고 고맙다고 생각했다. 여자가 꽃 선물을 받는 걸 좋아하는 이유는, 예쁜 꽃 때문만이 아니라 그 꽃을 사기 위해 어색하게 꽃 집에 들어가 알지도 못하는 수많은 꽃 중 내 생각을 하며 꽃을 사는 남자 친구의 마음 그리고 그 어색한 귀여운 모습이 상상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 또한, 이 가방을 고심해서 골랐을 J군의 마음이 귀엽고 또 귀여워서 명치끝부터 찌르르르한 느낌의 설렘을 느꼈다.



촌스러움의 극치지만, 난 사실 아무도 모르게 핑크덕후였다. 어떻게 알았지? 근데 아까워서 한 번도 못 들었다.

처음 캐나다를 갔을 때는 언니 옆에 붙은 껌딱지로 유학을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부모님이 캐나다로 이민을 오셨다. 그래서 감사하게도 늘 차로 등하교 라이드를 해주셨었는데, 그날도 역시 성격 급한 아빠가 일찍 도착하셔서 언니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오래 라이드를 기다리는 것도 싫지만 가끔은 다른 친구들이 부모님을 기다리거나 홈스테이 아주머니, 아저씨의 라이드를 기다릴 때 틈틈이 수다를 떠는 걸 좋아했는데 특히나 그날은 J군을 한 번도 못 봐서 더더욱 차에 타기 싫어서 괜히 아빠 눈을 피해 학교 기둥 뒤에서 친구들이랑 J군을 기다렸다.


아빠는 성격이 정말 급하다 그래서 조금만 느려 터진 모습을 보이면 세상이 뒤집어지는 리액션을 보이곤 하셨다. 그래서 아빠의 차를 발견하면 “지금 어딘가에서 전쟁이 났으니 차 타고 빨리 도망쳐야 해!”라는 수준의 다급함 정도로 차를 타 줘야 하기에 오래는 못 기다리고 결국 J군을 못 보고 집으로 가게 되었다.


생일인데 얼굴도 못 보고 고맙다고도 못하고 괜히 미안하고 서운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메신저를 켰다. J군은 오프라인 상태였고 저녁을 먹고 한참 밤이 되어서야 J군이 로그인을 했다. 온라인이 되자마자 말을 걸면 너무 기다린 게 티가 나니까 한 30초쯤 기다렸을까.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나는 아빠의 급한 성격을 닮았다.


“J군 선물 고마워. 잘 받았어!”


엔터키를 딱 누르고 심장이 얼마나 빨리 뛰던지. 100미터 달리기를 하고 나서

목구멍에서 피맛이 날 때의 그 벌렁거림. 숨이 가쁘고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명치끝 어딘가 누군가 깃털로 살랑살랑 간지러움을 태우듯 찌르찌르한게간질거렸다.


눈을 길게 감았다 떴다. 뭐라고 답 메시지가 왔는지 볼 용기도 없을 정도로 떨렸었는데, 한참 대답이 없길래 김이 식으려 할 때쯤 상당히 긴 문장으로 메시지가 왔다.

점심에 내가 찾아오길 기다렸는데 왜 바로 오지 않았냐고, 가방은 마음에 드는지 미역국은 먹었는지 오늘도 집에 바로 차 타고 간 건지. 직접 말해주고 싶었는데 수업에서 늦게 나와서 그러지 못했다고. 그래서 거기에다가 딱히 뭐라 할 말이 없고 그냥 미치도록 떨리기만 해서


“역시 너는 의리남이야! 잘 쓸게 고마워”


그리고 그렇게 내 생일이 지나가는 듯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선물을 받은 손에 꼽는 행복한 생일. 그런데 몇 분 지나지 않아서 언니가 내 방문을 확 열어젖히더니



“전화 왔다”



하고 핸드폰을 침대에 던져버리고 나갔다.



“누군데??!!”


또 친구들이겠거니 하고, 상당히 들뜬 목소리로 장난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시오 오오오-!”


그렇게 귀에 핸드폰을 가져다 댄 순간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부르는 J군의 목소리.


“어? 어!!!! 무슨 일이야???”



너무 깜짝 놀라서 대답을 냅다 질러버리곤 공룡처럼 뜨거운 콧김만 품어대고 조용히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늘 J군에게서 오는 전화는, 내가 받아서 언니에게 넘겨주곤 했었는데 그날은 전화기의 주인은 나였다.


“ 지금 방에 혼자 있어?”


“응. 와이?”


어색함을 풀기 위해 최대한 밝게, 하나도 떨리지 않은 척. 잠옷 끝자락을 조물 거리며 긴장감을 완화시키려 노력했지만 역시나 fail.



“아니.. 생일 축하한다고! 말하고 싶어서...”



그대로 귀가 녹아버리는 줄 알았다. 더 이상 핸드폰을 붙들고 있다가는. 내가 그대로 액체화 돼버릴 것만 같아서, 내 심장이 감당을 못할 것 같아서 빨리 전화를 끊고 싶었다.


“아 그래. 고마워! 선물도 예쁘고 카드도 너무 귀여워. 진짜 고마워”


말 한마디 한마디가 지렁이처럼 꾸역꾸역 목을 비집고 나오는 것 같았다.



“응....”



“아무튼, 내일 보자! 고마워 잘 자”



그렇게 내 심장 건강을 위해 빨리 통화를 끝내려고 하는데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J군의 목소리가 들렸다.



“있잖아...”




“어?”



심장이 마구 뛰다가 팍 하고 한 번에 멈춘 기분이 들었다.


“이제 괜찮아? 이제 나 봐도 아무렇지도 않아?”


무슨 말을 뗄 수가 없을 정도로 이게 무슨 소리지? 싶었다. 그래서 그냥 이 모든 일을 웃음으로 무마하고 그냥 오늘은 좋은 기억만 남겨두고 싶어서 입으로 똥을 쌌다.


“무슨 개소리야. 장난해?”

“장난 아니고 나 진지해. 이제 나 보면 아무 감정 없어? 이제 다시 편해졌어?”

불편한 거 싫은 나니까 당연히 할 수 있는 대답이라고는 그저 당연히 편해졌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전화기 너머에서 나지막이 들려오는 J군의 드라마 남주인공 뺨 후려치는 한마디에 나는 꿈속을 걷는 줄만 알았다.

정말 하이틴 드라마 한 편을 제대로 찍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재미있어서 자꾸만 뒤로 가기 반복 재생을 누르고만 싶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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