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도 우산이 필요하다.

'날계란 씨'의 서툰 위로

by 강송희
엄마의 컬러링북



‘돈 많이 벌어야겠다.’


전화기 너머 엄마의 MRI 결과를 듣고 맨 처음 한 생각이었다.


의사는 뇌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엄마의 손에 ‘가벼운 뇌경색’이라는 결론을 쥐어줬다. “이번에 병원에 안 왔으면 큰일 날 뻔했다.”는 말을 덤으로 얹어주면서.


두꺼운 혈관이 터진 것이 아니어서, 다행히 당장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지만, 앞으로 정기적인 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살면서 ‘죽음’이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겪어 본 적 없는 인간에게 병명 앞에 붙는

‘가벼운’이라는 단어는 무용지물인 법이다.


가볍건 무겁건 ‘뇌경색’이라는 말 자체가 엄마에게는 사형선고처럼 들렸을 테니까.


모든 슬픈 날엔 으레 그러하듯, 그날도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병원을 나온 엄마는 의사가 내린 ‘가벼운 사형선고’에 지난 50여 년의 세월을 당신의 우산 위에 길게 늘어놓고 있었다.


나는 “이번에도 돈 아깝다고 사진 안 찍어봤으면 어쩔 뻔했냐.”며 그 옆으로 잔소리를 이어 붙였다. 말로는 태연한 척 엄마에게 별 일 아니라

다독였지만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우리는 소중한 것들이 언제나 곁에 머물 것이라는 안일함과 싸우다 일생을 마감하는지도 모른다.


전화를 마친 나는, 문득 내 일상생활의 퍼즐에서 ‘엄마’라는 조각이 떨어져 나가는 장면을 상상했다.


식탁에 식구들이 둘러앉아 밥을 먹는 모습의 퍼즐 판이 있다. 다른 식구들은 식탁에 앉아있고, 엄마만 부엌에 서서 국을 그릇에 담고 있다. 그러다 돌연, 누군가가 조각 하나를 떼어간다. 부엌엔 뜨다 만 국물 그릇과 국자만 덩그러니 남는다. 아침에 눈을 떠 부랴부랴 출근 준비를 하는 내 입에 김으로 싼 밥 뭉치를 욱여넣는 잔소리꾼이 사라지고, 사는 게 힘에 부친다고 엉엉 우는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던 인생의 선배가 사라진다.


들이치는 비를 언제고 막아줄 것 같았던 엄마가 내 앞에 당신의 하루를 늘어놓으며 울었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살아온 인생이라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생각했었는데 막상 정말 죽을 뻔했다는 말을 듣고 나니 왜 그리 모든 게 억울하던지 모르겠다며 뺨에 하염없이 빗줄기를 쏟아냈다.


나는 그저 ‘그만하니 다행이다.’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엄마의 건강보다 돈 걱정이 본능적으로 앞섰기 때문이다.


천하의 불효자식이다.

머릿속엔 ‘엄마가 만약 또 아프게 되면, 병원비가 많이 들겠지?’, ‘엄마가 살아있는 동안 부지런히 돈을 벌어서 빚도 다 갚고, 생활비도 모아야 할 거야.’ 하는 따위의 생각들이 좁은 공간에서 서로 부대끼고 있었다.


문득 죽음이란 죽는 자 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자들의 인생에서 큰 조각 하나가 아프게 떨어져 나가는 것. 휑한 그곳을 남은 사람들끼리 다시 매우며 살아가야 하는 것. 그제야 비로소 소중한 것의 빈자리를 온몸으로 깨닫는 것. 그리 생각하니 엄마 없이 살아가는 것이 깜깜하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보통 소중한 것을 어떻게 대하는 지 묻고 싶었다.


엄마는 검진 이후 어떤 심경의 변화를 겪었을까. 어느 날 집 청소를 하다 발견한 컬러링 북을 몇 가지 안 되는 색연필로 매일 밤 부지런히 색칠하기 시작했다. 힘들지도 않은 지 시계가 새벽 세시를 가리킬 때까지 알록달록 밑그림을 색칠하며 소녀처럼 웃었다. 나중엔 직접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고 말하면서.


그제야 엄마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갑자기 내가 엄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누군가가 내게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뭐예요?”라 묻는다면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뚱히 엄마를 쳐다보는 내게, 정성스레 색을 입히던 소녀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이번 주 내로 72색 색연필 도착할 거야.”라고.


