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내가 고등학생 때 쓰던 2G 폴더 휴대폰이다. 머리맡에서 반 접힌 상태로 몸을 웅크리고 곤히 자는 그의 머리를 조심스레 위로 젖히니 ‘으다다다-’ 기지개를 켜며 커다란 시계를 얼굴에 띄운다. ‘AM 8:00’ 뒤이어 익숙한 알람 소리가 방 안에 우렁차게 울려 퍼진다. 마치 아직 자신이 건재함을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그는 약 10여 년 전 모 기업에서 야심 차게 출시했던 휴대폰이다. 요즘에야 일명 ‘효자폰’이라 불리며 장난감 취급을 받지만, 이래 봬도 한때는 잘 나갔던 그였다. 처음 그가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만 해도 통화가 잘 안 되는 지역들이 많았고, 기업들은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는데 주력한 휴대폰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아날로그’ 씨도 그들 중 하나였다. 지금도 그의 이마에 자랑스럽게 박혀있는 ‘Any call’이라는 문구가 “어디서든 전화해라.”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가 맨 처음 내 손에 들어온 것은 내가 열일곱이었을 때다.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를 거쳐 내게 온 것이지만.
당시 휴대폰이 없었던 나는, 성적을 올리면 휴대폰을 주겠다는 엄마의 약속에 눈에 불을 켜고 공부를 했다. 방구석에 틀어박혀 밤낮으로 공부한 덕에 반에서 5등 안에 드는 데 성공한 나는 엄마에게 의기양양하게 손을 내밀었다. 거래를 성사시키자는 의미였다.
엄마는 잠시 방에 들어갔다가 나오더니, 내 손바닥 위에 거무튀튀한 구식 폴더 폰을 올려놨다. 기가 찬 나는, “이게 언제 적 휴대폰이냐.”며 볼멘소리를 해댔다. 그때는 한창 ‘터치 휴대폰’이 유행이었기 때문이다. 뚜껑 없이 매끈한 화면에 손가락을 살짝 갖다 대기만 해도 글자가 써지는 신비한 휴대폰을 두고 옛날에 엄마가 쓰던 구식 휴대폰을 쓰라니. 잔뜩 기대에 부풀어있던 나는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딸내미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녀는 “전화랑 문자만 되면 됐지, 터치는 무슨 터치냐.”며 아껴 쓰라고 했다.
다 낡아빠진 골동품을 아껴 써서 뭐 한단 말인가. 나는 어린 마음에 이놈이 고장 나면 엄마가 자연스레 새 휴대폰을 사주리라 믿고 부러 더 막 썼지만, 끈질긴 놈은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내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멀쩡하기만 했다.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몇 년을 놈과 동고동락(同苦同樂) 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에 입학하던 해가 되어서야 나는 비로소 최신형 터치 휴대폰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학수고대했던 놈과의 이별이 성사된 것이었다. 속이 다 후련했다. 최신형 휴대폰의 등장으로, 놈은 자연스레 서랍 구석에 들어가는 신세가 됐고 그 뒤로 놈의 전원이 켜지는 일은 없었다.
그로부터 10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다. 세상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바야흐로 ‘LTE의 시대’가 열렸다. ‘스마트 폰’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더 빠르게’를 슬로건으로 내걸며 저마다의 하루를 굴려 나갔다. 손바닥만 한 기계는 검색 한 번이면 단시간에 답을 내놓았다. 어렵게 머리를 굴려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이름 그대로 ‘똑똑한 휴대폰’이었다.
기업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와 각종 ‘애플리케이션’을 우후죽순(雨後竹筍)으로 개발했고, 사람들은 쏟아져 나오는 그들을 우걱우걱 소비하며 ‘좀 더 빠른 것’, ‘좀 더 편리한 것’을 내놓으라 요구했다. 그때마다 기업은 ‘더 빠르고 편리한’ 새 상품을 토해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의 성격은 점점 더 급해져 갔다. 물론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 나는 잠시도 휴대폰을 가만두지 않았다. 어딜 가든 그가 있어야 안심이 됐다. 심지어 스마트폰이 없으면 길도 제대로 찾지 못했다. 도대체 옛 조상들은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종일 휴대폰을 손에 꼭 쥔 채 그를 주물럭거리며 괴롭혔다. 게다가 속도가 조금이라도 느려지면 답답해서 애가 끓었다.
어느새 나는 스마트폰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스마트폰의 노예’가 돼 있었다. 주객(主客)이 전도된 꼴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똑똑한 휴대폰은 나에게 ‘지독한 놈’이라며 파업을 선언했다.
돌연 먹통이 된 것이다. 바꾼 지 몇 달도 채 안 된 최신형이었는데. 아무리 밥을 물려줘도 미동 없는 휴대폰을 보며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점입가경으로 수리공은 나에게 ‘고치려면 3주는 걸린다.’는 끔찍한 형벌을 내렸다. 단 하루도 손에서 놓은 적 없는 내게 삼 주라니! 노예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처사였다. 털레털레 집으로 돌아온 나를 보며, 엄마는 전사(戰死)한 스마트폰에 ‘주인을 닮아 성격이 아주 급한 놈’이라 비꼬며 혀를 끌끌 찼다.
