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성, 권력, 애도, 그리고 윤리학
새해 달력을 넘긴 지 얼마 된 것 같지도 않은데 많은 생명이 우리 곁을 떠나갔다. 그들의 이름을 하나씩 읊어본다. 김기홍. 변희수. 이은용. 남들과 같은 방법으로 세상에 내려온 이들에게 사회는 같은 방식의 대우를 해주지 않은 것만 같다. 예쁘고 맑간 이름 하나하나에 아릿한 상처가 묻어 나온다. 어떤 차별을, 어떤 상처를 겪었길래 스스로 세상을 떠났을까. 감히 그 고통의 무게를 상상할 수 없다.
이들의 죽음을 앞에 두고 지난한 감정들이 떠올랐다. 잔잔한 물결 위 홀로 떠 있는 돛단배 마냥 외로운 삶을 살았나 싶었는데 하루에도 몇십 개씩 분노의 글들이 올라왔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자가 대신 그들의 곁에 섰다. 그럼에도 어쩐지 마음 한편이 씁쓸했다. 오랫동안 가시화되지 않았던 혐오와 차별을 반대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왜 이제야 울려 퍼지는가. 과연 이들의 분노가 어느 정도의 순도를 지니고 있는가 하는 주제넘은 의문도 생겨났다. 왜 하필 지금일까. 뒤늦은 연대의 목소리에 투영되는 건 누구의 모습인가.
애도에도 권력이 있다. 혹은 애도를 통한 정치가 있다. 나를 불편하게 한 것은 아마도 그것들이었을 것이다. 떠나간 자의 고통은 결코 내 것일 수 없는데 몇몇 글에서 그 고통의 주체가 바뀌었다. 한평생을 바쳐 분투해온 누군가의 결코 온전히 소유할 수 없던 삶을 너무도 쉽게 자기화하는 과정에서 이 고통은 쉽게 미화된다. 개인적인 생각을 쉽게 업로드할 수 있는 공간이 SNS라지만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는 말들 속에 진실의, 진심의 삶이 묻히는 것만 같다.
당사자가 아닌 상황에서 우리는 얼마나 정치(pc)하게 말을 얹고 있는가. 위한다는 위로 곁에 어쩌면 곱절의 권력이 배양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애도는, 발화는 결국 권력의 차이를 드러낸다. 소수자로서 소수자는 마음 편히 애도할 수 없다. 드러냄에는 너무도 많은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은 뒤이어 몰아친 사건 사고에 맞서 싸운다는 의미와도 같다. 그러니까 소수자의 말하기는 여러 면에서 위치와 자리를 빼앗긴다. 인도의 학자 가야트리 스피박의 말처럼 ‘서발턴은 말할 수 없다’. 애초에 말할 기회조차 없을뿐더러 말하기를 말할 때 이들이 견뎌야 할 풍파는 너무나 거칠다.
물론 소수자라는 것은 지극히 상대적이다. 젠더, 인종부터 피부색, 태어난 지역, 사용하는 언어 등 많은 갈래를 거쳐 소수자의 존재가 규정된다. 즉 ‘소수자’라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상대적인 지표가 될 수도 있다. 결국 나의 피로함을 토해 놓는다는 것이 먼 길을 돌아 누군가에게는 갖고 싶은 권력이 될 수도 있고 다시 또 어떤 분란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얽히고설킨 권력의 생태계라고나 할까.
이러한 구조들을 어렴풋하게 인지하고 난 뒤에는 세상에 뭐 하나 쉬운 것이 없어졌다. 쉽게 곁을 주거나 쉽게 곁에 다가설 수 없었다. 상대가 내 시선을 공감하지 못할까 봐 혹은 내가 상대의 잣대를 긍정하지 못할까 봐. 움츠러드는 시간이 길어졌다. 자그마한 내 공간을 떠나 사회에 목소리를 내야 할 때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체력이 달렸다. 복잡한 권력 구조 속에 내가 택한 답지는 그저 ‘비위 맞추기’. 너무나 안일한 전략으로 보일 수 있으나 내 딴에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전백승이라 했으나 적은 모르겠고 나만 나를 아는 상황에서 최선책은 일 보 후퇴일 뿐. 애초에 맞붙을 싸움이 되지 못한다면 거리를 두는 편이 나았다.
방어막을 온몸에 두르고 있어도 아찔하게 찔러오는 ‘농담 어프로치’에 벗어날 공산이 없다. 농담. 유희. 순수한 얼굴을 하고 다가오는 혐오의 말들, 차별의 단어들에 눈앞이 막막해졌다. 나에게는 ‘여캠’, ‘흔들다’, ‘포르노’, ‘창녀 서사’를 두고 이것들을 입에 올리지 못하는 건 딱 그 정도의 도덕적 엄숙주의에 빠진 것이 아니냐는 회심의 일격 같지만 사실은 양날의 검 같은 농담이 그랬다. 다수의 남성에게 둘러싸여 깨 발랄을 콘셉트로 그 자리에 버티고 서있던 나는 그날의 엄숙함을 잊지 못한다.
