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해져서 사귀어버린 우리 사이

나의 반짝임을 더 빛나게 해 준 사람

by 뉴새로미



손에 땀을 쥐게 한다는 말을 공감해 본 적이 없었는데 정적이 흐르는 시간 동안 정말로 손에 땀이 나고 심장은 마비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머리엔 온갖 생각이 들면서 불안한 마음에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전화기 너머에 집중을 했다.



“이제 내가 불편해서 그래”


그리곤 정적을 깬 건 내가 불편해졌다는 J군에 말. 적잖이 당황을 했다. 그냥 이게 무슨 말인가 생각을 하다 보니 그냥 서로 아무 말 없이 전화기만 붙들고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서로의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뜬금없지만 나는 ENPF라서 어색한 걸 싫어하기 때문에 그 당시 내가 왜 그런 식의 대답을 했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간다.


“왜?”


똥 같은 대답이지만 저만한 대답도 없었다. 왜 불편해졌는지 이유는 알고 싶었으니.


“네가 웃기게 생각할 수도 있고, 어이없어 할 수도 있고 근데 진지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어. 내가 너 상처 주고 울게 하고 그런 거 다 너무 미안해서... 그래서 내가 이런 말 하는 게 웃기긴 하는데”



“응”



“아 뭐라고 해 이걸... 그니까, 내가 너 좋아하는 거 같아”



그 순간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고. J군의 장난이 도를 넘었다 생각했다. 평소에도 장난기가 많은 사람이니까. 하지만 또 그렇게 듣기에는 J군의 진지함이 너무도 무게감 있게 들렸고 목소리도 평소와 달랐기에 그저 그 말 한마디, 내가 좋다는 그 마지막 말에 윗입술 아랫입술을 어찌할지 주체할 수가 없고 이미 입술은 조커 저리 가라 찢어지게 광대를 쳐올리고 있었다. 그때의 감정은, 로또를 맞은 기분이랄까 아니면 내가 평생 원하던 일을 일궈낸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세상을 다 가지면 이런 기분일까? 생각을 했었다. 그 와중에 정말 좋아하던 사람에게 고백을 받아 본 적이 없었어서 뭐라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고. 아무 말을 안 하고 있자니 J군이 어색해 할거 같아서 뭐라도 내질러야 했어서


“아.....” 한마디 내뱉어 놓고 또 정적이 흘렀다.


그렇게 서로 “아.... 하하” “응... 그렇구나”만 주거니 받거니 여러 번 하다가


J군이 “그럼 늦었으니까 자고 내일 학교에서 보자. 잘 자, 아직 몇 분 남았네. 생일 축하해” 한마디를 뒤로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방 한가운데 서서 방방 뛰고 난리가 났었다. 한 마리의 침팬지가 된 듯 끽꾹꺅대면서 침대에 온몸을 던져 왼쪽 오른쪽 사방팔방으로 굴러다니며 미친 사람처럼 돌고래 소리로 소리를 지르고 웃어댔다. 그때가 11시 50분쯤 되었을까 오밤중에 둘째 딸이 정신이라도 나간 걸까 갑자기 들리는 이상한 소리에 걱정되어 온 가족이 내 방문을 열고 미치려면 조용히 미치라는 소리를 듣고 진정을 시켰다. 아니, 사실은 전혀 진정이 되지 않아 늦은 시간 친구들과 메신저에서 이 상황을 이야기하며 난리가 났었다. 새벽까지 친구들이랑 이야기하며 생일 다음날을 맞았고, 새벽 내내 너무 설레고 떨려서 잠이 오질 않았다.



다음날 학교를 가려고 준비하는데 머릿속을 꽉 채운 수많은 생각들에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얼굴을 보면 어색할 거 같은데...? 어떡하지? 뭐라고 어떤 말을 해야 하지?



내가 다녔던 학교는 크리스천학교여서 채플이라는 수업이 있었는데. 성경공부를 하고 찬양을 부르고 했었다. 그 수업은 J군도 함께 듣는 수업이어서 점심 바로 전 드디어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채플 수업이 있는 강당에 들어가기 전에 자판기에서 젤리를 사서 미리 가서 친구들이랑 앉아 있었다. 괜히 언제 J군이 오나 문쪽만 주시하면서.

그런데 앞문으로 안 오고 J군이 뒷문으로 들어와서는 내 옆자리에 앉은 친구에게 옆자리로 옮겨달라고 하더니 내 옆에 앉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는 있었지만

어색하고 너무 떨려서 발을 쭉 내밀어 발끝만 보고 있었다.

평소 표정관리를 정말 못하는 편이라, 최대한 앞만 보고 수업에 집중하는 척을 했다

수업이 채플이니만큼 조용하고 경건한 분위기였지만 장난을 좋아하는 J군은 슬슬 장난에 발동을 걸기 시작했다.

찬양 부르다가 어깨를 툭툭치고 내가 쳐다보면 세상 귀염 지고 환하게 웃었다.

수업시간 45분이 어떻게 지나간 건지 평소 같으면 헤드벵잉 해가면서 졸았을 수업이었는데 45분이 5분처럼 느껴졌다.


채플은 끝날 때 목사님이나 전도사님이 “기도합시다”라고 하시면 옆사람 손을 잡고 눈을 감고 기도를 하며 끝을 내는데, 그날은 또 J군이 앉았기 때문에, 어색해서 그냥 손을 안내 밀고 내 양손을 잡고 기도하는 척을 했다. 그랬더니 무릎 위에 어색하게 손을 얹어놓고 있으니까 손을 훽하고 낚아채서 가져가 꼭 쥐었다.


