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한 꿈을 이루지 못했어도 나는 여전히 주인공입니다만

'삶은 계란 씨'는 그의 삶을, 3,000만큼 사랑해.

by 강송희





“야, 주인공이 꼭 위대한 꿈을 이뤄야 하냐? 좀 내려놓으면 어때! 비욘세가 되지 못했어도 버스킹을 하며 행복해하는 주인공도 있어야지! 그게 드라마지!”


칠판 앞에 선 스승님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드라마 교육원 54기 기초 1반 수업을 듣는 습작생이었던 나는, 선생님의 말을 가슴 깊이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아마 그 말의 의미를 머리로만 이해하려 애를 썼기 때문에 내가 처음 세상에 내놓은 단막극 대본이 엉망진창이었던 것이다.


당시 나는 <수상한 책방마을>이라는 단막극을 쓰고 있었다. 만년 습작생인 ‘강필’이가 어떤 사건을 겪고 마침내 멋지게 데뷔에 성공하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내 대본을 읽으신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 강필이 입장에서 생각을 하고 글을 쓴 거 맞아? 강필이가 이런 상황에서 그런 기분이 들었대? 야 인마, 너는 지금 계속 강필이한테 네 감정을 강요하고 있잖아. 슬퍼라, 슬퍼라 하면서. 강필이는 울 준비도 안 됐는데. 그럼 눈물이 나겠니? 진짜 좋은 대본은 지문에 그저 ‘강필이가 운다.’ 정도만 써도 눈물이 줄줄 나와! 다른 건 다 관두고 강필이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봐.”


선생님의 감상평은 나에게 두 가지 생각을 하게 했다.


첫째, 이 형편없는 대본 속 주인공을 살아있는 사람으로 대해주시다니, 놀랍다. 선생님은 마치 ‘강필’이라는 남자가 바로 옆집에 사는 오랜 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내게 그의 안부를 물었다. ‘강필’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나는 어쩌면 선생님만큼도 진지하지 않게 글을 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둘째, 강필에게 미안하다. 어쩌면 그는 작가로 성공하는 삶보다 글을 쓰는 과정을 행복해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그에게 그 어떤 질문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성공’만을 강요했다.


그 뒤로 수차례 대본 수정을 하며 나름대로 고군분투했지만, 나는 결국 합평 대본을 완성하지 못한 채 첫 작품을 상자 속에 묻었다. 강필이가 공모전에서 떨어질 때마다 그랬던 것처럼.


그로부터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그사이 에세이를 내고, 동화를 쓰고, 웹소설을 쓰며 여전히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드라마 작가로 데뷔하지는 못했지만, 대신 드라마 광이 되었다. 내 언젠가는 TV 드라마가 방영되는 화면에 ‘극본: 강송희’를 박고야 말리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새로운 웹소설을 구상하다 말고 문득 드라마 교육원에 다녔을 때 썼던 단막극 대본을 떠올렸다. 일순간 스며든 과거에 대한 기억은 삽시간에 짙은 그리움으로 번져 가슴 한 구석을 말랑거리게 만들었다.


나는 작업하던 것을 멈추고 책장 깊숙이 넣어 두었던 상자를 열어 <수상한 책방마을> 대본을 꺼냈다. 표지 빽빽이 감상평을 적어주신 선생님의 손 글씨가 나를 그 시절로 고스란히 보내주고 있었다.


그때는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시기만 해도 움찔, 무서워했었는데(물론 선생님은 밝은 내 성격 때문에 전혀 눈치 채지 못하셨겠지만 나에게는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다.) 시간이 흘러 다시 마주한 선생님의 손 글씨는, 누구보다 따뜻했고 제자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야, 정말 형편없다. 이게 다 뭐야?”


이쯤 되면 선생님께 이런 글을 읽게 해 드려서 죄송했었다고 사과를 해야 할 판이었다. 대본을 한 장 한 장 넘겨 읽던 나는 부끄러움을 느낌과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정으로 가득했던 그때의 나를 떠올리며 괜히 감성에 젖어 눈시울을 붉혔다. 비록 수정 원고를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잘 써보겠다고 부산 보수동까지 내려갔었으니, 내게는 나름 애증의 대본이었기 때문이다.


한쪽 귀퉁이가 누렇게 바랜 30페이지짜리 종이를 만지고 있자니, 동기들과 함께 합평을 받았던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불쑥, 떠올렸다. 목에 핏대를 세우며 우리에게 뭐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려던 선생님의 목소리를.


“야, 주인공이 꼭 위대한 꿈을 이뤄야 하냐? 좀 내려놓으면 어때! 비욘세가 되지 못했어도 버스킹을 하며 행복해하는 주인공도 있어야지! 그게 드라마지!”


내 기억이 맞는다면, 가수가 되고 싶은 주인공의 이야기를 쓴 어느 동기생의 대본에 대해 합평을 하시면서 했던 말씀이었을 것이다.


“그게 드라마지! 왜냐, 드라마는 곧, 인생이니까.”


나는 선생님의 열정적인 목소리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그래. 주인공이 꼭 거창한 꿈을 이뤄야만 주인공인가? 주인공은 그냥 말 그대로 주인공이지. 지구를 지키는 <어벤저스>의 ‘아이언맨’만 주인공이고 미니시리즈 <또 오해영>에 나오는 ‘그냥 오해영 씨’는 주인공이 아니냔 말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꼭, 평범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드라마를 눈물 콧물을 짜내며 정주행 하곤 했다. 이를테면 ‘또 오해영’에서 늘 ‘예쁜 오해영’과 비교를 당하는 주인공 ‘그냥 오해영’씨에게 폭풍 감정 이입을 하면서, 최근에는 ‘멜로가 체질’에 등장하는 세 여자 주인공들의 대사 하나하나에 ‘옳소!’를 외치면서, 종영을 앞둔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동백이와 ‘옹벤져스(이하: 옹산 어벤저스)’ 언니들 때문에 매주 울고 웃으면서.


그들은 내게 ‘아이언 맨’ 만큼이나 소중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들에게, “3,000만큼 사랑해.”라 속삭이고 싶었다. 게다가 나는 이제, ‘아이언 맨’이라고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그러니 지구를 지키는 어벤저스든, 옹산에서 살인자 ‘까불이’에게서 동백이를 지키려는 옹벤져스 언니들이든, 중요한 것은 그들은 그들만의 인생 안에서 모두,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자신의 하루를 소중하게 여기고 그들이 행복하기 위한 삶을 위해 애를 쓴다. 오해영은 오해영의 인생에서, 동백이는 동백이의 인생에서 ‘서툴고 모자란 주인공’인 것이다. 마치 생선 가시를 잘 바르지 못하고 여전히 글을 쓰는 일을 어려워하는 내가, 내 인생에서만큼은 주인공인 것처럼.


나는 <수상한 책방마을> 제목을 내려다보며, ‘강필’이에게 물었다.


“야. 솔직히 말해봐. 너, 데뷔가 간절했던 것만은 아니었지? 그저 네 스스로 애정을 가질만한 글을 쓰고 싶었던 거잖아. 위기에 빠진 지구를 구하는 거창한 영웅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의 인생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아니야?”


‘등장인물’ 소개란 맨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한 ‘강필’이란 이름을 손으로 쓰다듬자, 어쩐지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언젠가 그에게 물음에 대한 답을 듣게 되는 날이 온다면, 인간미 넘치는 <수상한 책방마을>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때의 강필은, 당당한 목소리로 이런 말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거창한 꿈을 이루지 못했어도, 나는 여전히 내 인생의 주인공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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