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3년 차 글쟁이 ‘날계란 씨’입니다.

삶은 계란이 되어 바위를 치는 그 날까지

by 강송희

오늘도 ‘날계란 씨’는

100도씨가 넘는 뜨거운 시간 속에서

조금은 단단한 ‘삶은 계란 씨’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써내려갑니다.





우리는 흔히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는 말을 합니다.

대항해도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죠.


금방이라도 부서져 버릴 것처럼 연약한 날계란 하나로 단단한 바윗덩어리를 치면 어떻게 될까요?


그나마 몸뚱이를 지키고자 존재하는 얄팍한 껍질이 삽시간에 산산조각이 나면서 그 중심에 들어있던 노른자가 처참하게 깨질 겁니다.


날계란이 감당하기에 바위는 너무도,

무서운 존재니까요.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먹고사는 일에 급급해 어린 시절 꿨던 꿈들은 일찌감치 서랍 구석에 넣어버린 사람들,

퍽퍽한 현실에 치여 사랑하는 이들에게 제대로된 위로도 건네지 못하는 서툰 사람들,

앞만 보고 달리다가 별안간 거센 태풍을 만나 휘청거리는 사람들까지.


어쩌면 우리는 모두 똑같이 ‘날계란’으로 태어난 존재들인데, 매서운 세상을 만나 혹여 한순간에 와장창 부서져버릴까 노심초사하며 힘겹게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태생이 약하게 태어났다고 하여 마냥 주눅 들어 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살아가는 모든 것들은 또, 어떻게든 살아야 하니까요.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모두가 슈퍼맨이 될 수도 없습니다. 그런 건 판타지 소설이나 SF 영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니까요.


그래서 나는,

차라리 '삶은 계란'이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태생이 약하게 태어난 ‘날계란’ 같은 존재라면, 죽었다 깨어나도 얄팍한 껍질을 거북이의 등껍질로 교환할 수 없다면,


껍질이 부서지더라도 노른자를 지켜낼 수 있도록 조금은 단단한 계란이 되기로요.


날계란이 하루아침에 바위가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삶은 계란은 될 수 있으니까요.


계란이 뜨거운 물에 끓고 나면, 안쪽이 익어서 고체가 되어 무게중심이 한 곳으로 모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돌아갈 힘을 얻는다고 합니다.


뱅그르르 한 바퀴도 채 돌지 못하고 맥없이 멈추기를 반복하던 날계란에게도, 삶을 지탱할 힘이 생기는 것이지요.


이 책은 달리고 싶지만 자꾸만 휘청거려 제자리에 멈추게 되는 ‘날계란 씨’들에게, 치열한 시간 속에서 조금은 단단해진 ‘삶은 계란 씨’가 건네는 서툰 위로입니다. (사실은 저도 아직 반숙 계란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사는 게 퍽퍽해 오늘 하루도 나약한 자신을 한탄하고 있을 모든 '날계란 씨'들에게,

이 책이 조금이나마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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