상황이 이리되자, 임시방편으로 쓸 공기계가 필요했다. 영리한 건 둘째치고 당장 사람들과 기본적인 연락은 해야 하지 않겠나. 사회생활에 찌든 직장인은 찬밥 더운밥을 가릴 형편이 아니었다. 머리를 굴리던 중 문득 십 년 전 서랍 구석으로 밀려난 놈이 생각났다. 동면에 들어간 동물들도 일 년에 한 번은 세상 밖으로 나오는데, 놈은 벌써 십 년째 깨어난 적이 없으니 전원이 켜지기나 할지 미지수였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끈질긴 놈이었으니 어쩌면 아직 작동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슬금슬금 피어올랐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연 서랍장 구석에는 놈이 몸을 반으로 접은 채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뭐든 빠르게 변하는 이 시대에서 그는 십 년 전 모습 그대로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학창 시절의 추억을 가득 품은 그를 막상 직접 눈으로 보고 나니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울렁거렸다. 그의 이마에 적힌 ‘Any call’이라는 문구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이젠 놈이 켜지지 않으면 서운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자신의 간사함에 기가 차 웃음을 터트렸다. 지긋지긋하다며 서랍 구석에 처박을 땐 언제고 이제 와 켜지지 않으면 어쩌나 안달이라니. 놈의 정수리에 달린 카메라 눈이 나를 노려보며 “뻔뻔스러운 놈”이라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시선을 가까스로 외면하며 어린 시절 땅에 묻은 타임캡슐이라도 꺼내듯 조심스럽게 놈을 꺼내 주둥이에 낡은 충전기를 물렸다. 미동이 없던 놈은 잠시 후 충전기에 빨간 불을 켜며 아직 자신이 살아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얼른 전원 버튼을 꾹- 눌렀다. 엄지손가락에 오랜만에 ‘추억의 그립감’이 느껴졌다. 스마트폰에서는 결단코 느낄 수 없는 폭신함이었다.
이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놈은 세월아 네월아 하며 오랜 동면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화면에 뜬 막대기 모양의 칸은 내일이나 돼야 다 채워질 기세였다.
성질이 급한 나는 순간 미간에 내 천(川) 자를 그렸지만, ‘켜지는 게 어디냐.’며 이내 체념하곤 단편 소설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놈의 기상을 기다리며 책을 읽는 동안 문득, 주변이 ‘고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끄러운 일상생활 속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였다. 놈은 단편 하나를 다 읽어갈 때쯤이 돼서야 눈을 떴다.
예상대로 놈은 학창 시절 내 일상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친구들과 주고받은 문자, 통화목록, 도대체 화질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할 수 없는 앨범 속 뿌연 사진들까지. 끈질기게 자리를 지킨 놈 덕분에 나는 오랜만에 철없이 순수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 마음껏 뛰놀 수 있었다.
나는 그 길로 동네 대리점에서 놈을 개통시킨 후 ‘아날로그’라는 새 이름을 붙여줬다. 잊고 살았던 그때의 기억들을 다시 불러일으켜 준 것에 대한 작은 보답이었다. 비록 세상은 그를 잊었지만, 나라도 놈의 귀환을 환영해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두어 번 헛기침을 한 뒤 조그맣게 “아날로그 씨...?”하고 불러보니, 어쩐지 놈에게 묘한 애틋함이 느껴졌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동물이라 했던가. ‘아날로그’ 씨의 느려 터진 속도도 삼 주차에 접어들자 그럭저럭 적응됐다. 나는 이제 온종일 휴대폰을 손에 꼭 쥐고 있지 않았다. 어차피 구식 휴대폰으로 할 수 있는 게 그리 많지도 않았을뿐더러, 문자 하나라도 보낼라치면 전송될 때까지 한참은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뚫어지라고 화면만 들여다보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내 할 일을 하는 게 속 편하다는 일종의 ‘지혜’가 생긴 셈이었다.
연락은 꼭 필요할 때만 주고받게 되었고, 모르는 길은 물어물어 찾아가게 되었다. 버릇처럼 인터넷 창을 들여다보던 시간에 책을 읽게 되었고, ‘단체 대화방’에 시답잖은 농담을 늘어놓는 대신 산책을 하며 바쁜 일상 속에서도 ‘고요한 행복’을 누리는 법을 터득했다.
인생이라는 게 어디 마음먹은 대로 가지기만 하던가. 급히 먹은 밥은 체하기 마련이고, 지하철에 억지로 승차하려 달려들면 문에 몸이 끼기에 십상이다. 나는 이제 ‘느림의 미학(美學)’을 안다. ‘아날로그’ 씨가 선물한 소중한 이 하루를 그의 숨이 다 하는 날까지 끈기 있게 걸어갈 참이다.
나는 말끔히 고쳐진 스마트폰의 전원을 꺼 서랍 속에 넣었다.
‘딩동-’ 소리에 메시지 함을 열어보니, 대리점에서 최신형 스마트폰을 무료로 개통해주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필요 없다.’는 뜻을 전할 요량으로 ‘아날로그’ 씨의 뚜껑을 소리 내어 ‘탁’ 닫는다. 대답 한 번 명쾌하다. 주머니 속 그가 조용히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