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여름의 무더위를 간신히 이겨내고 겨울로 가기 위해 잠시 ‘가을 호’ 환승 열차에 올라탔다. 우리 집 식구들은 년 초부터 벼르고 있었던 가족여행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차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변산. 가족여행지로 많이 추천된다는 전라북도의 한 반도였다.
식구들에게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도피성 여행’이었다.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은 시기였다.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아도 되는 것일까, 내가 평생 글을 쓰며 살아갈 수 있을까,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할까. 하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일종의 ‘슬럼프’였다. 나는 여행을 핑계 삼아 널브러진 생각들을 정리하고 올 생각으로 여행길에 올랐다.
몇 시간을 달려 도착한 숙소는 절벽 위에서 묵묵히 파도를 견디고 있었다. 그 경치에 압도되어 한참을 바라보던 나는, 가족들의 재촉에 짐을 대충 풀고 다시 차에 올라 ‘내소사(來蘇寺)’로 향했다. 변산에 오면 꼭 한 번 들러야 한다는 절이었다.
입구에 도착하자, 약 700여 그루의 전나무가 숲길을 이룬 채 마중 나와 있었다.
어떤 나무는 땅에 뿌리를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이제 막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있었다. 반면, 마치 제가 어디까지 클 수 있는지 누군가와 내기라도 한 듯 끝을 모르고 하늘 높이 가지를 뻗은 나무도 있었다. 나는 나무들 사이를 요리조리 헤집으며 들이치는 빛을 따라 천천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숲길은 생명의 소리로 가득했다. 귀를 기울이면 귓불 언저리에 전나무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들은 바람을, 뜨거운 볕을, 축축한 비를 온몸으로 맞아내며 오랜 시간 동안 제 자리를 우직하게 지켜내고 있었다. 흙에서 올라오는 냄새가 그들이 겪어온 인고(忍苦)의 시간을 고스란히 전해왔다. 나는 우람한 전나무들과 함께 호흡하며 잔뜩 웅크렸던 허리를 조금씩 꼿꼿이 세웠다.
그들은 내가 내뿜는 ‘불안의 잡내’를 들이마시고 그 자리에 ‘인내’를 내뱉고 있었다. 문득, ‘자연의 품 안에서 인간은 얼마나 티끌만 한 존재인가.’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저 멀리, 끝없이 이어진 숲길을 따라 깊숙이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손톱만큼 작아 보였다.
한참을 걸어가던 나는 어느 나무 앞에 우뚝, 멈춰 섰다. 발아래 뿌리가 뽑혀 바닥에 처참하게 쓰러져있는 전나무 한 그루가 보였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니 그 주변에는 커다란 전나무들이 속수무책으로 뿌리가 뽑힌 채 나뒹굴고 있었다. 나는 한참 그들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어쩐지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곳에 맥없이 뻗어있는 그들의 모습이 꼭, 나 같았으니까.
저들도 처음 싹을 틔웠을 때에는 굵직하고 튼튼한 나무가 되리라 꿈을 꾸었겠지, 몸을 뚫고 가지가 자라나고 잎이 돋아나는 동안 어떻게든 땅 아래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자 다짐했겠지. 그러다 이따금 몰아치는 거센 바람에, 고개를 잔뜩 숙인 채 ‘이 또한 지나가리라.’ 스스로를 다독이려 애를 먹었겠지. 그렇게 악착같이 하루하루를 버티던 어느 날,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태풍을 만났을 것이다. 지금까지 잘 버텨왔는데. 조금만 더 힘을 내면 단단한 나무가 될 수 있을 텐데. 안쓰러운 마음을 잔뜩 웅크린 채 온몸에 힘을 주던 그들은 맥없이 허리를 꺾었을 것이다. 자신의 나약함을 한탄하면서, 거센 태풍을 원망하면서.
나는 그들을 한참 눈으로 쓸어내리다 이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울창한 숲길을 따라 올라간 절 앞에는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전나무 한 그루가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크기가 얼마나 컸던지, 건장한 사내 이삼십 명이 나무를 둘러싸도 기둥을 다 매울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나무 앞에 마련된 안내 문구를 보니, 자그마치 천 년의 시간을 버틴 우직한 나무였다. 만일 내가 이곳에 서식하는 전나무였다면, 그를 어른으로 모시며 섬겼을 것이다.
천 년. 인간의 수명을 평균 100년쯤으로 어림잡았을 때, 한 사람이 생(生)하고 사(死)하기를 족히 10번은 할 수 있는 ‘억겁의 시간’이었다. 그는 그 오랜 시간 땅 아래 깊숙이 뿌리를 내린 채 태어나고 죽어가는 전나무들을, 이곳에 드나드는 수많은 인생을 지켜본 것이다. 그 엄숙한 존재에 나는 잠시,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어쩐지 그에게는 나를 괴롭히는 크고 작은 일들을 모두 토해내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치 내가, 뿌리가 뽑히려는 전나무 한 그루가 된 것 같았으니까.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절에 오르는 동안 읽었던 푯말들을 하나 둘, 떠올렸다. 전나무는 선천적으로 곧게 자라기 때문에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니 거센 태풍에 뿌리가 뽑힌 것은 어쩌면 그리 놀랄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살아남기 불리하게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싹을 틔웠다. 또 부러져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어쩌면 그들에게는 부서지는 것보다 세상에서 영영 사라져 버리는 것이 더 두려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는 것이 힘에 부친다고 숨을 쌕쌕거리면서도 우직한 나무 앞에 앉아 다시 숨을 고르고 있는 나처럼.
어디선가 서서히 흙으로 돌아가고 있을 전나무의 뿌리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땅에서 뽑혀버린 그들은 수많은 시간을 기다리며 다시 자연의 품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또, 싹을 틔울 것이다. 다음번에는 조금 더, 튼튼하게 뿌리내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나는 그만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뒤를 돌아 굵직한 나무 앞에 마주 섰다. 군데군데 생채기가 나있는 나무껍질 안으로 새살이 돋아나고 있었다. 천 년의 시간 동안 그가 겪었을 수많은 아픔과 상처를 두 눈에 담으며, 나는 쓰러진 전나무들의, 거센 태풍을 만나 잠시 흔들리고 있는 나의, 안녕을 빌었다.
살랑, 살랑, 이곳에 왔다 간 사람들의 소원등들이 한낮의 따사로운 바람에 이리저리 나부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