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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수꾼 Aug 12. 2020

< 숙녀 >

2020. 7. 6. D-179

“뚱드모아젤(뚱이+마드모아젤)”


뚱이는 여자란다. 바뀔 수도 있다곤 하지만 일단 그렇게 알고 있으란다. 뚱이가 숙녀라니, 아내는 환하게 웃었다. 예쁘고 귀여운 것들을 왕창 사고 싶은 마음이란다. Portal, SNS 등에서 육아용품, 아기 옷을 왕창 봐 뒀다며 보여줬다. 또, ‘여자아이는 어떤 점이 좋다, 어떨 때 힘들다.’를 늘어지게 설명하다 못해, 늦은 밤까지 언니, 친구와 전화통화를 했다. 두 번을 통화하는 동안 내가 듣기엔 똑같은 내용인데도 아내의 얼굴에서 지루해하는 기색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주인이 출근해 있는 동안 철창케이지 안에 갇혀 있다가 퇴근한 주인을 맞이하는 애완견 마냥 입술을 움직였다. 기초 군사훈련을 참고 견딘 신병이 백일 휴가 때 미필자들에게 화생방 훈련 내용을 설명하듯 들떠있었다.


한바탕 뱉어내곤 얼굴을 마주했다. 아내는 뚱이의 초음파 사진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며 찬찬히 살폈다. 손으로 이마를 터치하더니 별로라고 했다. 가운데 부분이 푹 파인 게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초음파 사진 속 뚱이의 이마는 볼록했다. 아내의 시선으론, 적어도 이마만큼은 이미 뚱이가 나보다 우월했다. 입술을 살짝 내밀고 만족한 듯 끄덕이던 아내의 얼굴은 내 눈썹을 보더니 30도가량 갸우뚱했다. 손을 댄 뒤 몇 차례 결 따라 문질렀다. 별로란다. 장비를 닮았다나. 얼굴을 쭈~욱 훑어보더니 검지로 둥글게 표시했다. 미간을 시작으로 오른쪽 눈썹 밑 부분을 지나 광대와 턱을 거쳐 왼쪽 눈썹 밑 부분까지 가상의 경계가 생겼다. 표시한 부분 안쪽을 제외하곤 뚱이에게 가면 안 된다는 결사의 표시였다. 흡사 도인의 결계와도 같았다.


아내는 잠들기 직전까지도 들떠 있었다. 진귀한 보석을 손에 넣은 듯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꾸었다는 꿈이 태몽이긴 한가보다. 잘 익은 복숭아를 지니는 꿈은 여자아이를 잉태한 것이라고 했다. 아내는 가족들과 함께 위대한 사람이 난 마을을 여행하고 있었다. 아내가 탄 버스는 ‘황도가도’라는 넓고 긴 도로를 달렸고, 아내는 장모님께 ‘백도’ 두 개를 받았다고 한다. ‘황도’ 가도에서 ‘백도’를 받았다니, 차라리 ‘출세’ 가도였으면 자본주의스럽기라도 하지. 배가 고팠는지, 목이 말랐는지 복숭아 두 개 중 하나는 받자마자 홀라당 씨도 남기지 않고 먹었단다. 남은 하나는 가방 옆면 주머니에 넣고 손으로 솜털을 어루만지며 여행을 했다나. 복숭아들은 크진 않았지만 잘 익었고 빛깔이 고왔단다. ‘이 마을의 복숭아는 똑똑한 사람이 난 복숭아’라는 설명을 들었다는데, 복숭아가 사람을 낳는다는 뜻인가? 아무튼.


나도 육아용품의 색상을 결정해주는 의사의 음성을 갈망했었다. 그 순간을 상상하고, 음성의 내용에 따라 표정과 몸짓, 목소리까지 연습했었다. 어떤 내용이든 기쁘게 맞이할 준비를 한 것이다. 실제로 성별은 크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으니까. 그냥 뚱이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 더 생긴다는 것에 설렜었다. 하지만 막상 성별을 알고 나니 기쁨만 있진 않았다. 걱정이 기쁨을 압도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다. 나 스스로 ‘뚱이를 맞이할 준비가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그렇다고 준비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뚜렷이 생각나진 않는다. 뚱이와 관련해 소망하는 바를 딱 한 가지 꼽는다면 외부로부터의 안전도 그렇지만, 가족 내부로부터의 안정을 보장하고 싶다.