손에 모든 신경이 가 있고, 세포까지 뚫어질 것처럼 집중이 되었다.

몇 분 안 잡고 있었는데 손에 땀이 나는 거 같고 손에 심장이 달린 듯 미친 듯이 쿵쾅댔다.

실눈을 감고 J군 허벅지에 놓여있는 우리 둘의 손을 힐끗 봤는데, 손크기 차이는 드라마틱하지 않은데 두께감이라던지 핏줄이라던지... 또렷한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변태처럼 힐끗힐끗 보며 혼자 히죽히죽 웃으며 기도를 마쳤다.


채플이 끝나고 바로 점심시간이어서 카페테리아로 가려고 일어났는데 손을 꽉 잡고 안 놔줘서


“야 나 배고파. 점심시간인데”


정말 퉁명스럽게 뱉었는데 세상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싫어” 그러길래 더 이상 어색해지는 꼴이 싫어서

예전에 좋아하는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때처럼. 다른 쪽 손으로 J군 볼때기를 잡고 쫙 늘려서 놓으라고 소리쳤다.

결국 점심도 같이 먹고 선배들한테 “ 둘이 좋겠네” 소리도 들으면서 정말 스파게티가 콧구멍으로 들어가는지 귓구멍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점심을 먹었다.


그렇게 한동안 티격태격 친구인 듯 연인인 듯 애매한 관계를 이어나갔다. 지금으로 따지면 썸이라고 해야 하나.

매일 둥실둥실 핑크빛 구름 위를 걷는 것만 같았다. 한창 사춘기 고1 때라 부모님께도 칼날이 선 말투나 행동으로 종종 대들기도 했었던 시기였는데.

이 시기에 부모님이 J군한테 절을 해야 할 것 같다면서 둘째 딸이 다시 태어난 것 같다고 할 정도로 긍정적이고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친구 생일날 다 같이 모여 저녁을 먹고 노래방을 간 적이 있었다. 처음으로 캐나다에서 노래방을 간 거라 엄청나게 신이 났었다.

대화도 별로 잘 안 하던 선배들이 노래를 부르는 걸 보니 반전이 많았는데. 평소 조용하고 말도 없어서 입에 거미줄 치겠다 싶은 사람이 온몸을 흔들며 춤추는 걸 보고 어찌나 놀랐는지. 하루 그렇게 놀고 나니 별로 친하지 않았던 사람들과도 부쩍 친해진 기분이 들고 이래서 소셜라이징이 중요한 거구나 싶었다. J군도 역시 그 자리에 있었는데

평소에도 분위기 메이커라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게 신나게 분위기를 살렸다. 그렇게 두 시간이 넘게 노래를 부르다가 하나둘씩 음료를 산다며, 화장실을 간다며 사라졌는데 다들 너무 우리 둘만 남겨두려고 자리 피해 주는 게 티가나서 나도 따라 나가고 싶었다.



어두 컴컴한 방안에 단 둘이 앉아있는데

노래방 화면에 팀의 사랑합니다가 뜨고 반주가 흘러나왔다.

다른 사람이 신청해 놓고 그냥 나가버린 건 줄 알고 어색함에 책자만 뒤지고 있는데

저 구석에 앉아있던 J군이 내 옆에 마이크를 들고 와 앉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약간의 장난스러운 몸짓으로 트로트 가수가 손으로 관객을 가리키듯이 행동을 취하며 노래를 부르는데 자꾸 내쪽으로 얼굴을 들이밀어대서 진짜 어색하고 부끄러웠다.

피하려고 하면 더 가까이 다가와서 손바닥으로 자꾸만 다가오는 J군의 얼굴을 밀면서 노래가 빨리 끝나길 빌었다.

나는 오글거리는걸 못 참기 때문에 그냥 가사가 뜨는 화면만 보며 벌렁대다 못해 덜컹거리는 심장을 최대한 정신력으로 컨트롤하면서 버텼다.



노래가 끝나고 박수를 마구 쳐주고 나서 어색하게 흐르는 침묵.

이제 일어나자고, 그냥 영혼 없는 이야기가 오가다가 갑자기 J군이


“그래서! 어? 정말 나 이제 안 불편한 거지? 편하다 이거지? 내가 좋다고 그래도 안 받아줄 거야?”라고 장난치듯 툭 내뱉었다. 자기도 어색한지

괜히 죄 없는 책자만 펄렁펄렁 넘겨댔다.


나는 머리에 커다란 용암 덩어리라도 찬 것처럼 머리가 무겁고 뜨겁고 뭐라고 대답을 하긴 해야겠어서 한참을 머뭇대다가

부끄러움에 손으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내뱉었다.



“나도 불편... 아니, 좋아해”


정말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을 내뱉고 나니. 다른 방의 음치들의 소음도, 복도의 사람들 말소리들도 무음이 되는 것만 같았다. 그냥 나 혼자 덩그러니 J군 앞에 앉아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두컴컴한 노래방 안이 환해질 만큼. 내 부끄러움도 떨림도 모두 덮어버릴 만큼.

J군이 세상 환하게 웃어줬다.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을 만큼 정말 예쁜 미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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