동생이 엄마를 위해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문을 한 것이었다. 동생은 알고 있었던 걸까. 엄마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내게는 3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다. 동생은 어릴 때부터 늘 나보다 깊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동생에게 “세상을 살아가려면 힘이 세져야 해. 그러려면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고, 돈을 많이 벌어야 해.”라고 말할 때도 그 녀석은 그저 웃었다. 공부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고, 이렇다 할 눈에 띄는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나에게 없는 특별함이 있었다.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눈.’ 녀석은 신통방통하게도 나는 죽어도 어루만져줄 수 없는 사람들의 상처를 다독였다. 사촌 동생들이 내게 ‘인생 진로 상담’은 할 수 있었어도, 마음의 위로를 얻어가진 못했다. 그 건 내 동생의 몫이었다. 동생은 그저 말없이 그들을 지켜보다가 필요한 것을 챙겨다 주었다. 그래서 항상 동생들은 나를 ‘멋진 누나’, ‘자랑스러운 언니’라 불렀지만 내 동생에게는 ‘따뜻한 오빠’, ‘고마운 형’이라 불렀다.


동생은 알고 있었던 걸까. 소중한 것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동생이 유치원생이었을 때였다.

당시 나는 초등학생이었는데, 우리 초등학교 건물 1층에 동생의 유치원이 있어 매일 등하교를 같이 했었다. 그날도 오늘처럼 비가 많이 내렸다. 나는 방과 후에 특별활동 수업이 있어서 동생에게 먼저 가라고 말했다. 비는 수업이 끝났을 때도 쏟아지고 있었다. 처음보다 더 거센 빗줄기였다. 나는 서둘러 우산을 펴 집으로 향했다. 집에 거의 다 도착 해갈 무렵, 빗속에서 웬 익숙한 사내아이 뒷모습이 보였다. 동생이었다. 녀석은 무언가를 꼭 껴안은 채 억수같이 쏟아지는 그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얼른 뛰어가 우산을 씌워주며 “시간이 몇 시인데 아직도 집에 안 들어갔냐.” 물었다. 나를 올려다보는 녀석의 품에는 무지개 색 우산이 들려있었다. 나는 하도 황당해서 물에 빠진 생쥐가 된 동생에게 “우산이 있는데 왜 비를 다 맞고 가고 있냐.”라고 핀잔을 주었다. 그때 내 귀로 날아온 동생의 묵직한 대답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우산이 비를 맞을까 봐.”


알고 보니 그 날 동생이 들고 간 우산은 엄마가 얼마 전 사준 ‘새 우산’이었다. 동생은 그 우산이 너무 소중해서, 비를 맞는 것이 제 할 일인 우산이 비를 맞을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유치원 수업이 끝난 뒤에도 차마 우산을 쓰지 못해 건물 아래에서 비가 그치길 기다리고 또 기다리느라 집에 가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야속하게도 점점 더 거세지는 빗줄기에 고민 끝에 우산을 품에 안고 집으로 향했던 것이다.


아! 이 얼마나 바보같이 순수한 영혼이란 말인가.


나는 더는 할 말이 없어 추위에 부르르 떠는 동생을 데리고 말없이 집으로 갔다. 그 뒤로 며칠간, 동생은 감기 때문에 시름시름 앓았지만 녀석은 그저 우산이 비를 맞지 않아 다행이라 말했다. 만약 엄마가 동생 앞에서 당신의 하루를 늘어놓으며 엉엉 울었다면, 동생은 어떻게 했을까. 적어도 나처럼 ‘돈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머리 위로 가장 먼저 띄우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어쩐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중하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매우 귀중하다’이다. 어떤 것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거창한 것을 상대의 손에 쥐어주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미하엘 엔데>의 <모모>라는 책에서 주인공 모모는, 고민이 가득한 마을 사람들의 말을 그저 옆에서 묵묵히 들어주는 것만으로 그들의 고민을 해결해준다.


그들이 필요했던 것은 현실적인 충고가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가 자신들의 말을 들어주길 바랐던 것이고, 모모는 그들의 마음을 읽은 것이다.


소중한 것은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모모 같은 사람이 되어주는 것. 그저 옆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고, 그들에게 ‘지금 이 순간’ 가장 필요한 것을 건네는 것. 그러므로 소중한 순간을 함께 늘려가는 것. 색칠공부를 좋아하는 엄마에게 색연필을 건네고, 우산에게도 ‘우산’이 필요할 것이라 여겨 대신 비를 맞아 준 어린 날의 내 동생처럼 말이다.


사랑은 삶 곳곳에 머물지만 언제나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소중하다고 여기는 그들이 우리의 곁을 떠날 때에 외롭지 않도록 살아 있는 동안 매 순간, 있는 힘껏 그들에게 알려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내게는 당신이 너무나 소중하다고.’


그게, 소중한 것을 귀히 여기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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