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를 품은 청춘은 ‘빨리빨리’를 외친다.

'날계란 씨'의 서툰 젓가락질

by 강송희


나는 생선요리를 싫어한다.

그것이 조림이든, 튀김이든 간에.


이유는 간단하다. 가시를 잘 바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엄마는 늘 내게 ‘나이가 몇인데 생선 가시 하나 제대로 못 바르냐.’며 식탁에서 핀잔을 주지만, 나는 때때로 글을 쓰는 것보다 생선 가시를 바르는 게 훨씬 더 곤욕스러울 때가 있다.


큰 가시 하나를 발라낸 뒤 살점 덩어리를 입 안으로 집어넣으면, 미처 발라내지 못한 잔가시들이 이때다 싶었던지 목구멍을 냅다 찌르는 통에 일종의 ‘가시 노이로제’가 생겨버렸기 때문이다. 어쩌겠는가. 서툰 일은 언제나 그대로 서툰 것을. 게다가 남들 앞에서 생선 하나도 못 바르는 사람으로 보이느니 차라리 ‘저는 원래 생선 요리를 싫어합니다.’라 점잖을 떠는 것이 더 그럴싸하지 않은가. 서툰 모습을 보는 것은 나나 상대방이나 어쩐지 불편하니 말이다.


오늘도 식탁 위에는 어김없이 생선요리가 올랐다. 오늘은 하필 개중에서도 제일 발라먹기 어렵다는 (지극히 내 기준에서의 얘기지만) 갈치조림이다.


사실 나도 사람인지라, 뜨거운 밥 위에 짭조름하고 매콤한 양념에 절여진 놈의 살덩이를 한두 점 올려 한 입에 털어 넣으면 혀에 녹는 그 맛이 일품이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세상의 이치가 그러하듯, ‘알고 있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다. 그러니 눈앞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푹 익은 생선이 맛있다는 것을 아는 것과 그것을 야무지게 발라 먹는 것은 별개의 일이 되는 것이다.


실은 생선요리를 싫어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이는 오롯이 내 급한 성미 때문이다. 나는 무엇이든 ‘빨리빨리’를 외치는 사람이다. 밥을 먹는 일상적인 일부터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아 발표를 해야 하는 제법 큰일까지 나는 모든 일에 마음을 먼저 급하게 먹는다.


오죽하면 내가 엄마에게 글을 쓰고 싶다고 말했을 때, 두 팔을 들어 환영했을까. 평생에 걸쳐 천천히 걸어가야 하는 작가의 길을 택했다고 했을 때 엄마의 달뜬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런 나에게 차분히 앉아 (그야말로) 한 땀 한 땀 가시를 바르며 먹어야 하는 생선 요리가 마음에 맞을 리 없지 않은가. 뾰족뾰족한 가시만 없다면, 마음 같아서는 놈의 몸통 한 토막을 한 입 가득 문 채 우적우적 먹고 싶은 심정이니 말이다. 그러나 엄마가 밥숟가락 위에 차분히 얹어준 갈치조림 한 점을 보고 있자니 문득, 나의 이 급한 성미에 대해 반감이 들기 시작했다.


‘빨리빨리’를 외친다 하여 정말 모든 일들이 빠르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마음대로 되지 않은 일을 마주할 때면 나는 또 얼굴을 붉히며 벅벅 화를 냈다. 나는 왜, 이토록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을 빨리 해치워버리려고만 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을 때쯤, 엄마가 두 번째 갈치조림 토막을 젓가락으로 뒤집으며 나를 바라봤다.


“잘 봐. 생선가시에도 결이 있어. 네가 그걸 들여다볼 생각을 안 하고 무작정 젓가락으로 푹푹 쑤셔대니 그렇지, 이놈이 가지고 있는 결을 차분히 따라가다 보면 이렇게 알맹이만 쏙, 빠진다고. 자, 어때. 쉽지? 서툴러서 그래. 하다 보면 쉬워.”


서툴러서 그래.


어느새 바닥을 보이는 내 밥그릇 안에 불쑥, 들어온 갈치 한 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마지막 남은 한 숟가락을 떠 입 한 가득 밀어 넣은 채 우적우적 그것들을 씹어 삼켰다.


서툴러서 그래.


마지막 밥알이 목구멍 뒤로 꿀꺽, 넘어갈 때까지 엄마의 그 말은 삼켜지지 못한 채 입천장 어딘가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생선을 싫어하는 이유는, 온갖 가시를 품고 살아가는 저 손바닥만 한 존재가 나와 닮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실은 가슴 한구석에 온통 가시를 숨긴 채 잔뜩 경계하며 사는 서툰 인생이라, 그런 서툰 내 모습이 들킬까 쉬지 않고 꼬리로 물장구를 치며 ‘빨리빨리’ 아가미를 뻐끔거리며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선 하나도 제대로 못 바르는 사람이 되는 것은, 어쩐지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지니까.


하지만 만약, 엄마의 말이 맞는다면 나에게도 놈과 같이 결 같은 게 있어서, 내 인생도 그 결을 따라 차분히 바르다 보면 먹음직스러운 알맹이만 남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마지막 남은 갈치 토막을 뒤집어 엄마가 말한 것처럼 놈의 결을 따라 천천히, 조심스레 가시를 발랐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가시를 피해 알맹이만 쏙, 빠지는 것이 아닌가.


“그래. 그렇게 하면 되잖아. 별 거 아니라니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의 얼굴이 내가 글을 쓰겠다고 말했을 때처럼 해사했다. 나는 직접 바른 생선의 살점을 엄마의 밥 위에 올렸다.


별 거 아니라니까. 서툰 일도.

서툰 내 인생도.


어느새 깨끗이 비워진 생선 접시가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을 후련하게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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