적어도 그들의 표현에 솔직함이 있을지언정 또 다른 여성인 나를 향한 존중은 없었다. 모두가 소비하는 그 성 착취적 영상. 보는 것을 본다고 말하는 게 뭐가 문제냐는 접근 옆에 우스갯소리로 야함을 정직하게 소비하려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가르는 게 오히려 ‘대상화’가 아니냐는 농담들이 따라붙었다. 나는 그저 멋쩍게 웃으며 나의 소수성을 가릴 뿐이었다. 서로의 젠더 위치가 다른 상황에서 함부로 공감을 요구하는 일 따위는 애 즉각 내 곁에 없었다. 당당하게 싸울 용기가 없고 유야무야 그 자리를 흩어지게 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스멀스멀 자기 검열이 피어오를 때쯤 옛 어른들의 말씀이 떠올랐다. “여자가 뭣 하러 배우나. 머리가 크면 집안을 떠난다”는 류의 문장이었다. 글을 읽고 몇 가지 생각의 가지를 키워나갈수록 이런 글들이 떠오른다. 차라리 알지 못하면 불편하지 않았을 상황에 자꾸만 놓이고,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몇 가지 차별의 맥락에 놓이게 될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과연 내가 소수자가 맞는지. 나의 이런 생각만큼 타인의 이런 생각 역시 존중받아야 하는 게 아닐지. 내 생각이 내 위치에서 시작되는 것이라면 그의 저 생각도 그의 위치에서 시작되는 것일 텐데. 그렇다면 우리의 가치관은 마치 평행이론처럼 달려 나갈 뿐인데. 어디서도 적당한 해소의 지점이 없어질 텐데 이 가치 양립 적인 전투를 시작하는 것이 맞을지. 정말이지 머릿속이 어지러워진다.
그래서 이상하게도 하루하루 나이를 먹어갈수록 ‘공감’의 능력이 향상되고 ‘대표자’를 향한 연대가 길어진다. 내가 나로서 말하지 못할 때 나를 대변해 외쳐주는 사람. 그들에게 책임을 밀어주어 미안하면서도 한 편으론 그쯤이 마음 편했다. 나는 그 정도로 예민하지 않다는 구호 아래 누군가에게 내 일상의 권리를 밀어두었다. 사이사이 허투른 연대의 말을 던지기도 했고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 내게 쏟아지는 잣대를 남의 것인 양 분배했다. 그래서 남은 것은 무엇인가. 그래서 남겨진 것은 무엇인가. 결국은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이 구조에서 여전히 나는 투쟁의 구호를 입에 올리지 못한다.
다만 배워가고 있다. 읽고 말하고 쓰고 느끼면서 나는 전에 없던 나체의 감정을 마주하곤 한다. 오랜 기간 내 몫의 슬픔이 아니라 여겼던 장애인들의 운동과 노동자들의 노동권 수호 운동에 자꾸만 발걸음이 멈춰 선다. 내 것이 아닌 그들의 몫으로 여기던 상처들. 이제 그것들에 조금씩 온전히 다가서는 중이다. 좋은 일에 쉽게 공감하고 감동하던 지난날의 나는 이제 질 가능성이 이길 가능성보다 큰 누군가의 삶에 조금씩 연대의 몫을 얹고 있다. 변화의 시작은 아마 내가 그만큼의 차별과 한계를 맞이했기 때문이리라.
불평등한 사회 속에서 우리는 쉽게 친구가 될 수 없다. 겹겹이 쌓인 층을 벗기고 벗겨낼수록 차이의 씨앗은 크게 자라나 결국은 불평등한 권력 구조를 마주하게 한다. 소수자는 쉽게 스스로 정의하기를 포기한다. 결국 사회에 의해 정의되고 규정되고 나를 온전히 누리기를 부정당한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소수자로서 자신을 자기 뜻대로 정의하려다 고결한 삶을 잃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제 우리가 모두 조금 더 움츠려 보자. 부딪히는 서로의 어깨를 조금씩 접어 누군가가 자신의 공간을 억지로 깎아낼 필요가 없도록 그저 조금씩 더 움츠려보자.
다시 한번 우리는 쉽게 친구가 될 순 없다. 하지만 그 사실이 존중의 거부로부터 시작될 필요는 없다. 곁을 주고 함께 볕을 쐬는 날. 그런 세상이 오길 이슬 머금은 새싹이 돋는 춘삼월에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