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아저씨’는 대형마트 지하에 있는 캐릭터 뽑기 기계에 내가 붙여 준 이름이다. 마트 동물병원에서 매니저로 근무한 지 올해로 2년이 되었으니, 랜덤 아저씨를 만나고 계절이 두 바퀴나 돈 셈이다.
랜덤 아저씨는 투명한 몸뚱이에 타조 알 같은 동그란 플라스틱 통들을 품고 어린아이들을
유혹한다. 아이들은 랜덤 아저씨의 몸뚱이에 붙어있는 캐릭터 그림 스티커를 보고 아저씨가 품은 알 안에 든 것이 저들이 좋아하는 캐릭터 인형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의 끈질긴 유혹에 아이들은 부모의 옷자락을 붙잡고 랜덤 아저씨를 가리킨다. 그럴 때면 랜덤 아저씨는 네온사인을 더욱 요란하게 뿜어내며 녹음된 멘트를 외친다.
“한 판에 이천 원!”
이윽고 부모의 지갑이 열리면, 랜덤 아저씨는 그들이 지폐 투입구에 넣은 종이 두 장을 허겁지겁 삼킨 후 ‘STOP' 버튼에 빨간 불을 켠다. 침을 꼴딱 삼킨 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버튼을 '쿵-' 누르면 아저씨는 기다렸다는 듯 몸 안의 알들을 굴린다.
알들이 한 데 엉켜 뒤죽박죽 섞여 돌아가는 동안, 아이는 부모의 손을 꼭 잡고 자신이 갖고 싶은 캐릭터의 이름을 외치며 알이 나오는 구멍을 뚫어지라 쳐다본다. 잠시 후, 데굴데굴 굴러 내려오는 소리와 함께 랜덤 아저씨가 무작위로 선택한 플라스틱 통을 퉤, 뱉는다. 아이는 얼른 부모의 손을 놓고 기대감에 부푼 눈으로 그것을 집어 든다.
나는 늘 여기서 관찰하기를 멈춘다.
랜덤 아저씨는 우리 병원 건너편에 있기 때문에 나는 카운터에 앉아서 통유리 너머로 그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원한다면 아이가 뚜껑을 열어 캐릭터 인형을 확인할 때까지 언제까지고 지켜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아이가 뚜껑을 열기 전 시선을 거둔다. 혹여 그 안에 아이가 원하는 인형이 들어있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다.
일면식도 없는 아이가 인형 하나 얻지 못하는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마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라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며 나이를 먹은 나에게는 실망할 아이의 모습을 보기 두려운 심리가 생기는 것이다.
원하는 것을 늘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만큼 슬픈 깨달음이 또 있을까. 갖고 싶은 인형을 간절히 외치며 랜덤 아저씨만 뚫어지라 쳐다보던 아이에게 통 안에 든 것은 단순히 캐릭터 인형이 아니라 간절한 ‘꿈’ 일 수도 있는 것이니 말이다. 아이들은 꿈을 먹고 자란다고 했던가. 문득, 내가 저만했을 때 간절히 갖고 싶었던 ‘꿈’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듯 지나갔다.
우리도 한때 부푼 꿈이 가슴에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녔을 때만 해도 반장깨나 했다는 아이는 죄다 ‘대통령’이 꿈이었다. 그때는 대통령이 여러 명이어도 되는 줄 알았다. 어떤 아이는 피아니스트였고, 세계적인 가수였으며 제2의 에디슨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지만, 슈퍼맨이 되어 지구를 구하겠다고 한 녀석들도 많았다. 그 시절에는 그런 꿈을 꾸는 게 당연하다 여겼다. 안될 거란 생각은 추호(秋毫)도 없었다. 그저 미래에 꿈을 이룬 자신을 상상하며 행복해했을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그들은 어른이 됐고, 수많은 대통령은 취업 준비생이 되었다. 피아니스트는 피아노 대신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렸으며, 제2의 에디슨은 영업사원이 되어 발명품 대신 발품을 팔았다. 세계적인 가수는 퇴근 후 1인 노래방에서 노래 솜씨를 뽐냈으며, 슈퍼맨은 지구는커녕 제 몸 하나 건사하기에도 급급했다.
어릴 적 꿨던 꿈들은 만사 제쳐두고 현실이라는 장벽 앞에 ‘목구멍에 풀칠’ 하기 위해 전전긍긍하기 바쁜 어른이 됐다. ‘된다.’ 보다는 ‘안 된다.’는 말에 더 익숙하고, ‘할 수 있다.’ 보다는 ‘할 수 없다.’ 말하는 게 차라리 속 편한 어른이.
지금 아이의 손을 잡고 마트 사이를 분주히 오가는 수많은 어른도, 한때는 반짝이는 꿈이 있었을 것이다. 별안간 병원 문을 열어 그들에게 묻고 싶어 졌다. 당신들은 꿈을 이뤘느냐고.
“한 판에 이천 원!”
유리 너머 랜덤 아저씨가 내 물음에 대꾸하듯 말했다. 북적북적한 사람들 사이로 한 사내아이가 랜덤 아저씨 앞에 멀뚱히 서 있다.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아저씨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리라. 흔한 광경에 나는 무심히 고개를 돌려 마감 청소를 시작했다.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문을 열고 나가자 사람들 사이로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모자(母子)의 모습이 보인다. 조금 전 본 사내 아이다. 아이는 특정 캐릭터 이름을 말하며 ‘한 번만 하게 해 달라.’고 엄마를 조른다. 엄마는 바쁜 눈치다. 서둘러 집에 가야 한다며 아이를 달랜다. 그런데도 고집을 피우는 아들에게 엄마는 특별 조처를 내린다.
“네가 갖고 싶은 인형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어.”라 말한 것이다. 씁쓸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이 세상의 이치인 것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긴다. 그때, 아이의 낭랑한 목소리가 묵직하게 날아와 내 뒤통수를 때린다.
“나올 수 있는 데.”
나올 수 있는 데. 나는 아이의 말을 나도 모르게 따라 중얼거리며 자리에 멈춰 섰다. 그렇지. 나올 수 있지. 할 수 있을 확률과 할 수 없을 확률은 똑같이 오십 대 오십인데, 우리는 언제부터 ‘할 수 없다는 것’에 더 많은 가능성을 부여했는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고 누가 정해놓았단 말인가. 뒤돌아 바라본 아이는 마치 그런 질문을 하듯 제 어미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퇴근 준비를 마치고 병원 문에 자물쇠를 채우고 나자, 어느새 조용해진 마트 안에 랜덤 아저씨의 목소리가 더욱 선명히 울려 퍼졌다.
나는 겉옷 주머니를 뒤적여 천 원짜리 지폐 두 장을 꺼내 아저씨 앞으로 갔다. 갖고 싶은 인형을 마음속으로 정하고 투입구에 돈을 집어넣자 어김없이 아저씨는 타조 알들을 마구 섞는다. 'STOP' 버튼에 빨간 불이 들어오고, 나는 심호흡 후 버튼을 세게 누른다. 잠시 후 데굴데굴 소리와 함께 랜덤 아저씨가 알 하나를 퉤, 뱉는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그것을 집어 들어 조심스레 뚜껑을 연다.
마음속에 그려놓은 인형이 빠끔히 제 얼굴을 내민다. 나는 인형을 조심스레 꺼내 주머니 안에 소중히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