그런데 무엇으로 이를 보장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 삶의 반도 살지 못했고, 삶에 대해 모르는 게 더 많다. ‘엄마가 딸에게’ 노랫말처럼 ‘공부해라, 성실해라, 사랑해라.’는 당연하고, ‘너의 삶을 살아라.’는 말도 할 처지가 되지 못한다. 나조차도 나의 삶을 사는 게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노래 가수의 나이가 내 나이에 딱 두 배라는데, 꼭 내 나이만큼 더 살면 ‘나의 삶’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가 보다. 그렇다고 그 나이가 됐을 때, 뚱이에게 용서를 비는 한편, ‘넌 나보다는 좋은 부모가 되겠다고 약속해 달라’며 강요하고 싶진 않다.


이런데도 아내는 뚱이의 성격이 나의 그것을 닮길 바란단다. 삶을 좀 더 편하게, 자기가 정한 방향대로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유다. 상대방이 누구든, 어떠한 상황에 직면하든 자신의 의견을 정제하여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가장 컸다. 그러다 보니 억울한 상황이 많이 없을 거 같다나. 그러면서 ‘왜냐하면’과 ‘때문이다’를 어릴 적부터 훈련시키겠다고 다짐을 한다. 고소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내게 경고성으로 말하기도 한다. 뚱이가 따지고 드는 것을 한 번 당해 보라는 거다. 그 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면서.


몇 주 전에 아내와 뚱이가 유명인 중 누굴 닮길 소망하느냐에 대해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남자라면 에릭남, 헨리, 이광수 정도 꼽혔다. 밝은 성격에 똑똑한 데다 예의가 있다는 이유였다. 심지어 어떠한 유형이든 리더십도 갖췄다고 봤다. 여자는 나만 꼽았는데, ‘함연지’였다. '오뚜기' 회장의 딸로, 국내 최고 수준의 학벌을 갖췄는데도 뮤지컬 배우 및 유투버로 활동 중이다. 자기가 원하는 일이라며 선택했단다. ‘나의 삶’을 사는 사람이라 그런지 보이려는 당당함 없이 단단하다. 해맑다. 쇼팽의 ‘즉흥환상곡’보다 경쾌하고, 이루마의 ‘학교 가는 길’보다 견고하다. 자신감이 있지만 자만하지 않고, 겸손하지만 비굴하지 않다.


뚱이가 숙녀로 파악되면서 부모가 바라는 뚱이의 이상적 모습은 ‘함연지’가 돼버렸다. 물론 이런 소망을 갖기 전에 나의 모습이 ‘함영준’인지 돌아봐야 한다. 음, 일단 함 씨가 아니니 이미 틀린 건가. 어쨌든 이는 어디까지나 나의, 우리 부부의 이상향일 뿐이다. 뚱이는 결국 뚱이 스스로 용기를 갖고 본인의 길을 걸어 나가야 한다. 나와 아내는 그저 거들뿐이다. 그 길을 걸어 나가는데 목이 마르지 않게, 춥지 않게 준비가 필요하다.


“가만 보니 이광수, 함연지 등 우리가 꼽은 사람들의 부모들은 기업을 운영하는 CEO인 것 같아. 난 일개 말단 직원인데 이를 어쩌지? 우리는 시대 흐름에 맞게 자기가 회사를 차려보는 게 어때?”

“자기 인세 받으면 되지. 글 써, 책 내면 CEO인 거야. 자긴 기자 했었으니까 할 수 있어.”

“.......!!”


아내는 자신의 생각을 정제하여 경쾌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답했다. 내 질문에 대한 ‘무조건 반사’ 신경이 혀 끝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손톱깎이마냥 작고 별 볼 일 없어 보이는데, 그 결과는 단호하고 깔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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