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동에서 시집 온 아이

'날계란 씨'의 여행(1)

by 강송희




부끄러웠다.


부산 보수동에 도착해 한걸음에 달려간 책방골목은 내게 ‘겉멋만 잔뜩 든 글쟁이’라 나무랐다.

빽빽이 쌓인 책들 중 그 어떤 책도 읽어본 적 없는 책이었다. 나는 어쩐지 ‘습작생’이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 두려웠다.


당시 나는 드라마 교육원에 다니고 있었다.

수료 과제인 단막극에 필요한 자료조사를 위해 무언가에 이끌리듯 기차에 몸을 실었다.

솔직히 말하면, 자료조사라는 거창한 목적을 가장한 즉흥 여행이었다. ‘무엇을 써야겠다.’는 결론도 짓지 않고 무작정 내려갔기 때문이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책방골목이다. 6.25를 겪은 피난민들이 부산에 모여 각자 가지고 있던 책을 한 권, 두 권씩 길거리에서 팔다가 생겨난 것이 지금의

골목이었다. 지금이야 예전에 비해 사람들이 책의 귀중함을 잘 모르지만, 그때만 해도 책은 그 자체로 자산이었기 때문에 70년대에는 나름 황금기이기도 했다고 한다.


90년대 생인 내가 그 시절 책방골목에서 살아본 것은 아니지만, 이런 기본적인 정보는 관련 기사를 찾아보면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때의 사람들은 책 사이에 몰래 용돈이나 연애편지를 끼워 넣기도 하고, 부마항쟁이 일어났을 때에는 군인들을 피해 학생들을 서점 안에 숨겨주기도 했었다.

영화 ‘변호인’에서 배우 송강호 씨가 책을 구매한 장소도 이곳이었다.


책방골목은 그 자체로 역사의 한 줄기였다. 나는 골목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벅차오름을 느꼈다. 한적한 책방 안에는 나이 지긋한 주인들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서점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생각했던 것보다 넓었다.

아니, 넓었다기보다는 ‘깊숙했다’는 표현이 맞겠다. 사방이 책으로 된 벽이었는데, 그들을 따라 천천히 안으로 들어가자니 마치 숲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천장까지 높이 쌓여있는 책들은 세월의 냄새를 뿜어내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오래된 책의 곰팡내쯤으로 여겼을지도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그들 한 권 한 권이 전부 살아있는 옛 시절의 삶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왠지 모르게 그들에게 이름을 붙여 부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게 그렇게 하듯이.


서점 주인들은 책 한 권 한 권을 모두 자식처럼 여겼다. 오죽하면 책을 파는 일을 ‘시집보낸다.’고 표현했을까. 수천, 수만 권의 책들이 빼곡하게 박혀있는 공간에서, 그들은 그 많은 책들이 각기 어디에 꽂혀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만화방을 운영하고 계신 노부부께서는

내가 만화책의 제목만 말해도 성큼성큼 어디론가 사라져 단번에 책을 가져다주셨다. 자료조사에 필요한 인문서적을 사러 어느 서점에 들어갔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주인아저씨는 내 말 한마디에 일말의 고민도 없이 단숨에 내가 말한 책을 가지고 나오셨다.


그들에게 서점은, 먹고사는 수단 그 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 사람들은 책을 정말 사랑하는구나. 그런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으니까.


그들이 내게 책을 건네며 꺼내는 첫마디는 금액 얘기가 아니었다. “아, 이걸 사가시게? 이 책이 말이야...”로 입을 연 그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그 책이 왜 귀중한지,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신이 나서 쏟아냈다.


부끄러웠다.


뭘 하는 사람이기에 이 구석에 있는 책을 찾아냈느냐는 주인아저씨의 물음에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이토록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앞에서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말해도 되는 걸까.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저, ‘학생입니다.’ 정도로 퉁 치며 멋쩍게 웃었다.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책들이 유독 무겁게 느껴졌다.


날이 저물도록 나는 책방골목을 벗어나지 못했다. 입김을 후우 불어대며 골목길을 서성이던 나는 어느 아늑한 서점에 들어가게 되었다.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 차를 마시다 말고 인자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오래된 책 냄새를 맡으며 시집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녀가 따뜻한 차를 내밀었다. 얼결에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그분은 시인이셨다.


따뜻한 차 덕분에 몸이 녹아서였는지, 그분의 따스한 시선 때문이었는지, 나는 조금 용기를 내 작가 지망생이라는 말을 꺼냈다. 시인께서는 내게 글을 쓰기 위해 먼 이곳까지 내려온 걸 보면, 분명 좋은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라 말씀하셨다. 하마터면 왈칵 눈물이 쏟아질 뻔했지만 입술을 잘근 깨물며 버텼다. 이상하게도 묵은 체증이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책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내 눈에 세월의 흔적이 묻은 시집 한 권이 들어왔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 사랑하는 이여, 내가 죽거든’이라는 제목을 단 책은 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시들을 한 데 엮어 놓은 시집이었다. 내 손에 들린 책을 본 시인께서는 여느 서점의 주인들처럼 좋은 책을 고르는 눈이 있다며 그 책은 이제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귀중한 책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조심스레 책장을 넘겼다. 그리곤 맨 앞장에 쓴 누군가의 글에 마음을 사로잡혔다.

속지에는 자필로 쓴 글이 쓰여 있었다.


“158가지의 사랑을 읽고선 어느 날 가끔 밀려드는 그리움의 대상이 나라면, 그건 그리움이 아니라 작은 사랑입니다. 늦여름, 영빈이가.”


그 글이 내게는 마치 서툰 글쟁이에게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건네는 위로 같았다.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글을 쓸 수 있다는 가르침 같았다. 그러니 자신감을 가지라고 허락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순간, 이 책이 내게 시집와주기를 바랐다. 시인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내게 그 아이를 보내주셨다.


그로부터 약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나는 두 번째 에세이에 들어갈 에필로그를 작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보수동에서 데려온 책 속에 적힌 어느 구절을 인용해 내 책에 담았다. 언젠가 아주 많은 시간이 흘러, 나의 책이 보수동 책방골목으로 흘러들어 가게 됐을 때 책을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세상 살기가 조금은 힘들어 기운이 빠져있는 어느 청춘에게 시집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세상 모든 사랑을 시로 엮어 담은 어느 시집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순수한 사랑의 슬픔을 넘어야 비로소 완전히 정화된 사랑의 기쁨을 만날 수 있다는 내용의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모든 순수한 것들은 성숙하기 위해 아픈 시간을 보냅니다. 사랑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랑’이라는 단어 앞에 ‘나’를 두기까지 내 마음은 너무도 어렸고, 서툴렀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모든 시간이 때론 아프고 슬플지라도, 그 너머에는 가장 아름답게 정화된, 나 자신을 사랑하는 기쁨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외로운 것들에 지지 않으려면 에필로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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